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보듬는 일본인들

입력 2019. 9. 1. 06:01 수정 2019. 9. 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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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K2 인터내셔널 코리아'의 고보리·오쿠사씨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김민호 인턴기자 = "사회 변화 속도가 빠르고 일자리 부족 등 청년 문제가 만연한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일본어 표현 '히키코모리')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높은 구릉 위에 있어 인적이 뜸한 정릉(조선 신덕왕후의 무덤) 입구 앞에는 특별한 집이 한 채 있다. 붉은 벽돌로 된 3층짜리 아담한 건물은 사회 활동을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고독한 생활을 한다는 의미로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청년 18명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셰어하우스)이다.

이 공동체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히키코모리 문제로 고심해 온 일본에서 왔다. 'K2 인터내셔널 코리아'의 대표 고보리 모토무(小堀求·37)씨와 매니저 오쿠사 미노루(大草稔·44)씨는 한국인 13명, 일본인 4명, 호주인 1명으로 이뤄진 이 '가정'을 7년째 이끌고 있다.

K2 한국지부 대표 고보리 모토무(왼쪽)씨와 매니저 오쿠사 미노루씨 [촬영 김민호]

1988년 일본에서 설립된 'K2 인터내셔널'은 은둔형 외톨이를 돕기 위한 사회적 기업이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히키코모리의 자활과 사회 적응을 목표로 설립된 이 단체는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이들에게 공동체를 제공, '함께 살기'를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갈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2004년 호주, 2012년 한국에 지사를 냈다.

"2012년에 마포구 합정동에 처음 첫 둥지를 틀었지만 다소 번잡한 합정동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기에 적당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성북구의 청소년 지원사업과 인연이 닿으면서 정릉동에 다시 자리 잡게 되었죠"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집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은 딱 한 가지다. 아침 식사 같이하기. 무슨 일이 있어도 구성원이 모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청소나 빨래 등 집안일 분담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삼가는 것 등도 지켜야 할 일이지만 틀에 박힌 명령이나 규칙으로 지정해놓기보다는 각자의 자율과 양심에 맡겨 조화로운 공동생활을 유지해나간다.

집안일은 물론 신문을 함께 읽으며 사회 문제나 현안에 관해 토론하거나 요가 같은 운동도 함께 한다. 호주인, 일본인 구성원에게 영어와 일본어도 배우고 함께 사는 고양이와 금붕어를 돌보는 일도 나눠서 한다.

누군가의 생일에 파티를 열어 함께 축하해주는 것도 이 공동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다. 일요일마다 부 활동 회의를 열어 낚시, 여행 등 외부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다 같이 무언가를 계획해서 함께 즐긴다는 경험이 은둔형 외톨이들에게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마음에서 내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잊은 경우가 많아서요" 매니저 오쿠사씨는 설명했다.

지금은 열여덟 명이 생활하고 있지만 이곳을 거쳐 간 은둔형 외톨이는 백여명에 이른다. 10대 청소년의 비율은 의외로 높지 않다. 20대 중후반에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 부모의 설득이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곳에 오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10대 때는 사회 적응에 문제를 겪더라도 청소년 관련 기관과 지원 프로그램이 많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만 각종 지원이 끊기는 20대 중반부터 이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를 보듬을 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 보니 관계 기관이 이곳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고보리 대표는 "정해진 생활 기간은 없고 대략 6개월 정도 함께 살다가 독립하거나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여기서 잘 버텨야 사회에 나갈 수 있다'라고는 하지 않아요. '이곳이 안전하다,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느껴 스스로 함께 사는 것이죠"라고 전했다.

이 단체가 은둔형 외톨이의 자활을 도우려고 하는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정릉시장에 낸 일본식 덮밥 가게 운영이다. 이곳에서 요리를 맡은 A(28)씨는 공동생활을 한 지 벌써 7년이 넘었다고 했다.

K2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덮밥집 '돈카페'를 연 이유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 유지와 지역사회와 소통이 은둔형 외톨이에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K2 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돈카페' 내부 [촬영 김민호]

고보리 대표는 "처음엔 시장 상인이나 주민분들이 낯선 일본인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있어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상인회에 등록하고 식자재는 꼭 정릉시장에서 사며 지역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니까 이젠 시장을 지나다 우리가 아는 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왜 인사를 안 하느냐'고 상인들께 혼날 정도"라며 웃었다.

정릉골과 맺은 깊은 유대는 최근의 반일 불매운동 분위기까지 무색하게 했다. 고보리 대표는 "불매 운동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느낀다. 정릉시장을 비롯한 지역 사회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국적과 관계없이 열심히 살아보려는 청년들을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도 20여년 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일본 요코하마의 K2 인터내셔널 공동 가정에서 생활했다.

"외로움과 사람 관계에서의 갈등 등 비슷한 고민을 해봐서 이 집에 오는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요. 자립 생활이 가능해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저는 사실 여전히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무서운 마음을 갖고 삽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과 부대끼며 그런 두려움을 덜고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아요"

이들은 "호주와 같은 서양 사회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같은 동양 문화권으로 부모가 유교적 권위를 갖고 아이를 대하는 등 공통점이 매우 많다"고 입을 모은다. 고보리 대표는 "한국과 일본이 민간 교류를 더 활발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려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도 결국 사람과 사람 관계 아니겠나"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경향을 지목하며 오쿠사 매니저는 "한국은 무언가를 해내거나 능력이 있어야지 가족 간에도 존중받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며 "은둔형 외톨이는 게을러서 밖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가 주는 무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 규모는 국가 차원의 통계 등 제대로 된 자료 파악조차 안 돼 있는 형편이다. 다만 13년 전인 2005년 민간단체인 한국청소년상담원과 동남정신과 여인중 원장이 우리나라의 은둔형 외톨이가 약 30만∼5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고보리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사회 제도나 인식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로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反)사회적인 것이 아니고 비(非)사회적일 뿐인 은둔형 외톨이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보다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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