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투자국' 한국 법원 찾아온 인니 주민들 "우리나라에 석탄발전소 제발 그만 지으세요"

김한솔 기자 2019. 8. 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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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최근 두산중공업 추가 수주
ㆍ산은·무역보험공사 상대
ㆍ직접 투자 반대 가처분 신청
ㆍ“탈석탄 한국, 이중적” 비판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을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인도네시아 주민 바유딘.

“석탄화력발전소 인근 마을은 온갖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로 병원에 대기 줄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획량이 크게 줄어 생계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반드시 추가 건설을 막아주세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자와섬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인도네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는 한국 기업에 금융 지원을 하지 말아달라며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대기오염이 점점 심화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더 이상 들어서지 않도록 막아달라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인 안디 유스릴, 푸르산 루바니, 바유딘 등 3명은 한국인 황선자·김보림씨와 함께 29일 서울중앙지법에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을 상대로 무역보험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인도네시아 특수목적법인인 IRT와 인도네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 자와 9·10호기를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1조6487억원이다. 무역보험공사 등은 이 사업에 대출금과 무역보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환경을 파괴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한국의 공적 자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가처분 신청서에서 “발전소가 설립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와섬 지역은 이미 들어서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때문에 환경오염이 심화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비전염성 질병 사망자 중 대기오염이 직접적 원인이었던 사람이 약 13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기오염을 줄이지 않으면 조기 사망자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수많은 주민들이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등 지역사회의 반발도 매우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후 수질 및 대기오염으로 인해 자와섬의 소금 채취, 농어업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대로 가면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 건설한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환경 피해를 호소하며 현지 주민이 한국에서 법적 절차까지 밟는 첫 사례다. 법적으로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과는 별개로, 사건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에서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탈석탄’을 표방하면서도, 사회기반시설이 낙후한 동남아 지역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열을 올리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는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이중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 짓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지난 6월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기관 ‘에어비주얼’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오염된 도시’로 꼽혔다. 이후 자카르타 주민들은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대기오염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자카르타 주변에만 현재 22기의 석탄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 중 한국 기업이 건설했거나 건설 중인 발전소는 3기다. 자와 9호기와 10호기까지 하면 총 5기로 늘어나게 된다.

신청인들은 이날 발전소 건설 예정지에 사는 지역 주민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탄원서도 공개했다. 칠레곤 지역에서 트럭 운전을 하는 조코(가명)는 탄원서에서 “한국에서는 대기오염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고, 한국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등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한국이 인도네시아에서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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