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명분없는 자유한국당 장외 집회, 흥행 코드는 '조국'

성한용 2019. 8. 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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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막전막후 281
자유한국당 24일 광화문 집회의 주인공은 '조국'
손팻말·펼침막·깃발·영상 조국 관련으로 가득 차
김진태 오세훈 등 연사들 한목소리로 조국 규탄
'태극기 원조' 김진태 의원 "우리도 촛불을 들자"
오세훈 전 시장, "문재인 대통령 즉각 물러가라"
황교안 나경원 연설 대부분 조국 후보자에 할애
조국 의혹 아니었으면 광화문 집회 실패했을 것
'조국 명분' 사라지면 장외 집회 열기 어려울 듯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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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장외 집회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지난 8월 13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페이스북 국회 직원 및 보좌진 익명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이런 글이 떴습니다. 표현이 좀 거칠지만, 생동감을 위해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이미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우리 당 왜 이럴까

머리를 좀 썼으면 좋겠다.

우리 지지층이 저들처럼 광장에 나오는 성향들인가...

4월 5월에 몇 번 해보면 대충 느낌 안 오나?

당의 인기 바닥이라 당비가 안 걷히니

책임당원 모아오라고 그렇게 닦달을 해대다가..

그래도 돈이 안 모이니 투쟁기금이니 뭐니 해서 영감들에게 돈 뜯어갔지...

근데 돈 모아서 한다는 짓이 장외투쟁….

지난번처럼 당협별로 몇 명씩 모아오라 하고

사후 보고도 하라 하면서 보좌진 쥐어짜겠지..

8월 막바지 한참 더울 때니까

낮에 하다간 사람들 쓰러질 수 있으니 또 밤에 하자 하겠지.

그럼 지방 사람들은 어떻게 집에 가라고...?

제발 똑똑하게 싸우면 안 되나?

지금 현안들이 얼마나 많은데 헛짓거리만 하고 있는지?

돈 허튼 데 쓰지 말고 제발 정책연구와 대안을 만드는 데 쓰고

머리 좋게 투쟁합시다.

OO신같이 몸으로 때우려 하지 말고 이 지도부 OO끼들아

실제로 당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황교안 대표는 장외 집회를 밀어붙였습니다. 8월 18일 ‘가열찬 투쟁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비장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저와 우리 당은 장외투쟁, 원내투쟁, 정책투쟁의 3대 투쟁을 힘차게 병행해 나가겠습니다. 국민과 함께 거리에서 투쟁하면서도, 이 정권의 실정을 파헤치는 국회 활동 또한 강력하게 전개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국민을 위한 대안을 내고, 보고 드리는 정책투쟁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경고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 오는 24일 광화문에서 구국집회를 열겠습니다. 이 정권의 국정 파탄과 인사 농단을 규탄하는 ‘대한민국 살리기 집회’입니다. 길고 험난한 투쟁의 출정식입니다.

대통령과 이 정권이 대한민국 파괴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강력해질 것입니다. 이 정권이 좌파 폭정을 중단하는 그 날까지, 우리 당은 국민과 함께 하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정권 타도 투쟁에라도 나서는 듯 장엄한 어조였지만 언론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좀 뜬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내에서도 대체로 뜨악한 반응이었습니다.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 19일 오후 다시 이런 세 편의 글이 떴습니다. 역시 표현이 좀 거칠지만, 생동감을 위해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지지율이 왜 떨어지는지를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가?

장외투쟁을 안 해서 떨어지는 건가?

대안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전혀 못보여주고 있으니 떨어지는 것 아닌가?

장외투쟁으로 지지율 재미 좀 봤다고 뭐만 하면 시위한다고

공문 뿌리고 사람 모아오라 하고 명단 제출하라 하고...

백번 양보해서 장외투쟁하는 거 다 좋은데

아직 더운 8월 여름날, 당원들 끌고 오라고 공문으로 압박하지 마라.

그 짓거리로 충성당원 다 날아간다.

맘 같아선 공문 날아온 것들 다 스캔 떠서 한겨레와 미디어오늘에 뿌리고 싶으니까

그만 좀 해라 이 @@새끼들아

시위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서 일어나는 거지

허구헌 날 당원을 억지로 끌어모아서 뭐하는 짓거리지 진짜

제발 머리 쓰고 제발 일 좀 하자

2년 반 만에 나라를 이렇게 말아먹는 저쪽도 용하지만

한때는 집권했던 정당의 유능한 당직자와 보좌진,

110명 국회의원 놔두고 이렇게 죽만 쑤는 지도부도 참 용하다. 이 버러지들아

기어코 당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구나

대표 아재, 대규모 규탄시위는 국민들의 마음이 동해서

자발적으로 모이는 거지

영감들에게 실적 경쟁하듯이 당원 끌어모으라고 공문 때려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니 덕택에 간당간당한 지역구 의원들 내년 총선을 다 떨어지게 생겼다.

아직 더운 이 날씨에, 그것도 대낮에, 당원들을 길거리로 몰면

참 그분들이 집에 가서 좋은 말 하겠다...

아재요, 후달리면 그냥 집에 가...

기어코 밖으로 나가겠다고 우기는 중.........

@@! 한 줌 인지도로 돈 한톨 못 모아 오면서

당 통장을 거덜 내다 못해, 싹 털어먹으려는 구나

휴가 때 사무실에 나가면 커피, 간식, 식사 준다고 좋아하더니...

돈이 어디서 막 튀어나오는 줄 아나 봐

이즈음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황교안 대표가 무리하게 장외 집회에 나서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분석했습니다.

첫째, 당 지지도가 자꾸 떨어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장외 집회를 자꾸 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세 가지 모두 다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당내 여론이 이렇게 나쁜 데 자유한국당이 광화문 집회를 잘할 수 있을까?

그런데 며칠 사이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일면서 민심이 들끓기 시작한 것입니다.

24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집회에 가봤습니다. 지난 5월 25일 이후니까 3개월 만의 장외 집회였습니다. 집회 이름은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였습니다.

이날 낮 서울 최고기온은 27.3도로 평소보다 낮았습니다. 구름이 끼어서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집회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석 인원이 국민과 당원을 포함하여 10만여 명이라고 했지만, 자유한국당 당원들과 근처를 지나던 행인, 광화문에 미리 자리 잡고 있던 우리공화당 사람들, 같은 시간 차도를 행진한 태극기 부대 인파를 다 합쳐도 그 정도로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집회의 주인공은 황교안 대표도 아니고 나경원 원내대표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이름은 ‘조국’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이렇게 네 개의 손팻말을 준비했습니다.

“조국은 사퇴하고 문재인은 사죄하라”

“조로남불 위선정권!”

“평등? 공정? 정의? 못찾겠다 文정권!”

“아무나 흔들어대는 나라! 이게 나라냐?”

어느 당협에선가 따로 제작해서 들고나온 손팻말의 주인공도 조국이었습니다.

‘조로남불, 정의를 입에 담지 말라, 조국 OUT'

'편법상속, 편법투자, 비리와 거짓의 종합세트, 조국수사’

‘조국의 캠코 12억을 6원으로 탕감, 조국수사’

우리공화당에서 내건 펼침막의 주인공도 역시 조국이었습니다.

‘조국캐슬 조로남불에 젊은 청년들은 분노한다!’

오후 2시가 되자 전희경 의원이 사회자로 연단에 섰습니다. 국민의례 뒤 대형 스크린에 문재인 대통령 영상이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연사들이 차례차례 무대에 올라 규탄사를 했습니다. 규탄사의 내용도 거의 모두 조국이었습니다.

김진태 의원은 “조국은 이미 사노맹에서 끝난 사람이다. 국가 전복을 꿈꾸던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힌다고 하면 이걸 나라라고 할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김진태 의원은 “자본주의를 때려 엎자는 사람이 뒤로는 100억짜리 가족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며 “이제 학생들이 들고일어나고 있다. 서울대, 고대, 부산대까지 촛불집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태극기 원조인데 이제 이번 일은 태극기 말고 우리도 당당하게 남녀노소 온 국민과 다 함께 분노의 촛불 들어야 하지 않겠나. 좌파의 위선적 이중성에 분노한 촛불을 들자”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청년단체 대표들도 한목소리로 조국 후보자를 규탄했습니다.

“나는 조국 같은 아버지가 없어서 용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너희들은 개천에 가서 가재와 붕어와 개구리로 살라고 해놓고 자기 자식들은 특권과 반칙으로 용을 만들었다.”

“조국 후보자에게 묻는다. 조국 후보자를 앞세운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한 기회는 당신들에게 평등한 것인가. 과정은 당신들에게만 공정한 것인가.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이야기한 정의로운 결과인가.”

“도덕과 정의를 부르짖던 386 운동권들은 조국을 비호하고 있다. 너무나 역겹다. 평소 그렇게 도덕과 정의를 부르짖어 놓고 조국을 비호하고 있다. 그들에게 도덕과 정의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비겁한 무기에 불과하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 조경태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등단했습니다. 신원식 전 차장은 문재인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주장했습니다. 오세훈 전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할 것과 대통령직에서 당장 물러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집회의 하이라이트인 나경원 원내대표와 황교안 대표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의 연설은 길지 않았습니다. 연설의 80%가 조국 후보자 의혹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나머지 20%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비판이었습니다. ‘조국 의혹’이 없었다면 과연 두 사람이 집회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두 사람의 연설은 다른 언론과 다른 기자들이 이미 자세히 보도했기 때문에 제가 따로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결론은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승리해야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를 열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광화문 집회는 1시간 30분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의원, 당원들과 함께 청와대 근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자유한국당은 주말마다 장외 집회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일단 8월 30일 부산에서 자유한국당 장외 집회가 열립니다. 8월 31일에도 자유한국당의 광화문 집회가 신고되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장외 집회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유한국당이 장외 집회를 계속하기는 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장외 집회를 이어갈 내부 동력이 없습니다.

앞부분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 올라온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장외 집회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전국의 당원들을 한날한시에 서울로 불러올리는 대규모 장외 집회에는 돈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더구나 장외 집회는 ‘점잖은’ 보수 성향 자유한국당 당원들의 체질에 잘 맞지도 않습니다.

둘째, 장외 집회를 이어갈 명분도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자유한국당의 8월 24일 장외 집회는 무리한 기획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터진 ‘조국 후보자 의혹’과 ‘지소미아 종료’ 덕분에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체면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하늘이 도운 셈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조국 후보자 의혹을 계속 끌고 갈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 23일 대표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후보자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국민께서 조국 후보자 논란에 관해 속상해하시고 걱정도 많이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권 여당 당 대표로서 이 점에 대해선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조국 후보자가 국민의 분노 지점에 대해서 청문회에서 진솔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한 점도 남김없이 밝히고 국민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청문회에서 사과하고 설명한 뒤 국민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찬 대표는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인입니다. 어설프게 사과를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이해찬 대표가 조국 후보자에 대해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청문회에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현 정부는 ‘조국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논란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플러스가 된다면 강행해야겠지요. 그렇지 않고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마이너스가 된다면 임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국 후보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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