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신청, 부모동의 없어도 된다"..13년 만에 예규 개정
[경향신문]
대법원이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 허가를 신청할 때 부모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예규를 삭제했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은 그동안 부모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해 성별정정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9일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일부개정예규(이하 대법원 예규)’를 공개했다. 예규에서 대법원은 성별정정 허가 신청 때 신청서에 첨부해야 하는 서류 중 ‘부모의 동의서’ 항목을 삭제했다. 2006년 대법원 예규가 제정된 후 13년 만에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에서 부모 동의가 필수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시한 것이다.
성별정정에 부모 동의가 필요없다는 지방법원의 첫 명시적 판단이 대법원 예규 개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천가정법원은 지난달 1일 부모동의서 제출을 하지 못한 트랜스젠더 ㄱ씨가 제기한 성별정정 허가 항고심에서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부모 동의가 성별정정 허가여부 판단에 필수가 아니다”라고 결정문에 이유를 적었다.
대법원 예규는 법률과 같은 효력이 없다. 하지만 많은 법원들은 그간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부모 동의서를 요구해왔다. 부모 동의서는 성소수자에게 높은 장벽으로 작용했다. 희망을만드는법이 2018년 트랜스젠더 70명을 대상으로 한 성별정정 경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5.7%가 부모 동의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한국 LGBTI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28.4%가 법적 성별 정정 때 부담으로 부모 동의서를 받을 수 없는 점을 꼽았다.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바꾸기에는 여전히 난관이 많다. 서구 여러 국가와 달리 한국은 외과 수술(성전환 수술)을 반드시 받아야 성별정정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외과 수술 비용에는 수천만원이 든다. 심문 과정에서 불필요한 질문 등 인권침해도 여전하다. SOGI법정책연구회는 “예규 계정을 계기로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방관해 온 국회와 정부 역시 트랜스젠더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성별정정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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