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에서 이민자와 실랑이.."네 나라로 돌아가라" 언성 높이기도

김정남 2019. 9.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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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두달 앞..안개 낀 영국을 가다]②
"이민자들로 인해 젠틀맨십 사라져"
장년층·非런던인 EU 탈퇴 지지
"유럽연합과 교역 끊기면 부작용↑"
젊은층·런던인들 탈퇴 반대 나서
브렉시트(Brexit)에 반대하는 영국 시민들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런던 의회 앞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런던=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영국이 두 동강 났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떨어져나오려는 브렉시트, 그것도 노 딜(no deal·합의 없는)의 충격을 불과 두 달도 채 남기지 않고서다. 거칠게 보면 런던 사람과 비(非)런던 사람, 젊은층과 장년층으로 각각 반(反)브렉시트파와 브렉시트파로 나눌 수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찬반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위대하게’ 구호와 비슷해 보였다.

네덜란드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40대 영국인 직장인 N씨. 그는 최근 영국 시내 워털루 지역에서 술을 마시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옆 테이블의 손님끼리 시비가 붙었는데, 그 중 나이 지긋한 한 영국인이 “네 나라로 돌아가라(Go back to your country)”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실랑이가 붙은 상대는 자메이카 국적이었다고 한다. N씨는 “(대영제국의 역사 때문에) 자존심이 센 영국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브렉시트로 투영됐다고 본다”며 “파운드화가 연일 하락해 급여가 줄어든 건 기분이 안 좋지만 이런 혼돈 속에 나라 밖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파운드·달러 환율은 지난 30일 파운드당 1.2160달러까지 내렸다(파운드화 가치 하락). 지난해 말만 해도 1.3달러대였다.

◇“의회 멈추지 말라” 英 곳곳서 잇단 시위

거의 10년 만에 다시 영국 주재원으로 파견된 국내 한 국책은행원 K씨. 그는 몇 년새 영국 사회의 변화상을 체감하고 있다. “영국은 거의 1차선으로 길이 좁잖아요. 그래도 10년 전에는 앞 차에 무슨 일이 생겨도 뒷 차는 기다렸거든요. 요즘에는 경적소리가 난무하더라고요. 놀랐습니다.” 이를 두고 영국 장년층 일각에서는 동유럽 등에서 온 이민자들 탓에 신사다움(gentlemanship)이 사라졌다는 여론이 있다. 하지만 EU와 교역이 활발해지며 영국 경제가 살아났다는 주장도 많다. 노 딜 브렉시트를 목전에 두고 영국 사회가 혼돈에 빠졌다는 방증이다.

영국 정치권부터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지역의 영국 국회의사당 인근에서는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시위대로 시끌벅적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라” “의회를 멈추지 말라” 등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강경파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를 막는 야권의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의회를 멈춰세우자, 이를 반대하려 나선 것이다. 일간 더타임스는 이날 1면 머릿기사로 ‘존슨 총리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Johnson goes for broke)’라고 썼다. BBC 등에 따르면 이 시위는 런던 외에 맨체스터, 셰필드, 에딘버러 등 주요 도시에서도 벌어졌다. 현지에서는 “영국 사회가 반으로 쪼개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다. 전례 없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시계제로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의 주요 제조업 기반인 자동차 업체들이 이전을 계획하는 게 대표적이다. 현재 영국과 EU 사이를 오가는 자동차 부품은 무관세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그 생상 비용을 증가할 게 뻔하다. 일본계 혼다와 닛산을 비롯해 BMW, 포드 등이 생산거점 이전을 확정했거나 검토하는 이유다. 런던 현지 금융가 한 인사는 “그 속내는 모두 브렉시트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영국 2분기 GDP 증가율 마이너스 기록

그 조짐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성장은 2012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한국은행 런던사무소 관계자는 “세계 경제 둔화 우려와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 등으로 영국 경제는 당분간 미약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장바구니 물가는 오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은 식료품이 싸고 신선하다. 예컨대 스페인에서 수입되는 산미구엘 맥주는 440㎖짜리 4개가 4파운드(약 5888원)에 팔린다. 160g 용량의 과일 모음(fruit medley)는 1파운드 초반대면 살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갓 구워진 크루아상이 1파운드도 채 안 한다. 그러나 EU와 교역량이 줄면 이런 혜택을 더이상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영국 소매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노 딜 브렉시트 하에서 신선식품의 공급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얘기는) 틀렸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캠페인 ‘브렉시트를 준비하라(Get ready for Brexit)’를 식품업계가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브렉시트에 세계의 눈이 쏠리는 것은 영국이 경제 대국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 통계를 보면, 지난해 영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조8252억달러로 5위를 기록했다. 미국(20조4941억달러), 중국(13조6082억달러), 일본(4조9709억달러), 독일(3조9968억달러)과 함께 5대 경제 대국이다. EU 전체로 넓혀보면 독일과 영국 외에 프랑스(2조7775억달러)과 이탈리아(2조739억달러), 스페인(1조4262억달러)도 각각 6위, 8위, 14위에 올라있다.

유럽을 아우르는 초거대 경제권의 교역에 이상이 생기면 금융위기 이후 가뜩이나 감소하고 있는 세계 교역량에 악영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을 기반으로 12위(1조6194억달러) 경제권으로 성장한 한국에도 악재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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