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간 '실검 전쟁'.. "여론 왜곡" vs "또 하나의 언론"

곽주현 2019. 9. 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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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힘내세요’ ‘사퇴하세요’ 등 지난 일주일 포털 상위권 점령

‘1시간 단위로 검색량 측정’ 이용해 소수집단의 ‘실검 사유화’ 반복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들의 실시간 검색어 띄우기 운동으로 '법대로조국임명'이란 단어가 각각 1위와 13위를 차지한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다음, 네이버 캡처

‘조국힘내세요’, ‘조국사퇴하세요’, ‘법대로조국임명’, ‘가짜뉴스아웃’….

지난 일주일 사이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와 다음 ‘실시간 이슈 검색어’ 10위 안에 든 ‘의문의 검색어’들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조 후보자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의도적으로 검색어 순위를 높이면서 발생한 일이다. 포털 이용자들이 ‘최신 트렌드’나 ‘실시간 뉴스’를 파악하기 위해 참고하는 실검이 정치 세력의 전쟁터로 전락한 꼴이다.

◇검색량 비율로 ‘실검’ 순위… 실검 사유화도 빈번

기본적으로 실검 순위는 ‘절대적 검색량’이 아닌 ‘상대적 검색량’이 반영된다. 1시간 안에 검색된 횟수가 이전 1시간에 비해 가장 많이 증가한 단어들이 순차적으로 나열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평균 10만회 검색되던 ‘날씨’ 키워드가 2배인 20만회로 늘어난 경우보다는 거의 검색되지 않던 ‘조국힘내세요’ 키워드가 1,000회로 늘어난 경우 실검에 오를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검색되는 단어나 동일인이 여러 번 검색하는 경우를 제외하는 등 다양한 기준이 적용되며, 이용자 신고 및 자체 판단에 따라 검색어가 삭제될 수도 있다.

그 동안 특정 집단에 의한 ‘실검 사유화’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연예인 팬덤이 ‘선물’의 의미로 검색어를 실검에 올려주거나(‘△△7주년축하해’ ‘△△생일축하해’ 등) 일부 업체들이 이벤트를 홍보하는 데 실검을 활용하는 일(‘△△행운퀴즈 정답’ 등)이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불거진 ‘드루킹 사태’는 특정 정치 세력이 포털을 활용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포털 측은 불법 매크로(특정 명령어를 반복 검색하는 프로그램)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실검 목록 개입을 최소화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처럼 여론 조작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검색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3년 ‘박근혜부정선거인정’ 등의 검색어로 조작 논란이 일자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실검을 이용한 여론 환기 등의 운동(movement)은 상업적 어뷰징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네이버 측은 “문제가 되는 실검은 모두 공개된 기준에 따라 삭제 조치가 이뤄지고 있으며, 2012년부터 지금까지 검색어 삭제 적절성을 KISO에게 자발적으로 검증 받고 있다”며 “인위적인 개입은 최소화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실검 서비스 “존재 의미 없다” vs “관리만 하면 효용有”

실검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극단적으로는 더 이상 효용이 없어진 실검 서비스 자체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드루킹 때도 그렇고, 이번 사태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실검은 특정 세력이 본인들의 의도를 ‘과잉대표’시킬 위험이 있다”며 “이미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장치인 실검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포털이 실검을 인위적으로 삭제하는 행동이 오히려 정치적 중립에서 벗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빗자루도 잘 쓰면 청소 도구지이만 반대로 잡으면 몽둥이가 되듯이, 어떤 기술이라도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기술과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평평한 공간을 제공해야 할 플랫폼 사업자가 갑자기 경계선을 긋는 행동을 하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검을 유지하되 포털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종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특정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기능을 없애기보다는, 이를 극복해가야 할 과정으로 보고 사회적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이 맞다”며 “포털은 실검을 단순한 검색어 순위가 아닌 일종의 언론으로 보고, 언론에 요구되는 역할에 맞는 기준을 세워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용찬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이 아닌 ‘사람들에 의한 아젠다 세팅’이라는, 실검을 처음 만든 목적이 오염되지 않도록 기술적ㆍ법적으로 포털이 지금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mailto: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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