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옥스퍼드 망나니 클럽' 인맥, 英 정치·행정 주무른다

박준우 기자 2019. 9. 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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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사교모임인 벌링던 클럽 출신의 영국 정치인인 데이비드 캐머런(왼쪽부터) 전 총리,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 보리스 존슨 총리. 가운데 흑백 그림은 지난 2007년 유출됐다가 저작권을 이유로 배포가 금지됐던 1987년 벌링던 클럽 사진을 BBC방송의 의뢰로 화가 로나 마슨이 유화로 그린 ‘1987년 클래스’ 작품으로 캐머런(뒷줄 왼쪽 두 번째) 전 총리와 존슨(앞줄 왼쪽 세 번째) 총리가 함께 있다. BBC캡처 등 재인용

-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벌링던 클럽’

‘새IMF총재에 오즈번 前재무’

존슨 총리, 美에 로비한 정황

野의원 “벌링던 출신” 비판

존슨·캐머런 前총리 등 함께

1987년 찍은 회원사진 화제

英국왕 2명도 거친 ‘1%클럽’

매춘여성 불러 신고식 하고

물건 부수고 서민 비하까지

시대 변했지만 인맥은 여전

영국 정가에서 또다시 ‘벌링던 클럽’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논란에 불을 질렀다. 지난달 29일 노동당 그림자내각의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존 맥도널 의원은 존슨 총리를 “독재자”라고 비난한 뒤 “다우닝가 10번지(총리실)를 마치 벌링던 클럽처럼 운영한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서 일주일 전 존슨 총리가 벌링던 클럽 출신의 후배인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을 차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앉히려고 시도한 사실을 비롯해 국정운영 전반을 문제 삼은 비판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는 존슨 총리가 오즈번 전 장관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로비’를 한 정황을 공개했다. 강경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주의자인 존슨 총리가 반브렉시트파인 오즈번 전 장관을 지지한 데 대해선 클럽을 통한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고 데일리 미러는 추정했다.

벌링던 클럽이 도대체 뭐길래 야당이 난리일까. 대개 밖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비인가 클럽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는 역사가 꽤 길다. 문제는 상류층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성에 공격성과 인종 차별성까지 드러나며 비난을 받고 있던 클럽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세가 수그러들고 있다고 해도 영국 내에서 여전히 ‘클럽 인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일반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왕 4명, 총리 2명을 배출한 상류층 클럽 = 벌링던 클럽의 ‘인맥’이 높게 평가된 계기는 2007년 공개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1987년도 벌링던 클럽 회원들을 찍은 사진에는 당시 보수당 당수와 런던 시장을 각각 지내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존슨 총리 등이 함께 포즈를 잡고 있었다. 당시 사진은 곧 저작권자의 주장으로 공식적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지만, 인터넷상에선 아직 이들의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캐머런 전 총리는 취임 후 39세에 불과했던 오즈번 전 장관을 역대 최연소 재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존슨 정부에서도 닉 허드 북아일랜드부 장관이 벌링던 클럽 출신 인사로 인맥을 유지하고 있다.

벌링던 클럽의 시작은 200여 년 전인 1780년대로 추정된다. 초창기 사냥과 크리켓을 즐기기 위해 30여 명이 모인 게 그 시초다. 상류층 자제로 구성된 클럽은 곧 운동 그 자체보단 사교적 모임의 일환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클럽으로 내부 검증을 거쳐 기존 멤버의 초대를 받아야만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맞춰 입는 제복만 3500파운드(약 522만 원)에 이를 정도다. 워낙 명사들의 자제가 많이 가입한 클럽이기 때문에 수많은 관심이 집중돼 왔다. 영국의 전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와 에드워드 8세, 태국의 라마 8세,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9세가 벌링던 클럽을 거쳐 갔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남동생 찰스 스펜서 백작도 이 클럽을 거쳐 갔다. 재계 인사로는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으로 최근 스위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너새니얼 로스차일드 JNR 대표 등이 벌링던 클럽 출신이다.

◇사건·사고의 온상, 처벌은 미약 = 벌링던 클럽이 세간에 더 유명해진 이유는 회원들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사건·사고 때문이다. 비싼 연회를 즐긴 이들이 만취 상태로 레스토랑이나 학교 강의실, 민가 등을 대상으로 반달리즘을 벌이고 다녔다. 이미 1894년 5월 회원들이 학내 교회인 페크워터 쿼드랭글의 유리창 468개를 깨뜨린 바 있었다.

이 같은 행동은 21세기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5년 이 클럽 회원들은 15세기 시절 설립된 페이필드의 ‘화이트 하트 펍’의 모든 유리창과 식기들을 부수는 기행으로 다시 구설에 올랐다. 당시 행위 가담자 중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조카 알렉산더 펠로즈가 포함돼 있었다. 지난 7월 영국 가디언은 이 클럽이 1980년대 새 멤버를 받을 때 통과의례로 하던 행동들을 폭로했는데, 모임에 매춘 여성들을 불러 동석시키거나, 신고식을 위해 살고 있는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파괴하는 극단적 형태의 반달리즘이 지적됐다. 또한 나치 복장으로 모임에 참석하거나, 서민층을 비하하는 구호 등을 외치는 등 범죄에 가까운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다녔다고 전했다. 이 목격자는 존슨 총리가 당시 모임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이 같은 행동을 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캐머런 전 총리 또한 당시 클럽에서 활동하며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정황이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같은 클럽 멤버들의 방종은 연극 ‘포시’와 영화 ‘라이엇 클럽’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퇴조? 대학도 강경 처벌 방침 = 이 같은 방종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이들에게 쏠리는 시선도 차가워졌다. 명문가에서는 이들 클럽에 자녀들이 소속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옥스퍼드대 내 보수당 모임인 ‘옥스퍼드보수연합(OUCA)’은 벌링던 클럽 출신자들의 활동을 금하기도 했다. 현재 클럽 벤 에티 OUCA 회장은 “이들의 태도나 자세 등은 현대 보수당의 가치 및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 또한 당시의 활동에 대해 “지독하게 오만했고 우월의식에 찌들었던 부끄러운 순간들”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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