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에 항의' 정부 이례적 공개..한미동맹 파열음 고조

김성훈,안정훈 2019. 8. 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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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해리스 대사 사실상 초치
美서 한일갈등 韓책임 확산
국내서도 불안 여론 높아져
정부, 강수로 대응 나선듯
"美대사 부르는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 키울수도"
해리스 "본국에 보고할것"
향군 안보강연도 돌연 연기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외교부는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불러 미국의 비판 발언 자제를 요청한 뒤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외교부는 해리스 대사와 면담 형식의 논의라고 밝혔지만 미국에 공개적으로 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가에선 미국대사에 대해 사실상 '초치'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이후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로 응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사 문제를 통상갈등으로 확대시켰다'는 차원에서 한국보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책임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자 미 행정부와 의회 곳곳에서 '강한 실망과 우려'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소미아 종료 발표가 나온 직후인 2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한국이 정보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을 보게 돼 실망했다"고 밝혔다. 데이브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한다"는 논평을 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은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무책임하다" 등 한층 수위가 높은 표현을 썼다. 워싱턴 조야의 고위 인사들이 실명으로 동맹국 정부를 향해 '실망' 등 강한 어조를 사용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 쪽에 갈등의 책임을 돌리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AFP통신이 27일 인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소미아가 11월 22일까지는 유지된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워싱턴은 서울이 그때까지 생각을 바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날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군이 지소미아 종료 통보 직후 실시한 독도방어훈련에 대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않는 조치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불끄기'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의 인식이 그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고 향후 일본과의 외교 대결에서도 불리할 것이란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워싱턴에서는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미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며 "해리스 대사를 부른 것은 정부로서도 한미 관계의 추가적 악화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해리스 대사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면담한 자리에서 지소미아 종료 통보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진의'를 강조했다. 조 차관은 "미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한국이 스스로 더 강한 국방 능력을 갖춰주길 바라왔다"며 "우리 스스로 더 강력한 국방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한다는 데 우리 정부의 진정한 의도와 의지가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해리스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알겠다"면서 "본국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해리스 대사의 구체적인 발언에 대해선 외교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러한 설명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우리 정부가 국방력 강화를 한미 동맹 강화와 연결하려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일 동맹'에 대한 지지 표명 없이 자주 국방만을 강조한 것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주한미국대사를 불렀다는 사실을 공개한 점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한미 관계의 난맥상이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건 기존의 한미 외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공개 비판으로 악화되고 있는 국내 여론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에 자제 요청을 하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을 충분히 알 텐데 대사 초치를 공개한 것은 국내적인 이유가 배경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서 "국민이 여러 가지 미국 반응을 접하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외교 협의 채널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주한미국대사를 청사로 불러 면담하고, 또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공개 비난에 대한 항의성 조치의 성격도 엿보인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미국에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국가 간에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다른 문제"라며 "이는 절대로 호의적인 국가 간 의사소통 방식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응이 오히려 한미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대사를 부르는 식의 공식적 대응은 오히려 역작용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우 센터장은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가지는 불쾌함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며 "미국이 그래도 동맹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던 부분이 앞으로는 과거와 같지 않을 정도의 사안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도 "한·미·일 동맹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고 자주 국방만을 강조한 건 정부가 한·미·일 동맹 대열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줄 것"이라며 "한미 동맹의 파열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 최대 안보단체인 재향군인회는 29일로 예정됐던 해리스 대사 초청 안보강연을 돌연 연기했다. 향군은 "최근 급변하는 안보 상황과 관련해 (해리스 대사의) 초청강연 시기를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행사 추진 과정에서 불편을 끼친 데 대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선언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해리스 대사가 한국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불참을 통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향군 관계자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해리스 대사 초청 강연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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