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네 모든 게 무너질 것" 국정원, 프락치 '회유·강요' 녹취 들어보니

이동우 기자 입력 2019. 9. 3. 05:30 수정 2019. 9. 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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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민간사찰]지난달 19일 김대표-국정원 마지막 만남 녹음, 사찰 이어가도록 압박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에서 금지했던 정보기관의 국내 민간인 사찰이 여전히 국가정보원내 일부 조직에서 비밀리에 자행되고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정보원 경기지부 사찰조직에서 '김 대표'로 불리며 활동해온 프락치 A씨가 머니투데이에 그 실태를 증언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6일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프락치 '김 대표' A씨를 '자발적 협조자'로 반박했지만, A씨의 녹취에는 국정원 해명과 달리 강요·회유 정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머니투데이가 확보한 녹취는 A씨가 국정원 직원을 마지막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지난달 19일 녹음한 것이다. 녹음에는 국정원에서 인사들을 사찰하는 데 쓰라고 지급했던 장비가 사용됐다.

이날은 A씨가 프락치 업무를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하고 며칠간 연락을 끊었다가 다시 국정원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A씨는 처음 국정원이 약속했던 퇴직금을 주지 않으면 언론 등에 사찰 내용을 폭로할 수 있다는 통보도 해둔 상태였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B수사관과 C과장은 모두 국정원 경기지부 공안2팀 소속이다. 2015년 4월부터 A씨에게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민간인을 사찰해왔다.

◇자발적 협조? 그만두겠다니 "너랑 나랑 2년 지냈잖아" 설득=이날 A씨를 만난 B수사관은 경기 수원의 광교 이마트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B수사관은 대화 시작 전 A씨의 몸을 수색한다. "어쩔 수 없는 거 알지?"라는 말로 A씨가 자신과의 대화를 녹음하지 못하도록 한다.

B수사관은 그간 자신의 고압적 태도를 사과하며 A씨가 프락치 업무를 이어가도록 설득한다. B수사관은 "나의 말투나 행동에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면서도 "김 대표가 잘 될 수 있게 기도하는 마음이고, 솔직히 형의 마음이다. 너랑 나랑 2년 지냈잖아"라고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화 중간에 등장한 C과장도 김 대표 A씨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한다. C과장은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김 대표하고 우리하고 인연은 끊어질 수 없다"며 "김 대표가 잘되길 바라는 건 아마 주변의 다른 친구들보다도 우리가 더 많다"고 설득했다.

회유 작업으로 김 대표 A씨가 어느 정도 마음을 돌리는 기색을 보이자 이들은 다시 구체적 사찰 업무를 지시한다. 이 과정에서 C과장은 "최(시민운동가)나 임(시민운동가)이나 이런 사람들의 문제되는 행동"이라며 구체적 사찰 대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C과장은 "지금처럼 전화 오기 기다리고 뭐 참석했다 오고 이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이야기"라며 "본인이 진짜 (사찰 대상 단체) 사무처장이면 앉아서 컴퓨터에서 포럼 관련해서 알 수 있는 거"라고 A씨를 압박한다.

이어 "잠깐 중요한 얘기 같은 건 핸드폰 녹음(하라)"며 "그 정도만 도와주면 우리도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A씨를 회유한다.

◇국정원 "서약서 쓰자" 재발 방지 강요에…"모든 게 무너질 것" 협박=녹취에서 이들은 설득과 함께 협박도 병행하며 A씨가 프락치 업무를 이어가도록 압박한다. A씨의 경제 상황을 지적하는 모습이나 반말 등 강압적인 말투에서는 일종의 '갑을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자발적 협조자를 대하는 태도로 보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C과장은 우선 A씨의 사찰 폭로 자료가 담긴 USB를 지적한다. A씨가 프락치를 그만두고 이를 언론에 알리겠다고 한 데 대해 C과장은 "우리를 상대로 협박하는 거냐"며 A씨를 꾸짖는다.

이들은 '그만두겠다'는 A씨의 태도가 생각보다 완강하지 않자 바로 '재발 방지' 이야기를 꺼낸다. C과장은 "다음에 올 때는 재발 방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라며 "선서를 한다든지 각서를 쓴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고 압박한다.

B수사관도 A씨가 민간사찰을 언론에 폭로하고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해도 얻을 것이 없다며 은근히 협박한다. B수사관은 "우리가 이렇게(민간인 사찰) 하는 거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걸면) 우리는 그냥 일거리 많아지고 그걸로 끝나는 거지만, 김 대표는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린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녹취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A씨가 프락치 활동을 계속 이어가도록 재테크 상담을 해주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이들은 심리적 압박과 건강 문제 등으로 일을 그만두겠다던 A씨에게 6개월 단기 업무를 제시하며 끝까지 민간인 사찰을 이어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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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기자 canelo@mt.co.kr, 최우영 기자 ,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김소영 기자 sykim111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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