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일정 합의하고 시작도 못한 조국 청문회.. '피로감' 쌓여간다

정유경 2019. 9. 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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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정유경의 오도가도
민주당 "한국당 '생트집', 보이콧 의도"
한국당 "청문회 보고싶은 것은 우리"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오랜 진통 끝에 지난 26일 여야 합의로 청문 절차 시한(9월2일)을 넘긴 9월2~3일 이틀 간 잡혔던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가 시작도 전에 불발될 위기입니다. 여당과 야당은 청문회 무산 책임을 놓고 서로 ‘네탓이오’ 공방에 바쁩니다.

“청문회를 보이콧하고 싶어하는 진심을 너무 일찍 들켜버렸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청문회를 받을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보이콧’은 상대의 속내라고 주장하는 두 원내대표의 발언은 화자를 바꿔놓아도 착각할 정도로 똑 닮았습니다. 청문회를 열고 싶다며 앞다퉈 입을 모으는데, 정작 청문회는 열리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왜 생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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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청문회 열자”면서 청문회는 불발? 일정 합의 무산 수순

여야간 쟁점은 ‘가족 증인’ 채택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의 가족이 ‘핵심 증인’이니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며 이를 포함한 20여명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대적인 증인 신청부터 이례적인 일인데다, 조 후보자 관련 의혹에 대해선 후보자가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데도 가족들을 ‘인질’로 끌어들이려 한다고 주장합니다.

30일 청문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는 개회 1분만에 산회되는 ‘해프닝’을 빚었습니다. 민주당은 여야가 합의한 청문회 일정만이라도 안건으로 의결하고 증인 채택을 논의하자며 개회를 요구했습니다. 법사위원장 대행으로 나선 자유한국당 쪽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곧바로 산회를 선포해 버렸습니다. 한번 산회를 선포한 당일에는 회의를 다시 열 수 없습니다. 김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누누이 말했지만, 핵심 증인(가족)이 없는 맹탕 청문회는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날도 똑같이 파행 수순을 밟았습니다. 한국당 소속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한국당의 증인 신청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안건조정위 신청’으로 저지에 나섰습니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이 8명,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법사위원이 7명과 2명으로 8대9를 이루는 상황이어서 당시 미국 출장중이었던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없이는 여당이 표결에서 불리했기 때문입니다. 안건조정위원회로 가면 민주당 3명과 한국당 2명, 바른미래당 1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어 3대3 동수가 가능해집니다. 이에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하며 이날 논의를 종료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30일, 한국당은 한 술 더 떠 그렇다면 안건조정위 이후로 일정을 다시 잡자면서 사실상 2~3일 청문회 개최 합의를 뒤집는 수순에 들어간 것입니다. 마침 전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안이 의결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면서, 한국당도 단단히 민주당에 중뿔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나경원 부산 집회 규탄 발언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30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자유한국당이 마련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에 참석한 나경원 원내대표가 조국 후보 사퇴 등을 발언하고 있다. 2019.8.30 ccho@yna.co.kr/2019-08-30 19:32:16/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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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보이콧 아닌 순연’ 민주당 ‘보이콧 의심’

민주당은 한국당이 조 후보자 의혹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청문회 보이콧’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려 왔다며 의도적 파행을 의심합니다. 안건조정위는 여당이 철회하거나, 빠르게 합의하는 형태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데도 굳이 법사위 ‘산회’를 선언하며 논의의 진전을 막았다는 겁니다. 반면 한국당은 민주당이 가족증인 채택을 회피하기 위해 안건조정위 신청을 했다며, 민주당의 속내야말로 청문회를 거부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지난 28일 한국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보이콧 여부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검찰이 조 후보자 의혹과 관련해 웅동학원·서울대 등 30여곳을 압수수색한 뒤의 일입니다. 당시 원내대표단과 법사위원들 사이에선 “조 후보자 청문회에 응해 봤자 임명강행의 들러리가 될 뿐”이라는 의견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 어떤 ‘역풍’이 불 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도 우려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원총회 땐 이미 합의된 일정을 보이콧하면 오히려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는 구실을 줄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쏟아지며, 보이콧 결정은 유보됐습니다.

대신 한국당은 보이콧이 아니라 ‘순연’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요. 추석 전인 9월12일까지 청문회가 가능하고 그렇다면 가족증인 채택을 협의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이콧을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인사청문회법상 청문보고서를 20일 안에 채택하지 못하는 경우 1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서 다시 요구하게 되어있다. (국회 법정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셈법이라면 9월12일까지 얼마든지 청문회는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청문회 일정은 증인 출석 요구서가 송달되는 시간을 고려해 순연하여 정하면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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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 아니라면 증인 채택 협의 가능”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재송부요청의 기한을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권한이며, 국회는 법정시한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강기정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는 것이고 직무유기”라며 약속한 일정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한편, “조국 후보자에게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정치 공세로 낙마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야당을 정면으로 겨눴습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일정 늦추기도 모자라 가족증인 채택을 빌미로 ‘생트집’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법사위 무산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당이) 처음부터 보이콧을 작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야당의 무리한 주장을 대승적으로 수용해 2~3일로 결정했는데, 또 새로운 조건이 붙었다. 처음에 93명의 증인을 요청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가족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역시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 정말 너무나도 하고 싶다”며 “핵심 증인이 모두 출석한 채 진행되는 진짜 청문회다운 청문회를 국민들께 보여드리자. 그런 청문회를 받을 용기가 없다면 이참에 청문회를 무산시켜 임명을 강행하겠다고 차라리 밝히라”고 맞받았습니다.

―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현안 간담회

“우리 당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얼마든지 열어놓고 증인 채택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20명 가까운 증인채택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전례도 없고 역사의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가족 증인만 제외된다면 증인채택에 대해서 정말 열어놓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했습니다.”

“이쯤되면 청문 검증에 대한 보이콧이거나, 한국당이 그동안 조국 후보에 대해 갖은 의혹 부풀리기와 가짜뉴스라고 비난받은 언행들을 청문회장에서 조국 후보자와 정정당당하게 진실을 겨루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페이스북 메시지

“자유한국당 역시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 정말 너무나도 하고 싶습니다. 핵심 증인이 모두 출석한 채 진행되는 진짜 청문회다운 청문회를 국민들께 보여드립시다.

그런 청문회를 받을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십시오. 이참에 청문회 무산시켜서 임명 강행하겠다고 차라리 밝히십시오.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불편하십니까? 청문회를 피하고 싶어서 몽니를 부리는 것이 들켜 부끄럽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용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주말까지도 핵심증인 채택을 끝끝내 방해한다면, 청와대와 여당의 청문회 보이콧은 기정사실화됩니다. 국민적 분노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30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요구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법사위원장 직무대행이 “간사간 합의된 의사일정 등 안건이 없으므로 회의를 마치겠다”며 개의 직후 산회를 선포하자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 등이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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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불발시 정치적 부담, 여야 어디에 쏠릴까 ‘복잡’

이렇듯 여야가 서로 청문회 무산 의도가 상대에게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은 뭘까요? 청문회 개최가 정치적 이득으로 돌아올 지, 부담으로 작용할 지 여야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청문회를 둘러싼 ‘지지부진’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청문회 보이콧을 한다는 야당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보이콧 얘기가 나온 적도 없다. 조 후보자에 대한 찬반 여부를 넘어, 적어도 조 후보자에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도 국민 여론을 설득하지 못했을 경우, 그럼에도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당 내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민주당은 9월3일 전까지 일련의 청문 철차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최대한 논란을 빨리 매듭짓겠다는 목표입니다.

사실상 ‘2일 청문회 불발’로 방향을 잡은 한국당 내에서도 청문회를 열어 ‘긁어 부스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과, 그래도 청문회는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청문회에서 가족증인도 채택하지 못하고 자칫 지난해 말 운영위원회 때처럼 시원치 못한 공세에 그친다면, 한국당 원내지도부의 ‘책임론’까지 이어질 것은 부담입니다. 조 후보자의 딸 ‘스펙 논란’ 불똥이 한국당에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자녀들은 장애우 친구 맺기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 재학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의 자녀도 과거 대학 입시전형 특혜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바 있습니다. 반면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미 국민적 여론이 (조 후보자 반대로) 기운만큼, 청문회를 무리하지 않고 담담하게 치르면 된다. 보이콧을 하면 오히려 상대 지지층에 한국당 탓을 할 빌미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한국당이 “보이콧이 아닌 청문회 순연”을 주장하는 데는 보이콧 선언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또 장기전이 될수록 추석 밥상에 ‘조국 이슈’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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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집결 ‘여론전’ 양상으로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청문회를 열거나 열지 않는 것 중 어떤 결과가 정치적으로 유리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고민일 것”이라며 “압수수색 이후 검찰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여야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상황 판단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짚었습니다. 또 “일단 한국당 지도부는 2일 청문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청문회를 기대했던 국민들의 실망이 한국당을 향하진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여야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강공’을 통한 지지층 집결 시도도 예상됩니다. 민주당은 예정대로 2~3일 청문회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청문 일정 합의로 인해 보류했던 ‘국민 청문회’ 방안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한국당은 지난주 광화문 장외집회에 이어, 30일에는 부산 송상현 광장, 31일엔 서울 사직공원에서 조 후보자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장외집회를 열었습니다. 장외 투쟁을 통해 조 후보자 관련 의혹과,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목표입니다. 청와대가 법정시한 만료를 이유로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국회 보이콧을 포함한 장외투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청문회는커녕, 9월 정기국회마저 파행 위기에 놓인 셈입니다. 정작 국민들은 조 후보자 본인이 해명하는 청문회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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