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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분리장벽 가로막힌 사이드의 꿈

김양균 입력 2019.08.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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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의 현장보고] 팔레스타인 르포.. 분리된 삶, 부서진 꿈②

“당장 집에서 나가라. 로켓(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네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이 섬뜩한 경고는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거주민에게 가한 여러 위협 중 일부이다. 군은 글과 전화로 위의 짧은 경고 문구를 거주민에게 통보했다. 위협은 거짓말이거나 실제 참상으로 이어졌다. 팔레스타인인(人)에 대한 심리전(戰)의 일환으로 짐작된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유·무형의 일상적 위협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14일 오후 1시 베들레헴. 정오를 지난 강렬한 태양이 머리 위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해발 777미터 고도의 산지에 위치해 있다. 1만611제곱킬로미터에 2만5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곳에 산다. 베들레헴의 유명세는 비단 예수가 태어난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상 유래 없는 ‘분리장벽’이 이곳에 있는 까닭이다. 

사라 하와자 ‘장벽반대캠페인네트워크’ 위원은 기자에게 “2002년 분리장벽 설치가 법령으로 보장됐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영토 몰수 및 새 정착촌 구축을 목적으로 분리장벽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지역 내 이스라엘 군사력 강화도 ‘계획’의 일부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분리장벽의 총 길이는 75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는 과거 요르단 점령 하의 팔레스타인 영토보다 길이상으론 더 넓다. 장벽은 팔레스타인 곳곳을 동강냈다. 이에 대해 사라 하와자 위원은 “서안지구 전체에 설치된 분리장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해당 지역을 7개의 분할봉쇄 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일상적 공격’

베들레헴내 아이다난민캠프의 입구 상단에는 열쇠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는 삶을 일구던 곳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진 장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수중에 집 열쇠 하나만 지니고 쫓겨난 것을 나타낸 것이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열쇠를 그린 벽화와 포스터, 그림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열쇠는 자유와 주거의 권리를 박탈당한 그들의 저항 운동을 나타내는 오브제이다.  

이날 오후 캠프내 아이다유스센터에서 사이드 이즈 분(사진)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센터는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과 체육 등에 소질이 있는 청소년을 발굴, 해외에 알리는 활동을 지원한다. 해외의 외부 예산으로 운영되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후원이 끊기고 있다. 

난민캠프의 사방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센터에서 직선으로 5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이스라엘 군 시설이 있었다. 사이드는 “군의 일상적 공격(Daily attack)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했다. 캠프를 거닐던 한 소년이 이스라엘 군인의 총격으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깨어진 유리창과 옥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최루탄은 이러한 일상적 공격의 흔적이다. 사이드는 “아무 죄도, 아무 이유도 없이 소년을 쏜 군인이 처벌받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사이드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12살이던 2011년경 축구를 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과 철거인의 위협을 받았다. 일행은 건물에 갇혔고 입구는 봉쇄됐다. 밖에서는 이들을 위협하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공포에 휩싸였다. 가까스로 지하의 비밀통로를 통해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날의 충격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난민캠프에는 6000여명이 거주한다. 철책과 기아, 감염병, 비쩍 마른 아이들의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 난민캠프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일 터. 이곳은 다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벽돌을 쌓고 이층, 삼층 건물을 세우며 또 다른 삶을 일궜다. 캠프에는 상점과 카페도 있다. 그곳에서 맛 본 찬 커피의 맛은 달콤하고도 씁쓸했다. 

그러나 강탈당한 자유의 희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흔적은, 벽화와 낙서 등의 형태로 캠프 곳곳에 남아있었다. 벽에 쓰인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린 돌아갈 것이다(We will return)”  

사이드가 수줍게 보여준 휴대전화 안에는 고난이도의 기계체조를 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소질도 있었다. 다만, 팔레스타인 출신이란 사실이 ‘주홍글씨’처럼 꿈을 가로막았다. 현재 그는 센터에서 청소년들에게 운동을 가르친다. 사이드는 또 다른 꿈을 꾼다. 학업을 계속해 영어 교사가 되고 싶다. 그는 “이스라엘의 점령에서 벗어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다”고 했다. 꿈 많은 청춘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매우 자주 그를 좌절시킨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해외에 나가려면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며, 발급이 거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로 이동하는 것에도 제약이 많다. 교통의 요충지마다 설치되어 있는 ‘체크포인트’는 이동을 가로막거나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팔레스타인 라말라에도 분리장벽이 세워져 있다. 장벽의 중간에는 하캄과 그의 가족이 산다. 그의 자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하캄이 말했다. “수영장을 본 아이들이 제게 바다냐고 물었어요.” 팔레스타인은 지중해, 사해 등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하캄의 아이들은 바다를 책 속 그림으로만 본다.   

동행한 아디의 이동화 국제활동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왕래가 비교적 자유로운 아랍 팔레스타인 거주증을 지닌 이들조차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거주증 발급이 취소되거나 정지되는 일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더 플랜’

팔레스타인 인권활동가인 자말에게 이스라엘 정부의 ‘플랜’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지난 1992년부터 이스라엘은 오는 2025년까지의 청사진을 그리는 연구를 시작했다. 1997년 보고서 초안 중 예루살렘 관련 분량은 900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는 갈릴리개발계획(Galilee Development plan), 네게브 개발계획(Negev Development) 등이 포함돼 있다. 

기자가 방문했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관련해 눈여겨 볼 부분은, 2025년까지 ‘서안지구의 유대화’ 추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 내 설치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주요 거점 역할을 맡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정착촌에 반감과 우려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팔레스타인개발기구의 칼리드 활동가는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가자지구와 비교해 서안지구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아이다난민캠프에서 사이드와 헤어질 무렵 검은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바람을 타고 시야를 흐렸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데, 장벽 앞 임시 쓰레기장에서는 유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앞을 열 살 남짓한 소녀 둘이 걷고 있었다. 아이들은 풍선을 쥐고 있었다. 아차, 누군가 놓친 풍선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벽에 부딪쳐 쓰레기 더미로 추락하고 말았다. 

베들레헴=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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