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운명의 날..'삼성 승계작업 유무' 판단에 달렸다

이혜리 기자 2019. 8. 2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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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제3자 뇌물죄’ 유죄 판단 전제 승계작업, 박근혜 2심은 인정
ㆍ법인자금으로 뇌물 ‘횡령’…액수 50억 넘으면 집유 어려워
ㆍ최순실에 넘긴 ‘말 3마리’ 뇌물로 판단할 경우 뇌물액 2배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선고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입구에 이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배너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2심 판결이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판결이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상반된 두 판결을 두고 29일 결론을 낸다. 핵심은 ‘뇌물’이다.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가 뇌물 액수를 87억여원으로 인정했지만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36억여원만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준 뇌물은 삼성 법인자금이라 횡령으로도 이어진다. 횡령 액수가 50억원 이상으로 인정되면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이 재구속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존재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단도 관심거리다. 재벌 총수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의미가 크다. 승계 문제는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과도 직결된다. 대법원 결론을 앞두고 쟁점을 짚어봤다.

■ 경영권 승계작업 존재했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는 크게 ‘단순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로 나뉜다.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비용 명목으로 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3484만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돈이 직접 귀속돼 단순 뇌물죄가 적용됐다. 박근혜·이재용 재판부는 대통령이 삼성의 기업활동에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광범위한 직무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대가관계가 있다며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과 별도의 단체에 뇌물이 귀속된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혐의다. 삼성이 최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게 대표적이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며 제3자에게 대신 뇌물을 줘야 성립한다. 즉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하며 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존재했는지는 제3자 뇌물죄의 유죄 판단을 위한 ‘전제’다.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이 청탁할 내용이나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포괄적 현안으로나마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돼야 이 부회장이 청탁할 내용과 동기가 명확해진다.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2심인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 부장판사)와 이 부회장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다. 이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후계자로서 경영권을 승계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삼성그룹 내·외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처럼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작업을 삼성이 과거부터 해왔다는 점을 재판부는 고려했다. 박 전 대통령 2심은 “승계작업은 대통령의 직무와 영재센터 등에 제공되는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고 구체적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반면 이 부회장 2심인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이 이 부회장 승계작업을 위한 게 아니라고 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등에 대해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인정된다”면서도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확인되는 것일 뿐, 목표였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도 같은 판단이었다. 뇌물 인정의 첫 단추인 승계작업의 존재부터 부정되면서 이들 두 재판부 판결에서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다.

■ 박·이 사이 묵시적 청탁 있었나

승계작업이 이뤄졌다고 판단한다면 다음 고려 대상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다. 청탁은 반드시 명시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2심은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려고 만든 독대 자리에서 삼성 합병 이야기가 나왔다고 판단했다. 즉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봤다. 금산분리 원칙 강화나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으로 지배권에 심각한 위협이 제기될 수 있던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봤다.

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때 ‘엘리엇 등 외국 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승계작업처럼 포괄적 현안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안에 부정한 청탁을 인정한 것은 이 재판부가 유일하다.

반면 이 부회장 2심은 설령 승계작업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청와대가 승계작업 관련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인식했다고 볼 수 없고, 형사처벌을 자의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명확성의 원칙’을 따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했다.

살시도·비타나·라우싱 등 말 3마리(보험료 포함 36억5943만원)를 뇌물로 인정할지도 쟁점이다. 승계작업이나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삼성이 말 3마리를 최씨에게 뇌물로 넘겼다고 대법원이 판단할 경우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2배 늘어난다.

1·2심에서는 최씨가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에게 “이 부회장이 VIP(박 전 대통령)에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고 화를 냈다는 대목에 관한 해석도 정반대였다. 이 부회장 2심은 삼성이 말 소유권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자 최씨가 화를 냈다고 봤고, 박 전 대통령 2심은 박 전 사장이 최씨에게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며 소유권이 사실상 넘어간 것이라고 봤다.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 불렸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업무수첩의 증거능력도 쟁점이다. 업무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직권남용죄에 대해 대법원이 기준을 세울지도 법조계에서 관심을 둔다. 박 전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라고 한 혐의 등에 직권남용죄가 적용됐다. 대통령의 일반적 직무권한이 어디까지인지가 쟁점이다. 직권남용죄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법농단 피고인들에게도 적용됐고, 인정 범위에 대해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결들이 나온 상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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