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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내가 성교를 했다면 ㅁㅁㅁㅁㅁ'..대통령 경호처 공채, 인성검사 논란

조문희 기자 입력 2019.08.29. 06:01 수정 2019.08.2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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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8일 대통령경호처 공식 홈페이지 채용공고 란에 ‘2019년도 대통령경호처 정기공채 공고’가 게시돼 있다. 대통령경호처 제공.

“다음 기술된 문장은 뒷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각 문장을 읽으면서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뒷부분에 기록하여 문장이 완성되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성교를 했다면 ○○○○○(빈칸)”

‘2019년 대통령경호처 정기공채’에 등장한 인성검사 문항이다. 수험생들은 질문이 선정적이고, 성중립적이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대통령경호처(경호처)는 지난 21일 ‘2019년 대통령경호처 정기공채’ 과정의 하나로 인성검사 및 체력검정을 진행했다. 7급 특정직 경호공무원을 선발하기 위한 절차다. 지난 8일 치러진 1차 필기시험에서 합격한 수험생 206명을 대상으로 했다. 수험생들은 인성검사를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객관식 검사와 문장완성검사(SCT)라는 주관식 검사로 나눠 치렀다. 주관식 검사에서 “완전한 남성상은 ○○○○○”, “내가 성교를 했다면 ○○○○○”, “나의 성생활은 ○○○○○” 같은 문제가 나왔다.

이날 시험을 치른 ㄱ씨는 경향신문과 만나 “시험이 끝나고 함께 시험 본 친구들과 식사를 했는데, ‘문제가 이상했다’는 말이 나왔다. 사생활 침해도 문제지만, ‘완전한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묻는 게 적절한 질문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ㄱ씨는 “수험생 중 여성도 있었는데, ‘내가 바라는 여인상은’ 같은 문항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고도 했다.

ㄴ씨는 “성적인 내용에 관한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며 “객관식 시험에서도 어지럼증, 우울증 등에 관한 질문이 반복돼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검증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주관식 문항은 아무래도 납득이 잘 안 갔다”고 했다.

반면 ㄷ씨는 “욕구 충족 여부가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성인에게 성적욕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심리검사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봤다”고 했다.

경호처 특정직 경호공무원의 채용과정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경호처에서 직접 주관한다. 이번 시험의 시행과 문제출제도 경호처 인사과가 주관했다. 인사과 관계자는 “해당 문항이 인성검사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에는 MMPI 객관식 인성검사만 시행하다가, 올해부터 주관식 시험을 추가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신적인 문제 유무를 알아보기 위해 인성검사는 원래 이상하고 불편한 문항을 낸다”며 “한국심리학회에서 문항을 받았고, 답은 교수들이 해석하고 판정한다. 경호처는 인성검사 문제 출제에 개입할 이유도, 능력도 없다”고 밝혔다.

경호처의 인성검사 질문이 입사 시험용으로 적절한지에 대해 학계의 의견은 엇갈렸다. 권수영 한국상담진흥협회장(연세대학교)은 “SCT를 시험 당락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권회장은 “SCT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들은 직접적인 진단도구가 아니라 상담을 위한 보조 도구다”라며 “말로 하기 힘든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끌어내고, 사후 상담을 진행해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검사의 목적이 있다. 시험 이후에 내면을 탐색할 기회가 없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라고 했다.

SCT를 넘어, 인성검사 자체가 채용 과정에서 적절한 절차인지 묻는 의견도 있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SCT의 문항 하나하나를 문제삼기는 어렵다. 이미 널리 알려진, 표준화된 검사이기 때문”이라면서도 “인성검사는 사람의 단면을 보여줄 뿐, 정확히 이해하는 유일 수단이긴 어렵다. 검사를 진행하는 당시의 상황도 인성검사에 영향을 미치는데, 마침 그때 잠깐 불안한 상태였다면 그 사람의 인성검사가 적절하게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팔이 하나 없는 사람은 안받아준다 하면 인권에 위배되지 않나. 정신상태를 평가해서 합불 여부를 따지는 것도 다르지 않다”라며 “체력검정에서 합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접의 보조자료 차원에서 인성검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싶다”고 했다.

반면 한국심리학회 장은진 부회장(침례신학대학교)은 “이번 채용과정에서 심리검사를 실시한 목적은 단순한 인성검사를 넘어, 개인의 정신건강 측면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SCT는 개인의 정신건강이나 심리상태를 비교적 잘 평가할 수 있는 심리검사 도구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사용한 SCT는 그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유형이었다”고 밝혔다. 장 부회장은 “특히 대통령 경호처 직원은 총기를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MMPI만으로 파악되지 않는 부분까지 더 정밀하게 평가하고자 했다”며 “절대 인권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성과 관련된 질문은 개인의 여러 가지 정신건강을 평가하기 위한 영역 중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장 부회장은 “SCT를 추가로 시행하면 교차타당도를 높임으로써 개인의 심리상태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다”며 “이전과 달리 여러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 직원을 잘 선발하려는 청와대 경호처의 노력이 바람직하게 생각된다”고 했다. 이어 “단, 앞으로 이러한 심리검사를 하게 되는 경우, 수검자들에게 실시하는 심리검사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청와대 경호처 근무를 지망한 분들에 대해서도 MMPI와 SCT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필요한 경우 임상심리 및 상담심리전공 교수 등이 참여해 30분 정도의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호처는 27일 2차 전형 합격자명단을 발표했다. 합격자들은 내달 3일 신체검사를 받은 뒤 같은 달 5일까지 3일 간 합숙 면접시험을 치른다.

※장은진 한국심리학회 부회장 등과 추가 인터뷰를 진행해 29일 수정·보완한 기사입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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