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없어진 '영등포 천지개벽' 비결? "신뢰부터 쌓았죠"

홍기삼 기자,이헌일 기자 2019. 8. 2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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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동안 노점상, 상인, 주민, 전문가들 상생협의회 '대타협'
[구청장 인터뷰]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 뉴스1

(서울=뉴스1) 홍기삼 기자,이헌일 기자 = 서울에 오래 산 사람들은 영등포역 앞을 지나갈 때면 복잡한 교통과 인도에 빽빽이 들어선 노점상들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게 '영등포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옛말이 됐다. 영등포가 천지개벽했다.

우선 인도를 장악했던 노점이 모두 없어졌다. 영등포구청이 나서서 한 일이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점상들과 일대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을까. 기우였다.

지난 21일 채현일(49) 서울 영등포구청장을 만나 '노점상들의 반발은 없었나'라고 묻자 "없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3월25일 오전 노점상을 철거하는 데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비결은 '끈질긴 소통'이었다. 8개월이 걸렸다.

한강 이남의 주요 간선도로이자, 영등포 앞 길인 '영중로' 인근에는 노점상 70개가 40~50년 간 있었다. 도시미관을 해치고 위생 문제도 심각했다. 급기야 영등포 주민들의 최대 현안으로 노점상 문제 해결이 떠올랐다. 영등포구청이 마련한 영등포신문고의 첫 청원도 노점상 처리였다.

채 구청장은 "노점상 철거 전 8개월 동안 노점상, 상인, 주민, 전문가들과 함께 상생협의회를 통해 회의하고 만나고 하면서 우선 신뢰부터 쌓았다. 행정을 하면서 안되는 것 중에 하나가 서로간의 불신이다. 여야 정치권도 그렇듯, 신뢰가 있으면 된다"며 "신뢰가 있으니까 탄력을 받고 결국 금년 초 대타협을 통해 아무런 마찰과 격렬한 대립 없이 철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영등포구청은 노점상 철거 후 6개월 동안 도로, 가로수, 적치물, 녹지 환경 등을 정비해 9월 중순쯤 공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 영중로에 세련된 가게 20여개가 새로 생긴다. 노점상이 아니라 일정 규격과 디자인을 갖춘 깨끗하고 아담한 거리가게다. 구에서 상하수도 정비까지 했다. 대신 이 가게는 상속이나 양도는 안된다. '대타협'의 결과물이다.

채 구청장은 "쾌적하고 안전한 거리를 구민들한테 되돌려줬다는 자부심이 크다. 구민들도 생각 이상으로 기뻐했다"며 "영등포구의 격이 한단계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노점상 철거에서 보듯이 채 구청장의 영등포 비전은 '탁 트인 영등포'다. 민선 7기 1년 동안 3대 민생인 청소, 주차, 보행환경 조성에 집중했다. 기초적인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다.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채 구청장은 구청 내부 구조부터 바꿨다. 주차, 민원, 청소 등 고생하는 격무부서가 기피부서가 되지 않도록 인센티브, 승진, 근평에 신경썼다. 이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조직체계도 바꿨다. 중요 현안에는 최소 3~4개, 많게는 10여개 과가 동시에 달라붙어 일을 처리해야하는데 공무원 조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부서간 칸막이를 없애고 각종 TF와 협업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거기에 '조직진단용 용역'까지 받아 올 연말에는 대규모 조직개편도 추가로 단행한다. '유리천정'을 없애기 위해 여성 공무원 발탁도 신경썼다.

채 구청장은 또 '소통'과 '협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영등포1번가와 신문고 등 협치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국민청원은 20만 명이 기준이지만, 영등포는 1000명으로 낮췄다. 구민이 청원하면 구청장이 직접 답변한다. 지금까지 7호 청원까지 답변했다. '영중로 노점상 철거'는 1호 사업이었다.

채 구청장은 주차 문제를 영등포 특유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핵심은 개인이 보유한 '자투리 땅'을 주차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땅을 사야하기 때문에 구청에서 주차장 1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균 1억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개인 소유 자투리 땅은 토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주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차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생긴 주차장이 총 151면이다.

여의도 개발과 관련해 채 구청장은 "내년 8월에 파크원이 준공되면 서울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여의도에 들어온다"라며 "여의도의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등포는 서남권 한강 이남의 종가댁이라는 상징성이 있다"며 "주거환경, 인프라, 교통, 주차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 통해 '찾아오고 싶어하는 영등포'로 만들고 싶다"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채 구청장은 "구민들의 구정 참여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여하고 제안하고 공유하고 그러면서 책임의식이 높아지는 단계로 더 나아가야 한다"며 "그러면 구정이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로 역사는 진보하고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이 혜택을 받고 향유하는 게 정치"라는 채 구청장의 철학이 반영된 얘기다.

ar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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