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세금을 허하라

반기웅 기자 2019. 8. 3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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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쉽게 불나고 무너져 내리고 범죄에 악용… 피해는 고스란히 이웃에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한 빈집 모습. / 반기웅 기자

지난 8월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원도심 골목에 있는 빈집을 찾았다. 문 앞에 서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집 안이 훤히 보였다. 잡초가 웃자라 발디딜 틈이 없었다. 세간살이는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한낮인데도 섬뜩함이 느껴져 선뜻 발을 들이지 못했다.

이런 빈집은 전국 126만가구(통계청 KOSIS·2017년 11월 기준)나 된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도 흔하다. 다가구주택 1동을 한 채로 보고 건물 내 빈집은 빈집으로 산정하지 않는 통계청의 셈법을 감안하면 실제 빈집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36만5466가구였던 빈집은 20년 만에 3.5배나 증가했다. 빈집이 일상 속 풍경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빈집 변기·정화조 터져 오물 투성이

집은 사유재산이지만 ‘빈집’이 되면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 된다. 방치된 빈집은 쉽게 불이 나고 무너져 내린다. 범죄에도 악용된다. 빈집은 인근 지역 범죄율을 19% 증가시키고(Journal of Urban Economics·2015) 빈집이 2.8가구 증가할 때마다 지역 범죄율은 6.7% 증가한다.(Journal Housing Studies·2006) 2010년 여중생을 납치해 살해한 성폭력 전과자 김길태도 빈집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빈집으로 도주해 수사망을 피했다.

이런 빈집의 폐해는 누가 떠안을까. 빈집을 방치한 집주인은 안전사고와 범죄에서 자유롭다. 관리 소홀로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빈집을 방치한 주인에게 벌금과 세금을 부과해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국내에서 빈집 주인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빈집 문제 공론화 과정에서도 집주인은 어디까지나 제3자에 불과하다. 빈집으로 인한 피해는 근처에 거주하는 이웃이 떠안는다. 범죄와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은 이사 갈 여력이 없는 이웃들의 몫이다. 빈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이들이 부담해야 한다. 깨져버린 빈집 유리창 파편이 개인에게 날아가 박히고 있다.

김정희씨(가명·66)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지하 1층 2호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다세대주택 지하방이었지만 1990년 당시 새 건물에 내 집 한 칸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김씨는 30년간 한 곳에 살았지만 맞은편 1호 집 주인은 누군지 모른다. 이제껏 지하 1호는 세입자들이 들어와 살았다. 30년 세월 동안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3년 전 마지막 세입자가 나간 뒤로 지하 1호에는 사람이 들지 않았다. 사고는 2017년 7월에 발생했다. 지하 1호 세입자가 나간 뒤 처음 맞은 여름이었다. 장마철에 지하에 빗물이 들이닥쳤는데 지하 1호의 변기가 터졌다. 거기서 나온 오물과 구정물이 김씨가 사는 지하 2호까지 흘러왔다. 지하 1호 집주인을 구청에서 수소문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연결이 끊겼다. 연락한 전화번호가 지하 1호 주인의 것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김씨와 가족들은 사비를 들여 청소를 했고 비가 올 때마다 빈집에서 흘러나온 오물을 치웠다. 이듬해 여름에는 아예 정화조가 터졌다. 같은 동에 사는 입주민(5가구) 모두가 물난리를 겪었고 119구조대까지 출동해 수습작업에 나서는 난리를 치렀다. 경찰 입회하에 잠겨 있던 지하 1호 문을 열었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 지하 1호 변기 속은 썩지 않은 물티슈로 가득했다. 공사비용은 각 가구가 나눠 냈다. 지자체 지원금을 제외하고 계산하니 각 세대당 50만원씩 부담한 꼴이었다. 김씨 형편에 50만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번에도 지하 1호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소송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비싼 소송비가 부담돼 포기했다.

빈집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세대주택 외경(위) 빈집 내부(아래) / 반기웅 기자

지자체 재생사업, 다세대 주택은 제외

김씨가 입은 빈집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오물 난리를 겪은 뒤 김씨와 함께 사는 손자 2명은 알레르기 질환을 앓게 됐다. 장판과 벽지에 오물이 스며든 탓이다. 공사를 한 뒤 지하 1호 문을 열어뒀더니 이번에는 노숙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낯선 이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김씨 가족들은 저녁 7시 이후에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 김씨는 “왜 우리가 빈집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돈이 있으면 이사를 갈 텐데 그럴 형편이 안 돼 그냥 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의문이 남는다. 집주인은 누구길래 집을 방치해 놓고 연락을 피하는 걸까. 집주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왜 버려 두었는지 이유는 추정할 수 있다. 단서는 김씨가 거주하는 지역의 재개발사업 역사에 있다. 다세대주택 빈집은 주로 재개발·재건축 등 과거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지역에 몰려 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지역도 2009년 주택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재개발사업 지정 전에 소문이 돌았는데 서울 등지에서 외지인이 몰려들어 빌라와 낡은 집들을 사들였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시세차익을 올리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재개발사업은 조합 설립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고 결국 지난해 6월 정비구역은 모두 해제됐다. 해당 지역 주민 임길자씨(가명·69)는 “여기 빌라도 그렇고 동네 다른 집들도 외부 부동산 사람들이 많이 샀다”며 “이제 재개발 안 한다니까 관리하기 귀찮고 돈 들여서 고쳐야 할 것 같으니 그냥 버려둔 것”이라고 말했다.

다세대주택 주민들이 늘어난 빈집으로 인해 겪는 피해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이들 주택은 단독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시 미관을 해치는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피해를 가늠할 수 없다. 도시 내 전체 빈집 가운데 다세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6%(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2015년 기준)로 단독주택 6.9%보다 높다. 도시 내 빈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택 유형은 아파트(65.8%)다. 하지만 미분양 물량이 포함된 수치임을 감안할 때 다세대주택 빈집 비중은 작지 않은 수치다.

눈에 띄지 않는 다세대주택의 빈집은 번번히 정비 대상 리스트에서 밀려난다. 정부·지자체가 마련한 빈집정비계획을 보면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준주택처럼 가구 구성원이 장기간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은 모두 정비 대상이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단독주택에 초점이 맞춰져 시행된다. 빈집 정비와 관련한 법안인 ‘농어촌정비법’ ‘건축법’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공통적으로 빈집 정비를 위한 방법으로 모두 철거를 규정하고 있는데, 다세대주택의 경우 한 건물 내 특정 빈집을 택해 철거작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들 정비법 가운데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빈집을 철거하지 않더라도 수리·개축·증축 등을 통해 정비할 수 있도록 대안을 넣었지만 다세대주택은 정비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도시 미관상 개선 효과가 높은 단독주택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지자체는 방치된 빈집을 매입해 리모델링·신축 정비작업을 거쳐 시장에 재공급하는 이른바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다세대주택 빈집은 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2년까지 빈집 1000호를 사들이고, 임대주택 4000호를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의 ‘빈집 활용 도시재생 프로젝트’ 역시 사업 대상은 단독주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빈집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권이 필요한데 다세대는 건물 전체를 매입해야 해서 쉽지 않다”며 “사업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매입이 수월한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캐나다·프랑스처럼 빈집세 도입 필요

현재 빈집 정비사업은 사업성을 갖춘 소수의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다. ‘보여주기식’ 빈집 정비사업을 벗어나려면 대상 범위를 넓혀 정비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기엔 선결과제가 산더미다. 당장 무엇을 빈집으로 봐야 하는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통계청에서 정의하는 빈집과 주택 정비 측면에서 활용하는 법률상 빈집, 빈집과 관련된 개별 조례에서의 빈집이 모두 달라 기준에 따라 현황이 달라진다. 정책 대상이 불분명하다보니 장기적인 빈집 관리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빈집은 지역과 발생 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먼저 무엇을 빈집으로 볼 것인지를 분명히 정해야 각 유형에 걸맞은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빈집 소유주에게 관리 책임을 묻고 사회적 비용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 마련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빈집이 지역사회 등 공공성을 해치는 만큼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방법이 빈집에 세금이나 벌금을 매기는 ‘빈집세’다. 실제로 영국은 이미 빈집 방치기간에 따라 빈집에 세금을 물리는 ‘빈집세(Empty Homes Premium)’를 도입했다.

캐나다 밴쿠버는 2017년부터 빈집세를 도입했다. 1년 중 6개월(180일) 이상 비어 있는 집에 대해 해당연도 주택 공시가격의 1%를 빈집세로 납부하도록 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밴쿠버 시당국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빈집 수는 922건으로 2018년 3월 기준 1085건에 비해 15% 감소했다. 프랑스도 2년간 거주기간이 30일 이내인 집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 정기황 문화도시연구소 소장은 “빈집세는 집을 교환가치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용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만을 보장하고 공공성을 외면해서는 빈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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