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380만년 前 화석, 인류의 진화史 뒤집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9. 9. 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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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티오피아서 발굴된 화석
타 인류 조상種과 생존시기 겹쳐 수백만 년 전에 인류 공존 추정
한 종이 다른 종을 대체하면서 진화했다는 이론 설 자리 잃어
일부선 "확증하기엔 증거 부족"

인류의 진화사(進化史)를 새로 쓰게 됐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인류 화석이 지금까지 믿어온 단선적인 진화사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가 4만년 전 멸종한 사촌인 네안데르탈인과 한동안 공존했듯, 수백만 년 전에도 여러 인류 조상 종(種)들이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몇 없어 아직 확정된 이론은 아니지만 한 종이 다른 종을 대체하면서 인류가 진화했다는 이론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침팬지 크기 뇌에 두 발로 걸은 인류

미국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의 요하네스 하일레-셀라시에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2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380만년 전 성인 남성 인류의 두개골 화석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屬)에 속하는 아나멘시스종,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ustralopithecus anamensis)'로 분류됐다. 생물 분류에서 종이 가장 하위 단계이고 그 위가 속이다. 이를테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호모속 사피엔스종을 의미한다. 이번 화석은 발굴지인 미로 도라를 따서 MRD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두 발로 걸었던 사람족(族)으로 현생인류의 먼 조상이다. 420만년 전부터 200만년 전 사이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 살았다고 추정된다. 아나멘시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가장 먼저 출현했으며 이후 380만년 전부터 아파렌시스로 대체됐다고 알려져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나중에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포함된 호모속으로 이어졌다.

연구진은 이번 화석의 뇌 용량이 침팬지만 하고 튀어나온 광대뼈, 긴 송곳니, 원시적인 귓구멍으로 볼 때 아나멘시스가 확실하다고 밝혔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루시'로 유명한 아파렌시스는 그보다 얼굴이 평평하고 뇌도 더 크다. 루시는 발굴 당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비틀스의 노래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땄다.

최소 10만년 동안 두 인류 공존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프레드 스푸어 박사는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MRD도 루시처럼 인류 진화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했다. MRD가 인류 진화사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아나멘시스의 두개골이 온전한 상태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5년 처음 발굴된 이래 아나멘시스는 치아와 턱뼈 일부만 나와 얼굴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번에 복원한 아나멘시스의 얼굴을 1981년 에티오피아에서 나온 390만년 전 인류 조상의 앞머리뼈와 비교했다. 기존 이론이 맞는다면 이 뼈는 아나멘시스에 속해야 하지만 얼굴 형태는 아파렌시스와 흡사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아나멘시스는 420만년 전부터 380만년 전까지 살았고, 아파렌시스는 390만년 전부터 300만년 전까지 살았다고 추정했다. 최소 10만년은 두 인류 조상 종이 공존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아나멘시스의 한 집단이 갈라져 나와 특정 지역 환경에 맞게 아파렌시스로 진화했으며 이후 아나멘시스 본류가 멸종할 때까지 공존했다고 설명했다. 하일레-셀라시에 박사는 "이번 결과는 플라이오세(500만년 전에서 250만년 전 사이 지질시대)의 인류 진화에 대한 생각을 바꿀 결정적 사건"이라며 "이제는 누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지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학계는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윌리엄 킴벨 교수는 이번 화석이 아나멘시스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두 종이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 살았다는 주장을 확증하려면 좀 더 많은 화석 증거가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폈다.

하일레-셀라시에 박사의 지도교수였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팀 화이트 교수는 제자의 주장에 반대했다. 그는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MRD와 390만년 전 화석 사이의 차이는 (같은 아나멘시스종 사이의) 개인차로도 설명할 수 있다"며 "아파렌시스가 아나멘시스를 대체했다는 생각은 여전히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의 이상희 교수는 아예 "이번 두개골이 아파렌시스와 다른 종인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아파렌시스와 다르다는 증거를 송곳니의 안쪽 모양새에서 찾고 있는데 MRD의 이빨은 많이 닳아있기 때문에 강력한 증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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