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냉동인간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김종화 2019. 8. 27.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냉동인간 상태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캡틴아메리카'의 모습.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영화나 소설에서 '냉동인간'이 다시 깨어나 활동하는 모습을 다루는 것은 흔한 소재가 됐습니다. 요즘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냉동인간은 미래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당연한 방식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머나먼 우주의 목적지를 향해 수십년간 항해할 때 승무원과 고객은 냉동상태로 수십년간 잠들어 있다가 목적지 도착 직전에 깨어나기도 합니다. 또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가족이 미래에 치료방법이 개발된 이후 깨어나 치료받길 바라면서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보존시키지요. 냉동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SF영화와 소설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요? 냉정하게 말하면, 냉동인간은 '냉동된 시체'일 뿐 입니다. 머나먼 미래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냉동된 인간이 다시 깨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냉동된 인간을 해동해도 해동된 시체일 뿐 이라는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인간을 다시 얼렸다가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인간을 냉동했다 깨우는 것은 에너지를 보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이 동면하는 이유는 먹이가 부족한 겨울 동안 긴 잠을 자면 이 기간 중엔 체온이 내려가고 호흡수도 크게 줄어서 깨어있을 때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기 때문인데 이런 겨울잠을 '하이버네이션(Hibernation)'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나 생명체 등을 얼음처럼 꽁꽁 얼려서 냉동 보관하는 것은 '크라이오닉스(Cryonics)'라고 합니다. 이는 동면과 달리 생체조직이 상하지 않도록 특별한 처리를 한 상태에서 인간이나 생명체의 생체조직을 초저온으로 냉동시켜 장기 보존하는 기술입니다. 영화 등에서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크라이오닉스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이나 생명체는 없습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공적인 하이버네이션은 의학적으로 저체온 요법을 시행할 경우에 길어야 한 시간 정도 가능합니다. 인간이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겨울잠을 자지는 못합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크라이오닉스의 경우는 일정기간 냉동 후 다시 깨어나 완벽한 정상 상태로 회복돼야 성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겨울에 차가운 물 속에 빠졌다 구조돼 회복되는 경우에도 길어야 10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의 시간은 견디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장기나 인체의 각 기관을 꽁꽁 열렸다가 해동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미국 알코사의 냉동인간 캡슐.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 그 주변의 물, 즉 수분을 보존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만약 세포나 그 주변에 얼음이 형성될 경우 세포 안팎의 농도가 크게 달라져서 세포에서 물이 빠져나가 파괴돼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인체의 대부분인 물은 액체일 때보다 고체일 때 부피가 더 커지는데 인체도 꽁꽁 얼게 되면 세포 내부의 수분이 팽창해 세포벽을 찢어버리게 됩니다. 찢어진 세포는 저절로 원래대로 복구되지 않기 때문에 해빙해도 다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몸속에서 수분을 빼내고 동결방지제(부동액)를 대신 넣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2000년대 초 세포에 얼음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유리화동결법'이라는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샘플을 얼음이 아닌 유리 상태로 바꿔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로 그레고리 페이라는 과학자는 2003년 다양한 부동액과 화학물질을 혼합해 토끼의 신장을 통째로 저온 보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해동된 신장이 다시 이식된 후에도 한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는 '21세기 의학' 이라는 회사가 돼지와 토끼의 뇌를 손상없이 보존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쥐의 자궁을 냉동시켰다가 다시 해동해 쥐에게 이식한 다음 임신시키는데 성공한 바 있고, 인간 여성의 난소를 얼려 보관한 뒤 해동해 이식해서 임신하게 하는 실험도 성공한 바 있습니다.

인간도 직접 냉동인간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UC버클리의 제임스 베드퍼드 교수는 폐암 선고를 받자 1967년 '인체 냉동보존술'을 통해 인류 최초의 냉동인간이 됩니다. 냉동 당시 그의 몸에서 체액과 혈액을 모두 빼내고 응고 및 동결방지제가 포함된 혈장으로 대체했고, 영하 196℃의 액체질소가 담긴 금속캡슐에서 냉동상태에 돌입하게 됩니다.

베드퍼드 교수의 냉동된 육신은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지만 미래에 깨어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1991년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보관실에서 꺼냈을 때 몸은 그대로 보존됐지만 손상돼 있었고, 피부는 변색됐으며, 코와 입에서 나온 피가 얼어 있었다고 합니다. 내부 세포 일부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의 육신은 여전히 미국의 냉동보존업체 '알코'사의 냉동실에 보존돼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컴포트에 건설할 예정인 세계 최대규모 냉동보존 연구센터인 '타입쉽'의 조감도.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미래에 다시 깨어나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몇 과학자와 건축가는 미국 텍사스주 컴포트의 98만평 부지에 '타임쉽'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타임쉽 프로젝트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몸을 극저온에 보관했다가 미래 문명의 사람들이 되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요새처럼 지어질 타임쉽에는 냉동된 사람뿐 아니라 장기와 줄기세포, 배아,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DNA 등 소중한 생물학적 샘플을 보관할 계획입니다. 생명연장 연구소인 '스테이시스 리서치파크'를 포함한 이 모든 시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건설됩니다. 정전에 대비해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군사기지나 원자력발전소가 인근에 있지 않고, 지진이나 토네이도,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부지도 선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건물은 완공해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냉동인간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미래에 다시 되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어리석은 돈낭비이며, 수천구의 육신이 제대로 매장되지도 못한 채 사라질 운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을 믿고 냉동 보존술로 냉동상태인 사람이 세계적으로 600명 가량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냉동상태로 보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화처럼 깨어날 수 있을까요? 그때는 타임머신으로 과거에 미래의 소식을 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혼란을 우려해서 미래의 인류가 지금의 인류에게 깨어난 그들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