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촛불 든 서울대생 "학생들 자발적 나선 건 최순실 이후 처음"

김승현 2019. 9. 4. 00: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입 활용보다 제1저자가 사퇴 사유
"몰랐다"는 조국 기자간담회에 실망
마스크는 신상털기 예방하려는 것
유튜버 인터뷰 악용 소지있어 사양

[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서울대생은 왜 교수님께 촛불을 들었나
지난달 28일 서울대 아크로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촉구 촛불집회. [연합뉴스]
“학생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건 3년 전에 이어 두 번째네요.”

서울대 총학생회 도정근(23·물리천문학부 15학번) 학생회장은 지난달 28일 촛불집회의 배경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 사회 문제를 놓고 모이려 하지도 않고, 모으기도 어려운 요즈음 대학생들이 스스로 행동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얘기였다. 집회 명칭은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였고 학생회 추산으로 800여 명이 모였다. 개인이 주관한 1차 집회와 달리 서울대 총학생회가 개최하는 행사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처음으로 공식화하는 자리여서 사회적 관심도 높았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서울대의 자긍심이 담긴 시구는 이날엔 공교롭게 중의적인 메시지가 됐다. 수십 개의 방송 카메라와 100여 명의 취재진과 유튜버들까지, 총학생회도 ‘대형 무대’에 긴장했다.

그들은 왜 촛불을 들었을까. 그것도 서울대 동문 선배이자 교수님인 조국 후보자를 향해. 학생들의 주장은 거침없으면서도 진지했고, 순수하면서도 당찼다.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격을, 586 선배에 대한 실망감을, 20대 청춘의 분노와 무력감을 또랑또랑하게 얘기했다. 한국 최고 대학의 학생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도 회장은 집회에서 “법률을 잘 아는 법학자이자, 평등을 외쳐온 지식인이자, 법망을 잘 피하며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은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완전히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증과 졸업증명서를 지참하라는 안내문이 적힌 촛불집회 포스터.

Q :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는.
A : “공정함이라는 부분에서의 문제의식이다. 논문 제 1저자와 장학금은 조국 후보자의 관여가 아니라면 딸의 짧은 기간의 상당한 기여이거나 담당 교수의 선의일 텐데, 둘 다 납득이 어렵다.”

Q : 사퇴 촉구 촛불집회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A : “5년째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을 보는 건 두 번째다. 3년 전 최순실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됐을 때가 처음이었다. 1980년대는 사회적으로 절대악이 있었던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공감한다고 본다. 이번에도 그 지점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다. 사퇴 요구를 하느냐, 해명을 요구하느냐를 놓고 논의해 다수결로 정했다. ‘해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해명한다 한들 지금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의 분노 수준은 사퇴 요구가 맞다’고 결정했다.”
현재 서울대 총학생회는 비(非)운동권으로 분류된다. 이번 집회에 학생회의 보수적인 정파성이 반영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학생회장 개인의 이력과 고교 시절 논문도 논란이 돼 도 회장이 설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임지현(24) 공대 학생회장은 “저도 운영위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개인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도 회장은 “지금의 학생회를 386세대 때처럼 바라본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학생회가 앞장서서) 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용석 변호사(가운데) 등이 유튜브로 집회를 생중계하는 모습. [김승현 논설위원]

Q : 고교 시절 논문은 어떻게 공개됐나.
A : “제 이름이 특이해서 동명이인이 거의 없다.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그런데 ‘프레이밍’을 해서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진영 논리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본다. 저는 떳떳하니까 괜찮은데, 여자 친구를 SNS에서 공격하거나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논문을 함께 쓴 친구와 선생님께 죄송했다.”

Q : 조국 후보자의 딸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A :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 사안의 정도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공적인 비판과 개인적인 건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저도 그렇게 임하고 있다.”

Q : 조국 사퇴 요구를 ‘문재인 반대’로 읽는 시각도 있다.
A : “분명히 구분돼 있다. 정부 정책까지 넘어가는 주장은 안 하려고 한다. 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평가는 긍정부터 부정까지 다양하다.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후보자를 둘러싼 것이다. 거기에 집중하고 더 나가거나 희석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Q : 앞서 반일 문제나 ‘죽창가’ 등에 대해 목소리를 냈나.
A : “학생회가 의견을 받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 학교 밖 사안에 의견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엔 후보자가 서울대 교수라는 게 컸고, 학생들도 적절치 않다는 표현을 많이 해서 총학생회가 반영한 것이다.”

Q : 포털에서 검색 전쟁도 벌어지는데.
A : “둘 중 어느 의견이든, 실시간 검색어로 띄우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생은 많지 않다고 본다. 맹목적인 의사 표현일 뿐 생산적이지 않다. 개인의 정치 행위일 수는 있겠으나 그걸 보고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할 정도로 본질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을 것 같다.”
현장에서 방송하는 유튜버들. [김승현 논설위원]
이날 서울대 집회에는 수십명의 ‘보수 유튜버’들이 생중계를 했다. 조명을 켜고 중계석을 만든 유명 인사도 보였고, “나라를 바로잡는데 좌우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장년층도 있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다는 노·장년층 수십명은 집회를 응원했다. “왜 이렇게 안 모이지”라고 걱정하거나 “학생들이 4·19 때처럼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버들은 집회가 끝난 뒤엔 학생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도 회장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는 “괜한 오해가 생길까 봐 공인된 언론 외에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회 포스터에 “특정 정당과 정치 집단의 정치적 소비를 배제하기 위해 학생증, 졸업증명서를 통해 참가자의 구성원 여부를 확인한다”는 안내 문구가 들어간 것도 그래서다.

도정근 학생회장

Q : 2016년의 촛불과 비교한다면.
A : “제가 2학년 2학기 때인데 총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많이 나갔다. 그때와 정도는 다르지만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정의·공정·평등, 이런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Q : ‘조유라’라는 말도 유행한다.
A :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이대 입시에서의 문제가 명확했다. 이번은 입시에 부정하게 활용됐느냐 하는 것보다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그 논문에 제 1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부분이 더 크다. 사회적으로는 입시가 가장 민감할지 모르지만, 학생들은 입시에 활용이 안 됐다 하더라도 너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Q : 후보자는 ‘소홀한 아빠였다’며 영향력 행사를 부인하는데.
A :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납득이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직접 관여했든, 봐준 것이든 다를 바 없다는 학생도 많다. 사회적 지위나 불평등이 물려 받아지는 부분을 건드린 거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거나 없었거나 분노하는 지점은 동일하다.”
집회 이튿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의 손길이 어른거린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도 회장은 “직접 안 와보셔서 그런 것 같다. 그 정도 되는 분께서 학생들 목소리를 진영 논리로 끌고 가려는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집회에서 마스크를 왜 쓰냐’고 한 것에 대해선 “유 이사장님 말처럼 공권력에 의한 불이익보다는 신상털기 같은 게 두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집회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은 10% 이하였다. 행사 진행자는 “학생회관 1층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안내했다.

지난 2일 인사청문회가 불발되자 더불어민주당과 조 후보자가 국회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를 본 뒤에도 도 회장은 “역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적인 부분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몰랐다고 했다. 이해되지 않았고, 학생들의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도 회장은 “동문 선배에게 실망하는 상황이 계속돼 착잡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장학금 등 문제가 드러난 서울대의 시스템을 더 투명하게 개선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혜택을 받게 하는 방안들을 학생회 차원에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