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촛불과 검 앞에 선 '386 주류'

황정미 입력 2019. 8. 27. 23: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후안무치에 폭발한 청년세대의 분노 / 이념코드로 뭉친 기득권 카르텔 깨야
‘촛불정권’의 상징이라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대학생들 촛불시위의 대상이 됐다. 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2030세대 울분이 여론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터져나오지 않았다면 “아이 문제에는 안이한 아버지였다”는 때늦은 고백마저 듣지 못할 뻔했다. 며칠 전만 해도 고교생 딸의 학술논문 제1저자 등재로 촉발된 입시 부정의혹에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날선 반응을 보였던 그다. 딸의 스펙 관리와 장학금 특전을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장막 뒤에 가려진 그들만의 운동장이 따로 있었다고 해야 맞다.
황정미 편집인
그가 해명할 때마다 소환되는 과거 올곧은 발언의 이중성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 말빚은 두고두고 그가 갚아야 할 몫이다. 의아한 건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후보자가 민심에 감응하는 수준이다. “(언론이) 사실과 전혀 다른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당시에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조국)는 말은 인사청문회를 열면 수습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어제 전격적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에도 “위법은 아니다”는 법리를 방패 삼았다. 검찰 개혁이 마뜩잖은 윤석열 검찰체제에 조국 수사는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조국’의 적폐를 수사하라는 여론에 부응하면서 개혁 칼 자루를 쥔 조국을 상처낼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독재시절에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자신들이 반대했던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을 밀어붙인 대통령과 조국의 오기가 결국 정권을 촛불과 검찰의 칼날 앞에 세웠다.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소득주도성장을 실험한 장하성 주중 대사는 대선 전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청년 세대를 향한 일종의 선동이다. “청년세대의 분노는 정의롭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점이다. … 불평등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마음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임금 분배를 막는 대기업의 독식 구조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은 책이지만 ‘조국 사태’에 대한 청년층 분노로 대치해도 과하지 않다. 그들의 분노가 ‘개인 조국’의 일탈·편법을 넘어 조국으로 상징되는 ‘386 엘리트 세력’의 기득권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해 서울대총학생회는 조국 후보자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원칙과 상식, 정의는 문재인정부의 열쇳말이다. 조국을 비롯해 ‘386세대’는 현 정부의 주류다. 촛불정신을 내세워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지만 조국 사태는 “당신들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힐문이다. “나를 386세력의 도구로 쓰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화운동, 조직활동 경력을 배경으로 한 이들의 네트워크는 공고해졌다. 정치권은 물론 참여연대, 민변, 민노총이 대표적이다. 문재인정부 장·차관의 60%, 청와대 수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념을 고리로 단단히 연결된 ‘386 주류’는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을 정당화한다. 조국 사태에 쏟아낸 청와대, 여당 인사들의 감싸기 발언 릴레이가 이들의 공범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신 “수구 보수세력의 문재인정부 흔들기” “반개혁 세력의 준동”이라는 프레임으로 비난여론에 딱지를 붙인다. 진영 논리로 조직을 동원하고 싸움판을 키워 기득권을 지키는 게 ‘386 주류’의 필살기다. 이런 권력의 갑질에 후안무치하다며 청년세대가 촛불을 든 것이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386 세대 독점 구조를 분석한 책 ‘불평등의 세대’에서 “약속은 공유되지 않고 사다리는 끊어졌으며 권력은 소수에 의해서만 향유된다는 것을 아랫세대가 깨닫는 순간 권력 균열이 생긴다”고 썼다.

문재인정부에서 ‘386 주류’ 집단화는 정점을 찍었다. 당·정·청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서울대, 고려대 등 대학가의 조국 시위는 이런 흐름에 역기류를 만들었다. 386 주류 기득권의 카르텔을 깨는 계기가 될 지 두고볼 일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정유라 시위는 “총장 나가라고 땅을 팠는데 무녕왕릉이 나왔다”는 글처럼 최순실 비선실세의 실체를 드러내는 발화점이 됐다.

황정미 편집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