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진위 논란 끝.. 이제 천경자 예술에 관심 쏟길"

이경택 기자 2019. 9. 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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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위작 논란의 대상이 된 4호(29×26㎝)짜리 작은 그림 ‘미인도’. 최근 미인도의 ‘진위’를 넘어 천경자의 작품 세계와 근현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료사진

- 大法서 ‘사자명예훼손’ 무죄 선고받은 정준모 평론가

1991년 첫 전시·공개되자

천경자 화백 “내 작품 아냐”

미술계 자체 감정선 “진품”

“30년만에 논란 끝나 다행

앞으로도 정확한 감정 위해

1만점 거래이력 DB화할 것”

“제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유족과 다툼을 벌인 것은 진위 논란 이후 선생님에 대한 예술적, 미학적 평가는 논외고 오직 미인도의 진위만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입니다. 천경자 선생님을 가린 미인도의 장막을 걷어내야 진정한 작가로서의 평가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술평론가이며 큐레이터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실장도 지냈던 정준모(62·사진) 씨는 ‘미인도’의 진위 논란에 가담한 배경에 대해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정 씨는 최근 미인도 관련 법정 다툼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일부 유족이 정준모씨를 비롯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 및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2016년 5월 고소·고발했고, 검찰의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에 따라 5명은 무혐의 처리되고 정 씨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씨는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지난 7월 대법원에서 1, 2심의 무죄판결을 확정지어 ‘법’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30년 만에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사실이 법적으로 확정됐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고소·고발이 없었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30여 년의 논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를 법적으로 가려달라고 할 유일한 권리를 가진 유족들 덕분이지요.”

그러나 이 같은 판결 내용에도 불구하고 화단 일각에서는 ‘미인도’의 진위에 대해 말을 삼가고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0·26 사태 후 김재규의 헌납재산에 들어 있던 미인도를 1991년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하며 불거졌다. 당시 천 화백은 ‘내 자식 내가 몰라보느냐’는 말로 위작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화랑협회 등 미술계는 자체 감정을 벌여 ‘미인도는 천 화백 작품이 맞는다’고 발표했다. 8년 뒤엔 고서화 수복 작가인 권춘식 씨가 “미인도는 내가 그린 위작”이라고 밝히면서 사건은 더 미궁에 빠져 들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는 천 화백 작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천 선생님이 ‘미인도’를 왜 본인 작품이 아니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당시 정황이 복잡합니다. 엄혹했던 당시에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집에서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도 그렇고요.”

정 씨는 1991년 사립미술관 근무 시절 미인도 사건을 처음 접했고,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으로 부임하며 미인도의 ‘진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 씨는 미인도의 제작 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며 ‘진품’임을 또 한 번 강조했다.

“석채(石彩, 돌가루 물감) 사용과 두꺼운 덧칠, 안료의 중첩 사용, 압인선(壓引線, 날카로운 필기구로 그린 외곽선), 그림 밑층의 ‘다른 밑그림’ 등 미인도의 여러 기법이 천 선생님의 다른 그림 제작 기법과 동일합니다.”

귀한 물건이나 소중한 미술품의 경우 위작은 존재한다. 지난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5000억 원에 거래된, 다빈치의 것으로 알려진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도 여전히 진위를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이런 논의는 전문가들의 학술적 토론을 통해 이뤄질 뿐 누구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미인도’에서 알 수 있듯 위작 여부에 이처럼 시끄러운 것도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정 씨는 지난 3월 설립된 한국미술품감정센터의 대표로 감정 현장에서 작품의 진위를 가리고 있다. “앞으로 감정 의뢰작들은 모두 작품 소장 경위(Provenance)와 서지 문헌 자료(Bibliography), 즉 해당 미술품이나 문화재가 실린 서적이나 도록, 인쇄 매체의 목록까지 거래 이력들을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할 예정입니다. 아마 10년쯤 한다면 미술 시장에서 현재 거래되는 1만 점 정도는 자료가 정리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 자연스럽게 위작 시비가 줄어들겠죠.”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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