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합격 기준 불투명.. 부모 재력·정보가 대입 당락 갈라 [심층기획 - 학생부종합전형, 왜 '공공의 적' 됐나]

이천종 2019. 9. 3.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위층 부모들 논문·인턴 '스펙 품앗이' / 교수들, 자녀 공저자로 등재 비일비재 / 소득 상위 30% 합격 비율 1.5배 높아 / 불안감 커져 너도나도 영재·선행학습 / '입시 코디'까지 등장 사교육 시장 팽창 / 2018년 사교육비 규모 19조5000억 달해 / 평가 근거 알기 어려운 '깜깜이'도 문제 / 학생부 '복붙'·허위 기재 탓 불신 커져 / 일선 교사들조차 "生기부 아닌 死기부"
대입 수시 전형 중 하나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올해처럼 자주 도마에 오른 일은 없었다. 올 초 드라마 ‘SKY캐슬’의 흥행으로 회자되더니 5월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1심 판결로 다시 주목받았다. 8월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외고 시절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둘러싼 의혹이 폭염 못지않게 번졌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이 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교육부는 4일부터 대입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학종을 포함한 대입 수시 제도가 조만간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예비고사·본고사-학력고사-수능’으로 이어진 획일적 입시 위주 교육의 악몽을 벗어나려 도입한 학종(옛 입학사정관제)은 왜 이렇게 신음하고 있을까.

학생·학부모·일선 교사·입시학원 강사들의 일치된 견해는 대략 세 가지다. 돈과 권력, 인맥·정보가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금수저·학부모’ 전형이라는 비판, 합격·불합격의 평가 근거를 알기 어려운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만, 불투명한 입시로 사교육 시장만 키운다는 지적 등이다.

◆‘금수저 전형’ 도마

2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종은 내신(학생부 교과) 외에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동아리 활동, 자기소개서 등 교과성적 외에 다양한 활동을 입시에 활용한다. 시험 한 방으로 승부하지 않고 과정을 두루 평가해 학생의 다양성을 살린다는 취지다. 취지로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제도이지만 현실에 적용하면서 심하게 비틀렸다. 학종은 그 전신인 입학사정관제 도입부터 꼬였다.

조 후보자 딸 논란에서 보듯 초기 입학사정관제는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다. 2010년을 전후해 대학 입시 시장에서는 논문과 봉사활동, 인턴 경력 등 ‘스펙 쌓기’ 열풍이 불었다. 입시에 유리하다는 풍문을 타고 독서와 동아리·봉사활동, 소논문 쓰기 등 각종 비교과활동 프로그램이 양산됐다. 발 빠른 특목고와 전국 단위 자사고 등은 학부모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했다.
이 당시 고교생들의 논문 공저자 등재와 있는 집 학부모들의 논문과 인턴 ‘품앗이’는 유행처럼 번졌다. 지난 5월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7년 이후 전국 총 50개 대학 소속 교수 87명이 139건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대상 대학 중 서울대 교수가 가장 많았다. 교수 7명은 논문에 대한 기여가 없는 자녀를 논문 12편의 공저자로 올리기도 했다.
전국대학입학관련처장협의회가 2016년 6월 주최한 ‘학종 발전을 위한 고교 대학 연계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집을 보면 학종은 내신만 보는 교과전형에 비해 월소득 상위 30%(월소득 500만원 이상) 집 자녀의 합격자 비율이 그 이하자의 1.5배, 그중에서 월소득 1000만원 이상 집 자녀의 합격자 비율은 30%이하자에 비해 2배 높았다.
대입으로 가는 큰 강이 물줄기를 틀자 고교 입시를 향한 샛강은 더 빠르게 물길을 냈다. 상위권 대학을 학종으로 입학하는 데 유리하다는 입소문과 함께 영재고·과학고,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 전국형·광역 단위 자사고 등의 인기가 치솟았고 고입 경쟁은 과열됐다. 상대적으로 절대 다수인 일반고는 ‘2부 리그’로 낙인찍혔고, 고교는 1960~1970년대처럼 서열화됐다.
고입 경쟁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재·선행학습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영재학교와 전국단위 자사고, 과학고 등은 ‘상위 0.1%’ 학생들이 가는 고교 서열의 최상층에 자리한다. 합격하려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른바 ‘속진’으로 불리는 선행학습이 필수적이다. 입시 컨설턴트인 김은실씨가 2017년에 쓴 ‘문재인시대의 입시전략’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중2때까지 영재학교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1억6000만∼2억원대에 달한다.
◆‘학부모 등골 브레이커’ 학종 사교육

대학 입시가 수시모집 중심으로 바뀐 이후에 사교육 시장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입시 코디’(입시 컨설턴트)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사교육 모델이 생기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학종을 대세 전형으로 밀고 있어 입시 코디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진다.

일단 입시컨설팅 학원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입시컨설팅 학원은 2014년 말 51개에서 2018년 8월까지 248개로 5년 만에 4.9배 늘었다.

입시 코디는 주로 서울 강남과 같은 교육특구에 밀집해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원·교습소 현황에 따르면 2018년 4월 기준 개설된 진학상담지도 강좌의 75%가 사교육 메카로 불리는 강남·서초지역에 밀집돼 있다.

2018년 초·중·고교생들이 사교육 기관에서 받은 이른바 진로·진학 컨설팅 비용 총액은 616억원으로 파악됐다. 고등학생 100명 중 4명이 이런 컨설팅을 받았다. 진로·진학 학습상담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의 1인당 연간 평균 상담 횟수는 2.6회, 상담 1회당 연간 평균 비용은 11만8000원이다.
SKY캐슬에 등장하는 고액 컨설턴트 ‘쓰앵님’(드라마 속 주인공이 ‘선생님’을 ‘쓰앵님’으로 발음하면서 된 유행어)을 떠올려보면 기대 이하 시장이다.

이에 대해 입시전문가들은 이 통계에서 잡히는 사교육 비용은 대체로 법정 컨설팅비 정도(1분당 5000원, 시간당 30만원)여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본다. 스타급 입시 코디가 은밀하게 받는 금액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임성호 하늘교육종로학원 대표는 “당장 ‘인서울’을 노리는 수험생을 위한 30만원대 입시컨설팅뿐 아니라 ‘언더’에서 머물던 고액 입시컨설팅 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면서 “이대로 가면 거액을 받는 ‘입시 코디’가 국·영·수 강사를 팀으로 거느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교육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2019년 3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8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규모가 19조5000억원에 달했다. 전년(18조7000억원)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2011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였다.

◆‘깜깜이 전형’ 논란

지난 4월4일 경기 성남코리아디자인센터. 교육부가 마련한 ‘제1차 고교·대학 간 원탁토의’가 열렸다. 원탁회의는 ‘깜깜이’ 전형이라고 비판을 받는 학종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고교 교사들은 물론 대학 입학사정관과 교수, 교육관료, 취재진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한 교사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가 입시를 위한 도구가 되면 안 된다지만 지금 교사들 스스로도 ‘생(生)기부’가 아닌 ‘사(死)기부’라고 부를 정도”라고 일갈했다. 이후 6차까지 이어진 고교·대학 원탁토의에서도 부풀리거나 부실해 학생의 성장과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는 생기부의 실태를 꼬집는 일선 교사의 발언은 쏟아졌다. 교육 현장에서 생기부가 얼마나 불신받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교사들의 지적대로 허위 기재하거나 부풀리고 제대로 담지 않거나 같은 내용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하는 등 부실 기재로 감사에 걸린 사례는 수두룩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학생평가·학생부 신뢰도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한 관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1만1591개 초·중고교 중 1만392개(89.7%)를 대상으로 2015년도 이후 전반을 감사한 내용이다. 생기부 관련 2348건, 학생평가 관련 1703건이 적발됐다. 생기부와 관련해서는 △창의적 체험활동과 출결 불일치(782건·33%) △관리소홀·입력 착오·미기재(772건·33%)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재관리 부적정(424건·18%) △학생부 정정 절차 부적정(160건·7%) △봉사활동 및 시수 입력 부적정(149건·6%) 등이었다. 생기부가 고등학교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는 ‘복불복’ 의혹도 깜깜이 전형 논란과 맞닿아 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