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조국 딸 '천운'을 타고 났나

전민희 2019. 8. 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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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교육팀 기자
“하늘이 돕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28)씨의 진학 과정이 화제에 오르자마자 학부모 김모(53)씨의 입에선 ‘천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교육특구’ 강남에서 두 남매를 키워 둘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하는 서울 소재 대학에 보낸 김씨의 눈에도, 외국어고에서 고려대의 이공계학과(환경생태공학부)에 진학한 뒤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거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조씨의 행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30년 넘게 사교육에 몸담아온 입시 전문가도 “맹세코 처음 보는 케이스다. 입시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조씨는 한영외고에서 고려대에 진학하는 과정부터 남달랐다. 그는 당초 한영외고 유학반에서 해외대학을 준비했다.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가 조씨를 논문의 1저자로 올린 것도 해외대 진학에 유리한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씨는 갑자기 국내대로 진로를 변경했다. 입시업계에선 조씨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정도의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점수는 취득하지 못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때마침 고려대가 ‘세계선도인재전형’을 개설했다. 이 전형에 지원하려면 토플·텝스 등 어학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했던 조씨에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전형이다. 고려대는 이 전형을 2010·2011학년도 딱 2년 동안만 운영했다.

2015학년도 부산대 의전원 입시도 신기하다. 당시 지원 자격은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공식 성적을 취득한 자’를 명기했지만, 전형에서 점수를 반영하진 않았다. MEET 점수가 남들보다 저조해도 합격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하늘의 도움’만 있었을까. 언론 보도가 거듭되면서 후보자 부부의 ‘보이지 않는 손’도 드러나고 있다. 외고 학생이던 조씨가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영외고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조씨를 논문의 제1저자로 올려준 장영표 교수는 언론에 “조 후보자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아들이 한영외고를 다니고 있어서 애들 엄마끼리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씨가 고3 때 참여한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십도 어머니 정모(57·동양대 교수)씨의 동창이 주도한 프로그램이었다. 한영외고 출신 교사는 “당시에 학부모들끼리 품앗이로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전문직·교수 자녀들만 얻을 수 있는 혜택이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조 후보자는 2012년 3월 자신의 트위터 개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 지금 와서 보면 조 후보자는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딸은 용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것 같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기 위한 노력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물샐 틈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 이런 자녀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부모들을 허탈하게 만든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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