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들 팔아 한몫" 파렴치한 몰린 거제 학폭 피해자와 가족(인터뷰)

최민우 기자 2019. 9. 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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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들에게 목이 졸려 쓰러지는 A군의 모습. SBS '그것이알고싶다' 캡처

고교 2학년 A군(18)은 중학교 2학년 때인 2016년 겨울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경남 거제 모 교회 등에서 B군 등 동급생 4명에게 집단폭행 및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A군을 수시로 때렸고, 의식을 잃고 기절할 때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목을 졸랐다. ‘어머니를 성폭행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심지어 A군의 바지를 강제로 벗긴 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A군이 2년 가까이 지속된 학교폭력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건 지난해 8월. 그리고 1년여 만인 지난 2일, 검찰은 가해자 중 2명을 마침내 기소했다. 법적 처벌의 첫 걸음을 뗀 것이다. 하지만 A군 가족의 고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일보는 A군의 어머니 채모씨와 지난 한달 동안 40여차례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했다. 채씨는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는 끝없는 고통에 대해 털어놓았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2차 가해는 너무 쉬웠고, 아이의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더 커졌다.

채씨는 “가해자 측에서는 사과는커녕 나와 아들을 폭행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며 “우리가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해 고소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떠나게 된 건 가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였다. A군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채씨는 9년 동안 살았던 거제를 조만간 떠나기로 결정했다.

목조르기, 성희롱, 불법촬영, 집단폭행… 끔찍했던 시간들

지난해 8월 19일 일요일 오전 예배가 있던 날에도 폭력은 계속됐다. 가해 학생들은 그날 교회 주차장 건물 계단 인근에서 한번, 길가에서 또 한번, 모두 두 차례 목을 졸라 A군을 기절시켰다. 이들은 숨이 막혀 눈이 뒤집힌 A군을 비웃으며 목을 더욱 졸랐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A군은 충격으로 휴대전화를 길가에 흘린 채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A군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2년 가까이 지속돼온 학교폭력에 대해 어머니에게 털어놨다. 그리고 다음달인 지난해 9월초 A군과 채씨는 B군 등 4명을 상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지난 2일 가해자 4명 중 B군을 폭행·공동폭행·상해 및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C군을 상해·공동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나머지 2명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소년부로 송치했다.

공소장을 보면 A군이 당한 피해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폭행은 학교 교실·급식소, 동네 분식집, 아파트단지, 공원, 학원 부근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이뤄졌다. 가해자들은 A군의 목을 휘감고, 머리채를 흔들고, 바닥에 넘어뜨리고, 벽에 밀쳐 때리고, 침을 뱉었다. 지난해 8월에는 교회 옥상에서 옷을 벗긴 뒤 신체를 촬영했고, 일주일 뒤에는 이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학교에서도 징계가 이뤄지기는 했다. 채씨가 고소장을 제출할 무렵인 지난해 9월 11일에는 이들이 다니던 고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4명 중 B군과 C군에게 각각 강제전학과 특별교육이수 30시간 및 보호자 특별교육이수 6시간의 징계가 내려졌다. 나머지 2명은 혐의를 부인해 처분이 유보됐다. 학폭위 측은 “피해 학생과 일부 가해 학생 간에 진술이 달라 유보 처분을 내렸다. 향후 재판 결과를 보고 처분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폭력은 멈췄지만 A군은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채씨는 “아이가 ‘거제 어디를 가도 맞고 괴롭힘 당한 기억이 떠오른다’며 운다”고 말했다. A군 어머니가 이사를 결심한 이유였다. 폭력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이는 아직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있다. A군은 최근 법원이 지정한 모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림=전진이 기자 ahbez@kmib.co.kr

“피해자 어머니를 엄벌해주세요”… 사과 대신 맞고소

채씨는 가해자들을 고소한 뒤인 지난해 9월 20일 B·C군 두 사람의 부모로부터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채씨를 폭행죄로 고소한다는 문자였다.

채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당시 문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고소 취하를 절대 못 해준다고 하니깐 우리도 고소하려고 경찰서에 왔다. 우리도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채씨를 되레 맞고소한 사연은 이랬다. 아들이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인 지난해 8월 20일 채씨는 가해자 B·C군과 B군 부모, C군 아버지를 자신이 운영하는 분식집으로 불렀다.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사과를 받기 위해였다. 채씨가 ‘왜 때렸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기절하는 모습이 재밌었다’고 답했다. 가해 학생들의 말에 화가 난 채씨는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채씨는 당시 자리에 있던 두 아이 부모의 동의를 얻은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약식기소 처리했다. 채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는 “뺨을 때린 건 사실이라 벌금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해 학생들을 법정에 세우고 싶었다”며 “소년법 처벌이 약하지 않느냐. 정식 재판을 신청해 귀찮게라도 하고 싶었다. 창피라도 주고 싶었다”고 재판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B군과 C군은 지난 7월 9일 법정에서 ‘채씨를 엄하게 벌해달라’고 밝혔다. 채씨는 “법정에서 가해자들이 용서를 빌 줄 알았다.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더라”고 말했다. 채씨는 지난 7월 22일 폭행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엄마는 돈 장사, 아들은 정신병자”… 쏟아진 2차 가해

채씨는 기자에게 지인들과 나눈 대화의 녹음파일을 들려줬다. 가해자 측에서 허위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사건 이후 가게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다. 손님 대부분이 교회 사람들이었는데 찾아오지 않는다”며 “내가 돈을 요구했다거나 아들이 원래 정신병자라는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게 앞에 침을 뱉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3500만원을 요구했다가 가해자 측에서 들어주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사람이 너무 무섭다. 나는 어느 순간 아들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이 사건 이전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채씨는 “지인을 통해 ‘원래부터 공황장애가 있었다’ ‘가해자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던 애다’는 식으로 내 아들에게 원래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가해자 측에서 이런 식의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A군이 중곡동 모 공원에서 가해학생들이 자신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A군 제공

채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 캡처본도 보여줬다. 지난 1월 1일 ‘거제도 학교폭력 가해자 중 한 명과 만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현재 삭제된 이 게시물은 SBS 시사 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2018년 12월 22일 방송)가 A군 사건을 다룬 지 일주일쯤 지난 시점에 올라왔다.

작성자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목도 조르고, ‘패드립’도 주고받는 친구 사이였다”며 페이스북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패드립은 ‘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로 부모 등 윗사람을 욕하는 것을 말한다.

작성자는 “두 사람이 서로 목 조르면서 장난을 쳤는데 피해자가 기절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며 “피해자 측에서 가해자 1명당 3500만원을 요구했다. 가해자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법정 싸움으로 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씨는 해당 페이스북 메시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씨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사건과 무관한 학생이다. 아들이 보냈다는 ‘패드립’은 가해 학생인 B군이 아들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은 뒤 본인이 직접 작성해 보낸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1월 1일 조작된 글이 올라온 뒤 교회와 가해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작아졌고, 우리 아들이 가해자들과 똑같은 놈이라는 비난이 커졌다.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가해자 측이 루머를 생산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고, 현재 거제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이 수사 중이다.

“가해자들이 벌 받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

채씨는 아이들이 다닌 교회 측 대응도 문제 삼고 있다. 교회 측은 학교 폭력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를 찾아가 ‘인천 초등생 토막살해사건’을 언급하며 고소를 취하할 것을 강요했다는 게 채씨 측 주장이다.

채씨에 따르면 교회 측 인사는 지난해 9월 22일 병실에 입원한 A군을 찾아왔다. 가해자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싶다는 A군에게 교회 관계자는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 대해 아느냐. 학생들은 사람을 토막 내 죽여도 징역 15년밖에 안 받는다. 그런 일(기절 등 폭행)로는 처벌 못 받는다. 소년법 모르느냐”며 가해자들과 화해하고 사건을 끝내라고 종용했다.

채씨는 “가해자들이 찾아올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약속도 없이 찾아와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말하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국민일보는 채씨가 제공한 녹취록을 확인해 해당 관계자가 채씨에게 “현재 소년법으로는 가해자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언급한 거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라고 해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언론과는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여러 번 있는 그대로 말을 했는데 언론에서 프레임을 갖고 내 이야기를 골라 쓰고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채씨는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다. 9년 전 시작한 분식집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채씨는 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아들이 교회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집이 풍족하지 못해서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보고 느낄 줄 알았다. 채씨는 “아들을 억지로 내몬 내가 죄인”이라며 가슴을 쳤다.

채씨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해자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며 피해자인 아들을 2번 죽이고 있다”며 “아들에게 가해자들이 벌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이 벌을 받는 모습을 보면 아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보는 가해자 측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한 끝에 가해자 부모 중 B군 어머니와 C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피해자 어머니를 폭행죄로 고소한 것에 대해 B군 어머니는 “나는 잘 모른다. 나한테 전화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피했다.

C군 아버지는 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건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난 뒤에 기사를 써야지.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면서 “서로 피차 간에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있다. 더 말하지 않겠다. 말이 자꾸 왜곡되고, 잘못 전달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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