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멈추지 않는 사과 "폴란드 공격, 고개 숙여 용서 구한다"
2차대전 80돌 맞아 폴란드 방문
"독일의 압제, 인류에 범죄" 사죄
폴란드 대통령 "독일 도덕적 배상"
1일(현지시간) 비엘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가 열렸다. 당시처럼 이른 새벽에 열렸지만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다.
독일 공습 당시처럼 행사장에 불이 꺼지고 사이렌이 울렸다. 건물 벽에는 독일 전투기의 공습 모습이 재현됐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날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나는 오늘 생존자와 희생자의 자손들, 그리고 비엘룬 시민들 앞에 서 있다”며 “비엘룬 공격의 희생자와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600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또 “폴란드에서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독일인이다. 국가사회주의자들의 유럽에 대한 공포의 통치가 독일 역사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이제 그것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극우 정치인들이 과거 히틀러의 잘못을 ‘위대한 독일 역사의 티끌만 한 부분’으로 축소하려는 태도를 질타한 것으로 AFP 통신은 해석했다.
독일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마음을 열고 화해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비엘룬에 대한 독일의 공습을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이자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폭격을 경험한) 목격자들이 모두 사라져도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잊을 수 없다”며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다 대통령과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비엘룬의 병원에 떨어진 폭격으로 숨진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헌화했다. 두 대통령은 비엘룬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고,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를 만나기도 했다. 두다 대통령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이날 방문을 “도덕적 배상”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사를 직시하고 사죄하는 그의 태도가 양국 간의 우정을 쌓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독일 군함이 처음 공격을 가했던 폴란드 북부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폴란드가 전쟁으로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우리는 그런 피해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실을 요구하고 배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2015년 ‘법과 정의당’(PiS)이 집권한 이후 독일을 상대로 배상 요구를 해 왔다. 독일 정부는 1990년 1억5000만 마르크를 배상 명목 등으로 지급해 더 이상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80주년 행사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대형 허리케인 ‘도리안’이 미 플로리다 동부 해안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되자 펜스 부통령을 대신 보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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