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90년생이 운다' 문재인의 정의 앞에서

윤석만 입력 2019. 9. 2. 00:17 수정 2019. 9. 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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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이노베이션랩 기자
평등과 공정의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로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샀다. 2016년 정유라 사태에서 시작된 청년세대의 촛불이 가장 원했던 것도, 현 정부가 가장 강조했던 말도 ‘정의’였기 때문이다.

지난 달 7일에도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선물하며 청년들과 소통하고자 애썼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틀 후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조국 서울대 교수는 청년들의 분노를 일깨웠다.

『90년생이 온다』에서 저자는 이 세대의 대표적 특징으로 ‘정직’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노출돼 학벌과 인맥, 부모의 ‘빽’과 관계없는 ‘정직한 경쟁’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청년들은 낙타가 된 상태에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 문을 뚫어야 한다”며 이들의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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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핵심인 입시 문제도 거론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해선 “깜깜이 전형, 로또 전형을 넘어 현대판 음서제로 불린다. 부모의 개입까지 늘어나 교수인 부모가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은 기득권층에만 유리한 학종이 폐지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청년들로부터 지탄받는 조 후보자에 대한 맞춤형 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문 대통령이 책을 제대로 읽고 청와대 직원들에게 추천한 것이라면 ‘조로남불’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를 깊이 공감하고도 남을 일이다.

최근 중앙일보 조사 결과 조 후보자를 가장 반대하는 연령층은 20대(68.6%)였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65%)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조 후보자의 모교인 서울대 총학생회는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조 후보자의 사퇴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런 분노감에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지만 여권에선 이마저도 정치적으로 폄훼한다.

법무장관의 영문명(Minister of Justice)을 직역하면 ‘정의의 사제’란 뜻도 된다. 그런 자리에 조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문 대통령의 ‘정의’와 20대의 ‘정의’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통령이 말한 평등과 공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어쩌면 책의 제목을 ‘90년생이 운다’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윤석만 이노베이션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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