[한겨레 프리즘] 상급종합병원 대신 중환자병원 / 김양중

김양중 2019. 8.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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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직접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때문에 또는 ‘덕분에’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더 많이 몰렸을까? 문재인 케어로 특실료(상급병실료)와 특진비(선택진료비)는 물론 고가의 검사 등 환자가 100% 부담하던 ‘비급여 진료’의 환자 부담이 크게 낮아지니, 그동안 병원비 부담으로 아파도 병원을 덜 가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을 것이다. 또 병원비가 더 비싼 대형병원을 가도 환자 부담이 예전만큼 크지 않으니 큰 병원을 더 찾았을 것이다.

대형병원 선호 현상은 건강보험 자료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부에서 상급종합병원(상급종합)의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가 2017년보다 28%나 높아져 극심한 ‘환자 몰림’이 나타났으며 이는 ‘문재인 케어’ 탓이라고 몰아가지만, 이는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가 미뤄져 전년도 진료비가 이월된 영향이 크다. 실제 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급종합의 건강보험 진료비 점유율이 2017년보다 13.4% 늘었다. 이는 병원, 의원의 증가율인 9.7%와 11.3%에 견줘 더 높다. 대형병원 진료비가 더 커지는 현상은 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건강보험 진료비 점유율은 상급종합 14%, 종합병원 14.3%, 의원급 26.8%였지만, 지난해에는 각각 17.3%, 16.6%, 19.6%로 바뀌었다. 대형병원은 높아지고 의원급은 낮아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병원비 부담이 줄어 대형병원을 찾는 현상이 심화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환자들은 검사 장비가 많은 대형병원을 이전부터 선호했지만, 그동안은 진료비 부담 때문에 대형병원을 덜 찾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이런 현상이 더 심했을 것이다. 이는 아프면 누구나 최선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기본권이 병원비 부담으로 깨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나 ‘문재인 케어’와 같은 정책의 목적은 경제적 부담으로 병원 이용에 차별이 생기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또다시 질문. 병원비 부담이 줄어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릴 경우 생기는 문제는 없을까? 대형병원 의사들이 감기나 단순 고혈압 등 경증 환자를 진료하느라 정작 빨리 치료해야 할 중증질환자가 오랜 기간 대기하다가 질병이 악화될 수 있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이중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가벼운 질환자는 의원보다 많은 진료비를 내야 하고, 중환자는 기다리다가 악화된 만큼 병원비가 더 많이 든다. 이렇게 병원비 낭비가 많아지면, 평소 병원을 잘 가지 않는 건강한 사람도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모든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 간다고 최선의 진료를 받는 것은 아니다. 대형병원 의사들은 경증 환자보다는 중증 환자의 진료를 위해 훈련돼 있다. 더 큰 틀에서 최선의 진료를 위한 기반인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병원 이용은 절실하다.

앞서 경제적 부담으로 환자들의 대형병원 이용이 제한된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환자들의 질병 치료에 최적화해 병원을 바꿔야 한다. 상급종합이 마치 순위를 매기듯 종합병원보다 낫다는 식의 ‘상급’을 붙여서는 곤란하다. 많은 장비와 의료인력이 모인 만큼 의료체계 이전 단계의 병원 등에서 중증으로 진단한 환자를 집중 치료하도록 ‘중환자병원’으로 바꿔야 한다. 의원도 지금처럼 약만 처방하는 곳이 아니라, 당뇨 등 만성질환을 일상적으로 관리하게 도와 합병증을 막고, 감기 등에 걸리면 평소 과로나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답을 주는 ‘건강증진병원’으로 기능을 전환해야 한다.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에 맞는 병원을 제대로 찾도록 병원 체계를 개편해야 국민도 건강해지고 건강보험도 지속 가능하다.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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