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뜬금없는 대만 비난, 한국에 없는 F-16V 왜 들먹였나

이철재 2019. 8.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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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한국 비난하면서 한국에 없는 F-16V 들먹여
대만, 미국과 F-16V 66대 구매 계약 성사단계
중국은 자국 안보 위협이라며 제재 등 조처

지난 2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첨단 살인장비를 지속적으로 반입하는 남조선 당국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뜬금 없이 대만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을 규탄한다면서 왜 대만을 끌어들였을까.

F-16V 조종석에서 본 모습. [Military Power 유튜브 계정 캡처]

북한은 성명에서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이 합동 군사연습이 끝나기 바쁘게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을 미국으로부터 또 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21일 한국 공군의 F-35A 2대가 미 본토에서 하와이를 거쳐 청주 공군기지에 도착한 사실을 거론한 대목이었다.

북한은 그러면서 “미국이 최근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일본을 비롯한 조선반도(한반도) 주변 지역들에 F-35 스텔스 전투기들과 F-16V 전투기들을 비롯한 공격형 무장장비들을 대량 투입하려 하면서 지역의 군비 경쟁과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북한이 F-35와 함께 말 폭탄을 쏟아부은 대상엔 F-16V가 들어있다. F-16V는 24일 현재 한반도에는 1대도 없다. 동아시아 전체로 봐선 대만에만 있는 전투기다.

F-16V. 겉으로 봐선 기존 F-16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레이더와 전자장비는 최신형이다. [사진 록히드 마틴]

북한이 대만의 F-16V를 들먹인 배경엔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정치학이 자리잡았다. 북한이 한국을 까기도 바쁜 와중에도 중국에게 잘 보이려고 미국과 대만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김태호 한림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ㆍ러시아와 연대를 탄탄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ㆍ중 패권 분쟁의 카드 F-16V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20일(현지시간) F-16V 66대와 관련 부품ㆍ장비를 대만에 판매하는 계약을 발표했다. 금액은 2000년대 이후 미국과 대만간 무기 계약 가운데 가장 많은 80억 달러(약 9조 7059억원)다. 미 국무부는 21일 이 계약을 승인했다. 계약은 미 의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인을 남겨두고 있다. 의회와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이기 때문에 대만이 66대의 신형 전투기를 받는 건 시간문제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7월 12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열린 포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6일 미국과 대만의 고위인사 방문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Taiwan Travel Act)'에 서명했다. 이처럼 미국은 최근 대만 카드를 던져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EPA=연합]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이번 계약은 미국과 중국의 오랜 관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크게 반발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국제법과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겅 대변인은 “중국은 대만 무기 판매와 관련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포함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F-16V의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을 제재 대상에 올리겠다는 엄포다. 중국은 지난달에도 미국이 M1 에이브럼 탱크와 스팅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을 대만에 판다고 발표하자, 관련 기업을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김태호 교수는 “록히드 마틴을 비롯한 미국의 방산기업들이 중국에 무기를 팔 일도 없기 때문에 타격은 없다”며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만 카드를 적절히 써먹는 일은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ㆍ중 무역 전쟁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미ㆍ중 패권 경쟁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6월 4일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기념하는 대만의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

대만은 당초 F-16V가 아니라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탐냈다. 그러나 대만은 실제 전투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F-16V를 최종적으로 선택했지만, 중국에게 최신 스텔스 기술이 넘어갈 것을 미국이 우려했다는 해석도 있다. 대만이 이번에 들여 오는 F-16V 66대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중국의 압력으로 포기했던 그 분량들이다.


2030년대에도 날 F-16V
1974년 2월 2일 F-16의 첫 시제기가 하늘을 날았다. 78년 8월 F-16은 주력 전투기인 F-15를 보조하는 경전투기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F-16은 지난해 8월 현재 4604대가 생산돼 F-4 팬텀Ⅱ(5195대)에 이어 서방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올해로 45살을 맞은 F-16을 낡은 구닥다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만의 F-16V가 기존 F-16A/B보다 어떤 점에서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자료 대만 공군]

F-16은 초창기 F-16A/B에서부터 C/D, E/F로 진화해갔다. B, D, F는 훈련을 위한 복좌형(두 명이 탑승)이다. 록히드 마틴은 2015년 10월 21일 최신형인 F-16V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정식 명칭은 ‘F-16C/D 블록 70/72(미국 전투기는 제작 라인에 따라 서로 다른 블록 숫자가 붙는다)’. 그러나 ‘바이퍼(Viperㆍ독사)’의 V를 붙여 F-16V라는 명칭이 더 유명하다. F-16의 원래 별명은 파이팅 팰컨(Fighting Falconㆍ싸우는 독수리)이다.

F-16V 프로그램은 미 공군 F-16의 업그레이드 계획에서 비롯됐다. 핵심은 F-16에 최신형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AESA)인 AN/APG-83 SABR과 임무 컴퓨터인 MMC-7000AH를 다는 것이다. 조종석도 디지털 계기로 싹 바꿨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F-16 구형과 F-16V의 차이점을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몸집은 그대로인데 눈(레이더)과 머리(컴퓨터)가 훨씬 좋아진 셈”이라며 “F-16V는 적을 더 멀리서 발견하면서 더 많은 적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록히드 마틴은 F-16V를 바레인과 슬로바키아에 팔았다. 신조 기체와 별도로 기존 F-16을 F-16V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대만, 그리스, 모르코, 바레인 등 6개국에서 F-16V 업그레이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의 안승범 편집장은 “한국 공군의 KF-16(F-16C/D 블록 50/52) 133대가 F-16V 업그레이드를 받게 된다”며 “올해 4대가 개조 중이며, 내년 인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만은 F-16의 초기형인 F-156A/B 블록 20 114대를 2023년까지 F-16V로 개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첫 F-16V 개조기가 대만의 국영 항공기제작사인 한샹(漢翔ㆍAIDC)에서 출고됐다. 5월 28일 대만의 최대 군사훈련인 한광(漢光) 35의 하나로 열린 고속도로 이착륙 훈련에 참가했다.

대만 F-16V 개조기가 지난 5월 한광 훈련 중 고속도로 긴급 이착륙 훈련을 위해 착륙하고 있다. [AFP 유튜브 계정 캡처]

최현호씨는 “F-16V는 최신 레이더와 임무 컴퓨터 때문에 2030년대까지 충분히 전투기 임무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왜 그렇게 반발할까.
대만은 동남부의 타이둥(臺東) 공군기지에 신형 F-16V 66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이 기지는 산을 뚫어 지하에 만들어졌다. 그만큼 F-16V가 대만에겐 금싸라기 같은 전력이라는 뜻이다. 대만은 F-16V로 중국의 J-20과 싸우려는 준비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달 15~17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린 2019 대만 타이베이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TADTE)에서 록히드 마틴은 신형 적외선 탐지ㆍ추적장치(IRST)를 선보였다. IRST는 엔진에서 나오는 열로 적 전투기를 잡는 장치다. 대만은 신형 IRST로 중국의 J-20을 조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 공군의 F-16A가 대만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중국 공군의 H-6 전략폭격기에 대응하고 있다. [사진 대만 공군]

대만의 쯔유스바오(自由時報)는 F-16V에 레이저 통합직격탄(LJDAM)인 GBU-54를 탑재한다고 보도했다. 메이푸싱(梅復興) 대만해협안전연구센터 주임은 “LJDAM은 정확도가 GPS 유도만을 사용하는 JDAM의 6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F-16V가 단순한 방어용 무기가 아니라 여차하면 중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한방을 갖췄다는 뜻이다.

중국은 지난달 29일 자국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인 J-20을 대만 가까운 곳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가깝거나 먼 곳의 적으로부터 중국 땅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가까운 적은 대만을 뜻한다. J-20은 당분간 스텔스 전투기를 가질 수 없는 대만에겐 치명적 위협이다. 대만의 F-16V에 맞서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F-16V가 대만을 단숨에 중국보다 힘에서 앞서도록 해주는 게임 체인저는 아니라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에게 껄끄러운 존재는 분명하다. 김태호 교수는 “F-16V는 중국의 대부분 전투기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곧 실전에서 F-16V의 능력을 떠보려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J-20보다는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Su-35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Su-35는 중국이 2016~18년 모두 24대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최신예 다목적 전투기다.

대만 근처에서 대만과 중국이 우발적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동북아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대립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관계도 껄끄럽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맹과 가까운 괸계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편을 들면서, 미국과 핵협상 중이다. 일본은 미국과 힘을 합해 중국과 맞서려 한다. 대만은 홍콩의 시위를 지지하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냉전 중이다. 곳곳에 시한폭탄이다.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J-20. 대만은 이 전투기를 가장 큰 위협 요소 중 하나로 꼽는다. [사진 웨이보]

과거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를 양분했던 냉전은 끝났다. 하지만 오늘도 동맹으로 짜여진 진영 간 대립은 여전하다. 북한이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대만까지 신경쓰는 이유다. 동북아 안보는 이처럼 실타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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