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도인재전형 2명 중 1명이 '외고' 출신..조국 딸만 문제일까

심윤지 기자 2019. 8. 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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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이 대학에 입학한 2009년 고려대의 세계선도인재전형은 ‘외고 전형’이라 불렸다. 외관은 입학사정관제지만, 사실상 특목고 학생 출신을 뽑기 위한 전형이었다는 비판 여론은 당시에도 거셌다.

2010년 3월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고려대는 2010학년도 입시에서 세계선도인재전형을 입학사정관제로 운영하면서 모집정원 200명 중 105명(52.5%)을 외고생으로 뽑았다. 합격자 2명 중 1명 꼴이다. 조 후보자의 딸 조모씨도 그 중 하나였다. 비슷한 전형인 연세대 글로벌리더전형 합격자의 외고생 비율(41.3%)보다 높은 수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후 서울 종로구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당시에도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시민단체 ‘좋은교사운동’은 고려대가 2011학년도 세계선도인재전형에서 공인외국어성적과 외부수상경력으로 학생을 선발하자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성명서에는 “국민의 예산을 받으면서 특목고생을 유치하고 어렸을 때부터 영어 사교육으로 무장된 부유층 자녀를 선발하는 건 대학 서열을 올리려는 대학의 저급한 탐욕”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려대 세계선도인재전형은 입학사정관제의 일환으로 2010학년도부터 도입됐다. 기존 점수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환경의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자는 것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취지다. 고려대는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으로 정부 지원금도 받았다. 하지만 고려대는 입학사정관제 운용기준을 어기고 토플·텝스·토익 등 공인외국어성적, 외부수상경력 등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았다. 일반고 학생이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는 것만으로는 준비가 어렵다.

실제 ‘2010학년도 고려대 수시모집요강’을 보면 세계선도인재전형의 응시자격은 토플 CBT 270, IBT 110, PBT 637점 이상 또는 텝스 857점 이상 등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응시자격’에 불과하다. 입시컨설턴트 출신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이 전형에서 IBT가 110점이냐 117점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 어학 성적은 말그대로 기본이고, 나머지는 희망 전공에 적합한 ‘스펙’을 얼마나 쌓았냐가 관건”이라며 “대원외고나 한영외고의 경우 학교 차원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알아봐주거나 학부모들끼리 팀을 짜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입시를 대비했다”고 했다. 생명과학대학을 지원한 조씨가 어머니 소개로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실험에 참여한 것도 특이 사례는 아닌 셈이다.

고려대는 조씨처럼 경제적으로 부유한 특목고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수시전형에서 내신 1~2등급인 일반고 학생은 떨어지고, 외고 출신의 3~5등급 학생은 합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려대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운영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법원은 고려대가 2009년 수시 일반전형에서 일반고 학생과 외고 학생의 학력 점수를 차등 적용했다며 탈락자 1인당 7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10년 11월 좋은교사운동이 고려대 앞에서 특목고 위주 정책을 비판하는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블로그 갈무리

조 후보자 측은 딸의 입학과정을 둘러싼 논란에 ‘불법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의적 비판까지 피해가긴 어렵다. 이른바 ‘명문대’의 특목고 선호와 교육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조 후보자 딸은 아버지가 비판한 구조에 편승해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는 “특목고를 우대하는 사실상의 고교등급제가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2007년 4월23일 한겨레 칼럼)고 썼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2010년 무렵은 고등학생 논문 등재를 비롯한 ‘스펙 쌓기’가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됐고 오히려 권장됐던 시기”였다면서도 “조국 후보자가 특목고 위주 교육을 비판해온 만큼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현재 세계선도인재전형과 같은 노골적인 ‘외고 우대 전형’은 대부분 사라졌다. 2014학년도부터는 논문 성과의 생기부 기재 역시 금지됐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탈바꿈했지만, 학부모들의 경제력과 정보력을 무기로 한 스펙 경쟁은 여전히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조 후보자 딸 논란을 개인의 ‘입시비리’ 문제로 보기보다 전반적인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 공동대표는 “평소 특목고·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개인의 교육 선택권을 왜 가로막느냐’는 여론이 많았다. 이번 조 후보자 논란을 대하는 여론에 이중잣대가 느껴지기도 한다”며 “특목고라는 제도 아래 소수의 선별된 학생과 부모들이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김 부소장 역시 “조국 교수가 딸을 외고가 아닌 일반고에 보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을 수 있어도, 입시제도 자체가 사회지배층에 유리하게 짜여져있는 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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