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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하체 몰래 찍은건 맞지만, 범죄는 아니다', 왜?

우한솔 입력 2019.08.22. 16:22


2017년 12월, 서울 성동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여성 지인들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갖고 있던 한양대학교 남학생 A 씨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A 씨는 여성들이 SNS에 올린 얼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달라고 특정 사이트에 의뢰한 뒤에 합성사진 파일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갖고 있다가 적발됐습니다.

그런데 경찰 수사 과정에서 A 씨의 또 다른 범죄 혐의가 확인됐습니다. 휴대전화에서 불특정 여성의 다리 등 신체 부위를 촬영한 사진들이 나왔습니다. 성동서는 지난해 3월 A 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A 씨는 퇴학당한 뒤 군에 입대했습니다.

■ "짧은 치마 입은 여성들 의사에 반해 몰래 찍어"...'무죄'

고소장이 접수된 지 1년 8개월 만에 1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7일 A 씨의 음화제조교사와 명예훼손 등 혐의에 대해 징역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여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음란물에 삽입시키는 등 사이버 공간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피고인이) 호기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책임을 회피해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A 씨는 2016년 7월부터 넉 달 동안 9차례에 걸쳐 지하철과 학원 강의실 등에서 교복 치마 등을 입은 여성의 다리 등 하체 부위를 촬영했는데, 재판부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의사에 반해 몰래 촬영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9개의 사진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부분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촬영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체 부위가 찍히긴 했지만 '유독 부각해 촬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건데요. 확인된 것만 9차례, 특히 교복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 등 하체부위를 촬영했는데 '무죄'로 본 겁니다.

■"타인의 신체 몰래 촬영, 부적절하지만 처벌은 어렵다"

군사법원은 2008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습니다. 대법원은 2008년 9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에 대한 법률이 "피해자의 성적 자유 및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성적 자유'와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자유' 두 가지 권익을 모두 보호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혐의에 대한 판단은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 경위, 촬영 장소와 각도, 거리, 원판의 이미지,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 개별적, 상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위 대법원 판례는 이후 불법 촬영 혐의를 판단할 때 다수 인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양형 기준은 없어서 형량은 '들쭉날쭉'한 게 현실입니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무릎 위 허벅다리 부분을 30cm 정도에서 한 차례 촬영한 행위'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은 위 판례를 인용해 명동에서 사흘간 32차례에 걸쳐 여성의 하체를 몰래 촬영한 조선족 B 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합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해서 32개 사진 중 일부에 대해서는 무죄로 봤습니다. 재판부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것은 인정된다"면서도, "조선족으로서 (...) 국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도심 여성들의 개방적인 옷차림에 대한 생소한 감정과 호기심이 동기였다"며 성적인 욕망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같은 판례를 인용한 대전지법에서는 2012년 5월 스타킹과 치마를 입은 여성의 하체를 30초 동안 동영상으로 찍은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때도 재판부는 "피해자가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촬영 부위가 평균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부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타인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처벌은 어렵다는 겁니다.

■"양형 편차에 대한 비판 많아...기준 설정 필요"


현재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자'에 대해 처벌하게 돼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해당 문구가 해석의 여지를 준다고 지적합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재판부 해석의 문제라서, 관점에 따라 어떤 때는 범죄가 증명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되기도 하는 상황이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불법 촬영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는, 형량을 결정하는 잣대인 '양형 기준'이 없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올해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양형위는 "불법 촬영 범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양형 편차에 대한 비판이 많아 실무상 기준을 설정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고, "지난 6월 양형과 처벌에 대한 학계와 실무계의 의견을 수렴한 상태로, 이르면 연말쯤 기준이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적절한 만큼 처벌받기를 원하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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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솔 기자 (p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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