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386세대 운동권, 그만하면 충분히 권력 누렸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19. 9. 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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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세력 내 386 운동권.. 2000년 총선 때 대거 정치 입성
소득 3000달러 권위주의 시절 읽고 토론한 기억으로
3만달러 시대 한국을 이끌려니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국 법무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른바 '386세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잘 알려진 대로, 386세대는 그 말이 만들어진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1960년대생, 80년대 학번, 그리고 당시의 30대 유권자들이다. 이 세대를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대학 시절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진보적 이념의 세례, 그리고 그것이 결합된 운동 정치의 경험 때문이었다. 386세대는 2004년 열린우리당의 등장까지 이끌면서 한국적 맥락에서 진보 정치 출현의 세대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도 여느 세대처럼 생활인으로 변모해 갔고 이제는 50대가 되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386세대나 80년대의 '운동'이 여전히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집권 세력 내에 여전히 건재한 386세대 운동권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의 386세대 정치인들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우선은 그들이 공유하는 '운동의 도덕성'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 운동이나 정치적 운동은 지향해야 할 이상적, 규범적 미래를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집단 활동이다. 운동의 시각에서 볼 때 현실은 모순과 불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변혁해 내려는 운동가들은 시대의 양심을 대표한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아마 80년대 그들도 그런 도덕적 우월감으로 서슬 퍼런 권위주의의 압제를 버텨냈을 것이다. 젊었던 그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패기와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그들도 '기득권층'이 되었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러저러한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옳고 남들은 그르다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남의 눈에서는 티끌까지도 찾아내어 비판하면서 내 눈 속의 들보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러한 독선과 이중 잣대의 태도 때문이다.

또 다른 불편함은 그들의 폐쇄성이다. 3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은 세대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닫혀 있다. '끼리끼리'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대거 진입한 건 2000년 총선 때이다.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 속에 386세대 운동권을 대거 정치권에 불러들였다. 송영길 의원, 이인영 원내대표, 우상호 전 원내대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오영식 전 의원이 그때 정치권에 들어왔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정치권에 진입한 것이다. 자신들은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 이들은 운동권의 옛 동지들을 이따금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의 평균 연령은 54세로 다른 정당과 별 차이가 없으며, 가장 젊은 의원은 2016년 총선 때 39세였던 김해영 의원이었다. 선거 때마다 20~30대 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받아왔지만 정작 정치적 충원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이러한 폐쇄성은 국정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 주도하는 청와대는 그러한 폐쇄성으로 인해 매우 동질적인 집단이 되어 버렸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이 애당초부터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들끼리 논의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 있는 대다수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당혹해하는 결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지는 건 이처럼 동질적 집단 내부의 폐쇄성 때문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30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그 시절에 읽고 토론한 운동의 기억으로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된 오늘날의 한국을 진단하고 이끌고 가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는 방황하고 있고 외교는 고립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희망을 찾지 못한다.

2000년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온 지 이미 20년이 되었다. 그만한 시간이면 충분히 권력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 줄 때가 되었다. 마침 내년이 총선이다. 떠나야 할 적절한 시점이 다가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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