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르포] 중국군 위협도, 대규모 검거도 홍콩 시민들 막지 못했다

입력 2019.09.01. 00:57 수정 2019.09.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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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단체 집회 취소했지만, 수십만 쏟아져 나와 "송환법 반대"
SNS로 연락해 나온 시민들 "중국군 안 두려워..전 세계 지켜볼 것"
곳곳 성조기 나부끼고 '차이나치' 구호 등장..'반중 정서' 극심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건물 바로 앞서 격렬 충돌 벌어져
31일 홍콩 차터가든 공원을 가득 메운 송환법 반대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홍콩 시민들이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을 가득 채운 모습. 2019.8.31. ssahn@yna.co.kr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오후 3시 홍콩 도심 센트럴의 차터가든 공원에 세계 언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전날 홍콩 경찰은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黃之鋒)을 비롯해 홍콩의 민주 인사들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갑차가 홍콩에 진입하는 장면이 공개됐고, 민간인권전선 지미 샴(岑子杰) 대표는 대낮에 괴한의 흉기 공격을 받는 '백색테러'를 당했다.

결국 이날 차터가든 공원에서 대규모 송환법 반대 집회를 계획했던 민간인권전선은 이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중국과 홍콩 정부의 '강압'에 범민주 진영이 무릎을 꿇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날 낮 차터가든 공원에는 집회 시작 시각인 오후 3시가 채 되기 전부터 수많은 홍콩 시민이 몰려들었다. 공원 안은 수천 명의 시민이 가득 메웠고, 인근 도로로 운집한 인파를 합치면 수만 명에 달했다.

센트럴, 완차이, 애드머럴티, 코즈웨이베이 등 홍콩 도심에는 이날 수십만 명의 시민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시위에는 젊은이들은 물론 중장년과 노인들도 많이 참여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몸이 불편한 한 노인은 휠체어를 타고 나와 허벅지 위에 '홍콩 힘내라(香港 加油)'라고 쓰인 팻말을 올려놓고 있었다.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가한 홍콩 노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한 홍콩 노인이 '홍콩 힘내라'라고 쓴 팻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여자친구와 함께 차터가든 공원으로 나온 첸(30) 씨는 "민주 인사들을 검거해도, 중국군이 위협해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며 "홍콩의 자유를 지키고자 여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모바일 메신저로 다른 시위대와 연락해 팀을 꾸려 현장에 나왔다는 한 홍콩중문대 재학생은 "민주 인사들을 검거하면 시위를 막을 수 있다는 홍콩 정부의 생각은 어리석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텔레그램 등으로 연락하며 시위를 조직하는 '지도자 없는'(leaderless) 시위를 하고 있어 몇몇 인사를 검거해도 전혀 타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번 홍콩 시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텔레그램 등 모바일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로 연락해 시위를 기획하고, 조직하고, 대오를 정비하는 '신개념 시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31일 중국 중앙정부 건물로 향하는 홍콩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홍콩 시민들이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로 향하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오후 3시 30분을 넘어서자 센트럴 곳곳에 있던 수만 명의 시위대가 셩완 지역으로 향했다.

바로 셩완에 있는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건물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당초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차터가든 공원에서 집회를 연 후 중련판 건물 앞까지 행진할 계획이었다.

이날이 지난 2014년 8월 31일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영국은 홍콩 주권 반환 협정에서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으나,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2014년 8월 31일 선거위원회를 통한 간접선거를 결정했다.

홍콩 경찰이 이날 집회를 불허하고 전날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편 것도 이날 시위의 이러한 상징성을 두려워한 것이라는 얘기가 들렸다.

교통표지판으로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홍콩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한 젊은 시위 참가자가 교통표지판을 이용해 도로 위에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시위대가 중련판 건물 수백 미터 앞까지 진출하자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부 시위대는 길가에 있는 교통표지판을 쓰러뜨리고 여러 개의 쓰레기통을 가져다가 도로 한복판에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헬멧과 마스크를 쓰고 고글까지 착용해 '완전무장'한 이들은 경찰과 한판 붙으려는 듯한 기세였다.

지난달 28일 시위에서는 중련판 인근까지 진출하려던 시위대가 경찰과 극렬한 충돌을 빚었고, 홍콩 경찰은 현장에서 체포한 44명을 '폭동죄'로 무더기 기소했다.

이날도 이러한 충돌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시위대는 중련판 건물 앞까지 나아가지 않고 다시 센트럴 방면으로 '회군'을 단행했다.

홍콩 시위대가 만든 '차이나치' 깃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시위 참가자들이 중국 오성홍기와 나치 문양을 결합해 만든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비록 시위대는 중련판 앞에서 회군했지만, 이날 시위에서는 극심한 반중국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중련판과 센트럴 사이의 도로에서 일부 시위대는 빨간 바탕에 다섯 개의 노랑 별이 있어 '오성홍기'(五星紅旗)로 불리는 중국 국기를 풍자한 대형 깃발을 들고 나왔다.

빨간 바탕에 17개 노란 별로 나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 모양 '하켄크로이츠'를 만든 깃발이었다. 오른쪽 밑에는 차이나와 나치를 합친 '차이나치'(ChiNazi·赤納粹)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로부터 얼마 떨어진 곳에는 검은 바탕에 붉은 글씨로 '공산당을 당신은 믿는가, 바보가 아닌가'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천이 있었다. 한 시위 참여자는 공산당이라는 글자를 일부러 세게 밟고 가기도 했다.

홍콩에 대한 무력개입을 불사하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위협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反修例'(송환법 반대)라는 부채를 들고 있던 한 70대 노인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며 "전 세계가 홍콩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라고 말했다.

홍콩 시위대가 적어놓은 '빌어먹을 중국' 글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시위 참가자들이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간판을 뜯어낸 후 '빌어먹을 중국'이라고 적어놓았다. 2019.8.31. ssahn@yna.co.kr

센트럴로 회군한 시위대는 애드머럴티 지역에 있는 홍콩 정부청사와 홍콩 의회인 입법회 건물로 항했다.

오후 4시가 넘어 비가 그쳤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시위대는 우산을 펼쳐 들고서 행진했다.

아내와 함께 시위에 나온 한 30대 홍콩인에게 왜 우산을 펼쳐 들었느냐고 묻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상징적 의미, 또 하나는 신변 보호 차원이었다.

상징적 의미는 5년 전 전인대의 행정장관 간접선거 결정에 반발해 일어난 79일 동안의 대규모 도심 시위 '우산 혁명'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의 최루탄 등을 우산으로 막았다고 해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하나는 추후 경찰의 검거를 막기 위한 보호 차원이었다. 홍콩 도심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힐 경우 경찰에 의해 불법시위 참가의 증거로 쓰일 수 있어 얼굴을 가리고자 쓴 것이라고 했다.

이날 홍콩 도심 상공에서는 경찰 헬기 2대가 끊임없이 돌아다녔는데, 이들이 초고성능 카메라를 사용해 시위대의 얼굴을 찍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우산'을 쓴 채 행진하는 홍콩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시위 참가자들이 '우산 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쓴 채 행진하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 건물에 가까워지자 그 바로 옆에 있는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홍콩 주권 반환의 상징인 인민해방군 건물 앞에서 홍콩 시민들이 강력한 '반중국, 친미국'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민해방군 건물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20여 개의 대형 성조기를 흔들고 있었다. 건물 옆을 지나는 시위대가 영국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성조기 옆에서 '홍콩 인권·민주주의법 통과시켜 주세요. 보통선거제 쟁취'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던 한 대학생은 "미국 등 국제 사회가 압력을 가하면 중국이 홍콩에 대해 함부로 무력개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의원들이 추진하는 이 법안은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과 금융 거래를 금지하는 법이다.

인근 담장에서는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구호를 적은 간판이 뜯겨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위대는 여기에 '빌어먹을 중국(FUCK CHINA)'이라고 적어 넣었고, 바로 옆 담장에는 '차이나치(ChiNazi)'라고 써넣었다.

성조기 흔드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시위 참가자들이 대형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그 뒤로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건물이 보인다. 2019.8.31. ssahn@yna.co.kr

수만 명의 시위대는 홍콩 정부청사와 인민해방군 건물을 둘러싸고 '자유를 위해 싸우자(Fight for freedom), '홍콩 힘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의 열기가 고조되던 오후 5시 30분 무렵 정부청사 방향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최루탄이 날아들었다. 바로 옆에 떨어진 최루탄에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옆에 있던 시위 참가자는 빨리 뒤쪽으로 빠지라고 소리쳤다.

헬멧과 고글, 마스크 등으로 무장한 이른바 '전투조'는 시위대 앞에서 대오를 형성했다.

이들이 최루탄을 막는 도구로 쓸 긴 우산과, 눈에 들어간 최루탄 가스를 씻어낼 생수를 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수백 개의 우산과 물병이 시위대의 손에서 손으로 넘겨져 전투조에 전달됐다.

이후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시위대는 정부청사 건물을 향해 벽돌과 화염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맞섰다. 특히 이 물대포에는 시위대를 식별할 수 있는 파란 물감이 섞여 있었다.

홍콩 시위대 옆으로 떨어지는 최루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홍콩 정부청사 옆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옆으로 최루탄이 떨어지고 있다. 2019.8.31. ssahn@yna.co.kr

시위에 참여한 홍콩의 젊은이들은 중국과 홍콩 정부의 강경 대응에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한 홍콩시립대 학생은 "9월 신학기가 시작하면 더 많은 학생이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며 "한국의 촛불시위가 긴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도 끝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대학생들과 중고등 학생들은 다음 달 동맹휴학을 예고한 상태이다. 홍콩 노동계도 2일과 3일 총파업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이들이 폭력 시위를 지속할 경우 무력개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어 이들의 지난한 투쟁이 뜻하는 바를 이룰 지 주목된다.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건물 앞의 시위대와 영국 깃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참가자들이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가 영국 깃발을 든 모습이 눈에 띈다. 2019.8.31. ssahn@yna.co.kr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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