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어쩌면]조국이 두려워지는 이유

2019. 8. 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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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4년 4월27일, 정홍원 당시 총리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의해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개월의 변호사 생활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낙마해 버렸다. 정홍원은 계속 총리직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지명된 문창극 전 기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헛소리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정홍원은 여전히 총리였다. 다행히 국회의원이던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서 정홍원은 사의 표명 후 거의 10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는데, 그 이완구가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두 달 만에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 새 총리는 당시 법무장관이던 황교안으로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그는 특검팀의 청와대 조사를 거부하고 특검 연장을 거부하는 등 맹활약한다. 그 황교안은 지금 당 대표에 차기 대선주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가 됐다면 어땠을까? 당시 야당은 그를 ‘전관예우의 적폐’로 몰아 낙마시켰지만, 업계 사람들은 그 정도 수입이 전관예우치고는 적은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5년여가 흐른 2019년 8월,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 교수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 생활만 해서 별것 없을 줄 알았건만, 웬걸, 해명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정권 때 총리 후보자들에게 추상같은 잣대를 적용했던 야당은 집권당이 된 지금 조국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국에 대한 의혹 제기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라 하고, 안민석은 한국당이 최순실의 은닉재산을 밝혀내는 게 두려워 조국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여론을 살피려고 대형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탐독했다. 하필 그곳이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국이 받는 의혹에 대해 눈물겨운 방어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빈번한 논리가 이것이었다. “적폐세력들이 조국 반대하는 걸 보니 조국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반드시 법무장관 시켜야겠네.” 이 말에 좀 움찔했다. 내가 적폐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조국이 법무장관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두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일전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 친일파라 한 데서 보듯, 조국은 정부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가 아무 직함이 없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이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2년여를 법무장관이 지정한 친일파로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렵다.

둘째, 며느리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점점 드물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조국 남동생의 아내는 이혼했음에도 시어머니에게 자기 집을 기꺼이 내줘가며 헌신적인 봉양을 한다. 물론 그녀가 시어머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벌인 적이 있지만, 그거야 모시는 게 어려운 나머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한 것일 뿐, 실제로 돈을 받으려는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21세기에 보기 드문 효부인데, 조국이 일반인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네 집안이 그런 모범을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게 우리 미풍양속으로 뿌리를 내려, 앞으로 며느리들은 설령 이혼을 한다 해도 시어머니 봉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셋째, 가족 간 돈거래가 사라진다. 조국의 신고재산은 56억원, 이 가운데 예금이 34억원이나 된다. 이쯤 되면 빚에 허덕이는 다른 가족들도 신경 써줄 만하지만, 그는 차라리 사모펀드에 전 재산을 내던질지언정 가족들에겐 냉정했다. 특히 2013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 재산은 21원에 불과해 충격을 줬는데, 이 액수는 웬만한 노숙자보다도 적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두환이 재벌 같다. 조국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 간에 돈을 빌리려고 하면 “법무장관을 봐!”라며 거절하는 일이 속출하지 않을까?

넷째,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대세가 된다. 과거 조국은 폴리페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학생들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니 정치를 하려거든 교수직을 그만두라는 게 그의 말이었지만, 자신이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에까지 오르자 ‘임명직은 괜찮다’며 사표 제출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조국은 대학에서 강의 한 번 안 하고 8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조국이 장삼이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돼 사회가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이 밖에도 외모지상주의가 강화된다든지, 성적이나 가정형편보다는 권력이 대학 장학금의 척도가 된다든지, 국가에 진 빚은 안 갚아도 되는 풍조가 생긴다든지 하는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만 같으니, 내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그가 장관에 연연하기보다는 교수로 돌아가길 바라는데, 글을 맺기 전에 정신승리를 해본다. 이 글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건 내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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