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조국 딸의 논문은 '불법'이었다

2019. 8. 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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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외고를 다니면서 공저한 병리학 논문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문제의 논문은 저자 표기에 대한 실정법과 과학계의 윤리강령을 어겼고, 생명윤리에 관한 법률도 무시한 '불법' 논문이다. 의료법을 어겼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논문은 철회되어야 마땅하고, 후보자의 딸을 포함한 6명의 공동저자 모두가 무거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연구윤리 위반에는 '공소시효'도 없다.

2007년 제정된 과학기술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은 명쾌하다.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기여하지 않은 명예저자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같은 해에 과학계가 자발적으로 제정한 과총의 '연구윤리강령'의 내용도 똑같다. 명예저자 금지는 오랜 국제적 관행이다.

저자 표기 위반은 연구비 횡령보다 훨씬 무거운 사안이다. 연구재단의 '국가R&D사업매뉴얼'에 따르면, 위반 행위가 이루어진 연도부터 적발된 연도까지 지원된 모든 연구비의 전액을 환수한다. 그러나 연구비 횡령의 경우에는 해당 연도의 연구비만 환수한다.

교신저자가 옹색하게 내놓은 영어 번역, 먼 거리 출퇴근, 실험실의 잔심부름은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대한 기여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영어 번역은 상업적 서비스도 허용된다. 심지어 학술단체가 번역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병리학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외고 학생이 먼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논문을 통째로 번역해주었더라도 병리학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외고 학생의 병리학 연구 참여 자체가 심각한 실정법 위반일 수 있다. 법률적으로 '인체 유래물'이라고 부르는 신생아의 혈액 시료를 사용하는 연구에는 '의료법'과 2005년부터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교신저자도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논문에 포함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았다'는 허위 진술이 명백한 증거다.

외고 학생의 소속을 단국대 의과학연구소로 표시한 의도도 불순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의 소속을 정확히 밝혔더라면 'IRB의 승인'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고 학생의 해외대학 진학을 도와주고 싶었다는 교신저자의 의도는 명백하게 법과 제도를 벗어난 것이었다. 문제의 논문이 교육부의 공저자 끼워 넣기 전수조사에 걸리지 않았던 것도 소속기관을 의도적으로 위조했기 때문이었다.

병리학 논문을 외고 학생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통계 문제로 변질시켜버린 서울대 천문학자의 주장도 가짜뉴스에 가까운 억지다. 혈액과 같은 인체 유래물을 다뤄야 하는 병리학 연구에는 생명윤리에 대한 실정법이 적용된다. 교신저자가 논문의 제1저자 선정에 대해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신진연구 지원 사업으로 수행된 연구의 결과를 엉뚱한 선배 교수가 가로채버린 것도 법과 제도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연구재단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병리학회지에 버젓이 게재된 정식 학술논문을 허접한 '에세이'로 격하시켜버린 교수 출신 교육감의 발언은 몹시 부끄러운 가짜뉴스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교신저자에게 있다. 그러나 불법 논문에 이름을 끼워 넣은 외고 학생의 윤리적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미성년의 딸을 명백한 불법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시킨 후보자 부부가 연대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후보자와 교신저자 부부 사이에 형사범죄에 해당하는 은밀한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을 뿐이라는 현실 인식은 법학자를 자처하는 후보자에게는 부끄러운 변명이다. 그런 기회에 '접근하지' 못해서 상처를 입은 국민과 청년에 대한 사과도 사실은 절망하고 있는 국민과 청년에 대한 모욕적 조롱이다. 소환·불철저와 같은 30년 전 운동권 어휘로 쏟아내는 어설픈 성찰·반성에서는 후보자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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