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의 아이러니]가까이에서 본 조국

조광희 기자 2019. 9. 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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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보름간 쏟아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나 그를 비난하는 글도 안타깝고, 일방적으로 그를 옹호하는 말도 석연치 않아 불편하다. 어느 순간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다. 이십대에 맺은 인연 때문이다.

그와 알고 지낸 것은 내가 석사 과정에 입학해 형법을 전공하면서부터다. 그는 학문에 뜻을 두고 박사 과정에 있었고, 이미 학교에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에 그는 진보적인 학술단체에서 활동할 것을 권했다. 대학 시절 변변한 활동을 하지 못해 목이 말랐던 나는 권유에 따랐다. 나는 석사 과정을 마치려 사법연수원 입소를 연기한 채, 학술단체 활동도 하고 자유로운 시간도 보내면서 지냈다. 조교인 그의 방에 가끔 들렀는데, 그가 스스로 다짐하려 적어놓은 독일어 표어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노동자를 교육하는 단체가 있는데, 노동법 수업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아직 서슬이 퍼런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관련자가 구속된 비합법단체였다. 잠시 고민했으나, 마다할 명분이 없었다. 아니, 세상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그가 고마웠다. 나는 미미한 활동을 했지만, 그로 인해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때의 후보자는 연구자로서는 명석했고, 운동에는 헌신적이었으며, 생활태도는 부유한 환경과 달리 청교도적이었다. 자유주의적 사고와 감정에 기울어 방만했던 내게는 보기 드문 인물로 비쳤고,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무렵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의 변호인이 피고인의 요청이라며 변론을 도와 달라 하여, 변론의 일부를 작성해 전달했다. 재판을 방청하러 갔는데, 원래 렌즈를 사용하던 그는 임시로 구한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초췌한 모습에 마음이 쓰라렸다. 그가 지금 기준으로 과격한 활동을 했다고 한들, 폭압적인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활동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그 후 이십 몇 년이 흘렀다. 교류가 없던 때도 있었고 가끔 전화하고 만나던 시절도 있었는데,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달라 소원한 시기가 지난 몇 년간 이어졌다. 그사이 그의 존재감은 점점 커져갔고, 이제 후보자가 되었다.

나는 의혹 중 몇 가지는 모함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 없이 울산대 교수가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당시에 종종 있는 일이었고, 성실하고 명민한 그에게 그런 정도의 자격은 있다는 것을 주위에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녀가 의외의 장학금을 받았거나 고교 때 의학논문의 저자가 된 문제, 그리고 민정수석 시절에 투자한 펀드에 대해서는 나도 당황했다. 위법 여부는 어차피 절차에 따라 가려질 것인데,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나로서는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언론이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후보자가 관여한 것이라면, 그가 천명한 원칙이나 타인에게 적용한 잣대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물론 과연 위법인지, 또는 장관 부적격 사유인지는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랜 기억 속 후보자를 떠올리며, 괴롭고 서운한 마음으로 계속 생각해 본다. 어느 날은 잠도 오지 않는다. 내가 알던 성품이나 언행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정황상 소극적으로 용인했을 가능성은 엿보인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를 잘못 알고 있던 걸까. 세월 속에서 그도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한 생활인이 된 걸까. 그가 가진 많은 자질과 자원이 성찰의 힘을 빼앗은 걸까. 어느 이유든 서글플 따름이다. 물론 누군가 나를 샅샅이 뒤질 것도 없이 슬쩍 흔들어 보기만 해도, 나의 여러 잘못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우 조광희이고, 그는 내가 흠모했던 조국이 아닌가.

그가 적극적으로 선을 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믿음이 잘못인 게 밝혀진다면, 기꺼이 바보가 되어 비웃음을 받겠다. 하지만 작은 틈을 부주의하게 허용해도 유죄가 될 수 있고, 후일에 무죄가 되더라도 몇 년을 힘겹게 싸워야 한다. 검찰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젊은 조국은 구속되고 유죄가 되어도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 불의한 법과 사회적 구조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채 선한 의지와 용기로 맞섰기 때문이다. 지금 제기된 문제들은 그 선한 의지와 용기를 무색하게 한다. 그 점이 괴롭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 사안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의혹의 눈초리가 누그러지고, 대통령이 흔쾌히 임명하며,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그로서는 최선이다. 나는 이 정부의 역량과 비전에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후보자를 편애하는 마음 때문에 그 최선을 희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임명 이후에도 그와 주변인 모두가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그 와중의 개혁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자신만이 아니라 몸담은 정부마저 위태로울 가능성은 과연 없을 것인가.

더위는 누그러지고 있지만, 이제 그에게는 불같이 뜨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의 잘못이 밝혀져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비난할 사람은 많다. 그가 이십대의 내게 준 삶을 생각하면 나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애통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잘잘못을 떠나서 이 논란은 나와 후보자가 포함된 세대가 이른바 헬조선의 기득권자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세대가 앞으로 더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개개인이 아닌 세대라는 덩어리로서 윤리적 리더십을 주장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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