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RO팀'의 민간인 사찰 의혹..문재인 정부에서도 '프락치 활동' 시켰다

허진무 기자 2019. 8.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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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찾아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업무중 순직한 국정원 직원을 기리는 ‘이름없는 별’ 추모석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국가정보원은 ‘RO(지하혁명조직) 사건’ 제보자를 저의 롤모델처럼 얘기했어요. 그 제보자가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는데 저도 받을 수 있다고요. ‘우리는 김대중·노무현도 버틴 조직이다’, ‘임명직과 상관없이 우리는 할 일을 한다’, ‘언젠가 때가 오면 사건화하겠다’는 말도 했어요. 저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걸 전혀 체감하지 못했어요. 국정원은 RO 사건 이후 다른 공안사건을 기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국가정보원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ㄱ씨는 28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국정원이 자신을 통해 공안사건의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동안 ㄱ씨는 계속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 시민단체에 잠입해 대학 시절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선후배 수십명의 동향을 파악해 국정원에 보고했다. 그는 약속 장소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오랜 정보원 활동의 스트레스 때문에 안면마비 증상을 겪고 있었다.

■경제적 곤란 노리고 접근한 ‘RO팀’

ㄱ씨는 2014년 9월부터 약 5년 동안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기본급 200만원에 성과급 수십만원을 받으며 ‘프락치’ 활동을 했다고 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감시하면서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유도하면 언젠가는 ‘사건’이 터질 거라는 취지였어요. 사건이 터지면 마지막으로 제 진술이 들어가면 될 거라고 했어요. 위법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한 단과대학 학생회장이었던 ㄱ씨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2006년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입대했다. 관할 기무부대장은 ㄱ씨를 계속 찾아와 학생운동 전력을 추궁하며 ‘군대에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가라’고 설득했다. 기무부대에 시달리던 ㄱ씨는 2007년 1월 국정원에 연락해 ‘더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역 이후에도 국정원 직원들은 ㄱ씨를 1년에 1~2차례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다.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충남에서 학원을 열었던 ㄱ씨는 사업에 실패했다. 아버지의 캠프장 사업을 도왔지만 결국 사채까지 얻었다. 아내가 임신한 상황에서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다. 그때 다시 국정원이 ㄱ씨를 찾았다. 2014년 낯선 전화번호로 ‘사업 관련 논의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ㄱ씨는 캠핑장 사업인 줄 알고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사업’은 다른 사업이었다.

약속 장소에는 국정원 직원 3명이 있었다. 이들은 ‘경기지부 공안2팀’이라고 소개하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RO 사건’을 들어봤냐. 모두 우리가 했다. 우리는 국정원에서 가장 능력 있는 팀”이라고 했다. 이들은 ㄱ씨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모여 활동했던 학생운동 조직 출신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국정원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면 안 된다. 제거돼야 한다”며 “우리를 도와주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ㄱ씨는 거절했지만 국정원은 6개월에 걸쳐 수차례 다시 찾아왔다. 찾아올 때마다 “고기 사먹으라”며 손에 10만~30만원씩 돈을 쥐어줬다. 아기의 분유값을 걱정하던 ㄱ씨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국가정보원의 정보원으로 활동한 ㄱ씨가 국정원 직원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ㄱ씨가 정보원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국정원 직원이 만류하기 위해 수원시의 한 건물에서 만나자며 주소를 보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예행연습’ 뒤 ‘가이드라인’ 따라 진술서 작성

국정원은 ㄱ씨를 ‘김 대표’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직원들끼리도 별명을 불렀다. 국정원 지시에 따라 ㄱ씨는 캠핑장 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임대업체 대표’ 행세를 했다. 시민단체 운동을 하기 적임자인 신분을 만들어냈다. ㄱ씨는 예전 학생운동 선후배들과 다시 인연을 쌓아갔다. 이들은 모두 한 시민단체 회원들로 대부분이 직업 활동가가 아닌 기자, 변호사, 은행원, 약사, 학원강사 등 직장인들이었다. ㄱ씨는 이 시민단체 세미나와 뒤풀이 자리에 ‘특수 가방’을 가지고 다니며 녹음했다. 녹음기를 3중으로 숨길 수 있는 가방이었다. ㄱ씨가 이들을 만나는 자리에는 항상 국정원 직원이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라졌다. “제가 보기에는 그 시민단체에 국가안보를 위협할 만한 언동은 없었는데 제 진술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국정원 직원이 저한테 국가보안법과 주체사상을 가르쳐주면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이 뭔지 알려줬어요. 진술서를 쓸 때 ‘이 정도로는 국보법 제7조 찬양·고무 정도밖에는 안 된다, 좀 더 센 것이 있어야 받는 돈이 많아진다’고도 했어요.”

국정원에는 이들의 동향을 전화로 보고했다. 담당 직원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각자 성격에 따라 보고 횟수가 달랐다. 1~2주마다 1회씩 보고할 때도 있었지만 최근 담당 직원 ‘유 박사’에게는 매일 보고했다. 중요한 정황이 일정 분량 모이면 경기 수원시에 있는 국정원 경기지부 접견실에서 진술서를 자필로 썼다. 최근에는 한 스터디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ㄱ씨는 약 5년 동안 100회가 넘게 진술서를 썼다고 했다. 진술서를 쓰기 1시간 전에는 가이드라인을 보고 ‘예행연습’도 했다. “이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게 하기 쉽다는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진술하죠. 국정원은 항상 자발성을 강조했어요. ‘본인이 자의로 진술했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게 한 뒤에 진술서에 날인을 해요.”

국정원과 ㄱ씨는 e메일 계정을 함께 공유했다. ㄱ씨는 자신의 활동비 내역을 수시로 이 계정에 올렸다. 국정원도 2016년 6월 이 계정에 ‘고대 민동(민주동문회) 주요인사 연락망’이라는 엑셀 파일을 올렸다. 이 명단 속 32명 중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포함됐다. “국정원이 입수한 파일이라면서 명단 속 인물이 대화 도중에 나오면 잘 기억하라고 했어요. 명단을 외우게 시켰는데 제가 잘 못 외우니까 e메일로 보내줬어요. e메일 계정에 구체적인 지시는 없지만 파일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감시 대상과 함께 살도록 자취방도 얻어줘

국정원은 언제나 정보원 활동비를 직접 만나 현금으로만 지급했다. 기본급 200만원을 줄 때는 ㄱ씨의 사인을 받고 영수증을 받아갔다. 진술서 내용에 따라 성과급은 상시적으로 지급됐다. 기본급과 성과급을 합쳐 한 달에 300만원을 넘지 않았다. 현금이 아닌 보상도 있었다. 진술서를 쓴 날에는 ‘룸살롱’ 접대와 성매매가 이어졌다고 한다. “담당이 여자 직원일 때는 안 했는데 남자 직원은 항상 성매매가 ‘코스’였어요. 결제에는 카드를 사용했는데 아마 특수활동비가 들어있는 카드이고 한도가 정해진 것 같았어요. 현금으로는 계산 안 해요. 과장이 ‘이거 되겠어?’라고 물으면 직원이 계산해보고 ‘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해요.”

마침내 ㄱ씨가 시민단체의 간부를 맡게 됐을 때 국정원 직원은 뛸 듯이 기뻐했다. ㄱ씨에게 성과급으로 100만원을 줬다. 국정원은 ㄱ씨가 시민단체에 출근하면서 원활한 정보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자취방까지 얻어줬다. ㄱ씨는 국정원 직원과 함께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자취방을 구했다고 했다. ㄱ씨는 이 자취방에서 시민단체 대표와 1년 동안 함께 살며 정보를 캐냈다. ㄱ씨는 이 자취방에 국정원이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의심한다. “방에 있는 화재감지기에 모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의심받지 않으면 실제로 설치하겠다고 했어요. 언젠가 진술서를 쓰면서 우연히 들었는데 직원끼리 대화하면서 ‘한 달 실험했지만 모르는데 진짜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카메라 설치를 알리면 행동이 이상해지니까 알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ㄱ씨는 수차례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국정원은 그때마다 돈으로 회유했다. 빚에 허덕이는 형편에 한 푼이라도 다급했던 ㄱ씨는 헤어나올 수 없었다. 암 투병 중인 선배의 병실에도 찾아가 몰래 녹음기를 켰다. “선배의 남편이 노동운동을 하니까 녹취를 따오라고 지시하는 걸 보고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녹음기를 들고 병원에 가면서 울었어요. 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래야만 하나….”

국정원이 ㄱ씨에게 제공한 영상 촬영 장비. ㄱ씨 제공

■“문재인 정부를 믿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정보원 생활은 만 5년을 한달 앞두고 끝났다. 지난 16일 ㄱ씨는 자신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유 박사’에게 “그만두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18일과 19일 ‘유 박사’는 ㄱ씨를 만나 “잘 생각하라”며 “6개월만 더 일하면 한달에 500만원씩 주겠다”고 설득했다. 23일 ㄱ씨는 언론에 정보원 활동을 폭로한 뒤 국정원과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ㄱ씨는 자신이 감시하던 선배가 신용대출을 받아서까지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자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이 구분됐어요. 욕을 많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늦더라도 밝히고 싶어요. 문재인 정부를 믿었지만 그 조직(국정원)은 계속 건재하게 일하고 있고 전혀 세상은 변하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희생을 하더라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보원 생활을 하는 동안 ㄱ씨의 삶은 무너졌다. 가정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아내하고는 이혼했다. 시민단체 선후배들과 함께 웃으며 술을 마시면서도 언제나 ‘걸리면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 그는 자신이 감시했던 학생운동 선후배 일부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정보원 생활을 털어놓았다. “매일이 지옥 같았어요. 5년 동안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제가 감시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오히려 저와 함께 싸워주겠다고 해서 힘도 많이 나요. 더 이상 노예 같은 삶을 살지 않게 돼 지금은 정말 좋아요.”

참여연대·민들레·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참여한 ‘국정원 감시네트워크’는 지난 27일 성명을 내고 “대공수사를 명목으로 민간인을 정보원 삼아 5년 가까이 민간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온 것”이라며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과 민간사찰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29일 정보원을 통한 감시는 대공수사부서의 합법적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내사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제보자 ㄱ씨가 자신이 ‘북한 주체사상 추종 단체 조직원’이라며 해당 단체를 신고했다”며 “최초 내사 이후 국보법 위반 정황이 포착돼 ㄱ씨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ㄱ씨가 협력의사를 표명해 다시 내사가 진행됐다. 사찰했다고 주장한 대상자 대부분은 ㄱ씨가 직접 제보했고 관련 진술서도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내사 과정에 대해서 자체 조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정원은 “국정원 내부적으로 ㄱ씨가 주장한 내사 과정의 각종 의혹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문제가 확인될 경우 상응한 책임을 물어 원칙대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시민사회 각 분야를 대상으로 한 정보담당관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민간인 사찰과 정치개입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잘못된 수사 관행이 확인된다면 엄격한 인권보호 기준에 맞춰 업무 체계 전반을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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