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조슈아웡이 타이완에 간 다음날 강경하던 중국이 물러섰다!

강민수 2019. 9. 5. 11: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슈아웡이 타이완에 간 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였다.

공교롭게도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홍콩 데모시스토당의 비서장으로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수감됐던 조슈아웡이 타이완으로 간(9월 3일) 직후부터 꿈쩍도 안 하던 중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콩의 민주파 국회의원, 대학교 학생회 연합회 간부와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조슈아웡의 일성은 "중국 건국 70주년인 10월 1일 이전 타이완에서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총궐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란히 중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홍콩과 타이완은 운명공동체"라는 말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그 날 저녁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중국 공산당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을 콕 찍어 지목했다. 시 주석은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지만, 전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그만두고 싶다." 울먹여도 끄떡없던 중국 정부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른 것임은 세상이 다 안다. 홍콩 사무를 관장하는 중국 공산당 서열 7위, 한정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 인근 선전에 대응팀을 구성해 놓고 일일이 간섭하고 있는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놀란 캐리람 장관은 애초부터 송환법을 철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의도적인지 실수로 공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리람 장관과 기업인들과의 녹취록을 들어보면 강경한 중국 중앙 정부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홍콩 시위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먹이는 나약한 정치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녹취록을 단독 입수한 로이터는 캐리람 장관이 중국 중앙 정부에 '송환법 철회'를 건의했다가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캐리람은 지난 7월 9일 "송환법은 죽었다."라고 까지 표현하면서도 '완전한 철회'는 어렵다는 매우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왔다. 송환법 철회 카드가 캐리람의 선택이 아닌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결단이라는 방증이다.

중국의 실책…. 홍콩의 오늘은 타이완의 내일

홍콩의 일국양제 모델은 장기적으로 중국 정부가 타이완을 통일하려는 모델이기도 한데 상황이 꼬여버렸다. 홍콩을 잘 관리해서 타이완까지 통일을 하겠다는 게 일국양제를 고안해 낸 덩샤오핑의 구상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홍콩의 반중 시위가 타이완으로 번질 위기다. 땅속에 묻혀있는 덩샤오핑이 알면 벌떡 일어날 일이다.

지난 2014년 중국은 홍콩의 우산 혁명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에 강경하게 대응했더니 예상 못 한 타이완이 반응했다. 우산 혁명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친중성향 국민당이 반중 독립성향 민진당에 참패한 것이다. 1년 뒤 총통선거에서도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바닥을 쳤던 민진당이 홍콩 시위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조슈아웡에게 홍콩 시위대의 타이완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한 차이잉원 총통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다. 홍콩 잡으려다 타이완까지 놓칠 상황이다. 중국 관영매체가 '신세대 반역자'라는 수식어를 붙인 조슈아웡이 중국 공산당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타이완 총통 선거는 내년 1월이다.


세 번째 양보는 없다 했는데….

사실 홍콩에 대한 간섭이 심해진 것은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부터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1인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 있는 시 주석은 홍콩 문제에서도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일례로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은 홍콩 행정장관을 동석에 앉혀 면담했지만, 시 주석이 집권한 이후부터는 아랫자리에 앉히기 시작했다.

홍콩 반환 이래 크게 3번의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03년 우리로 말하면 국가보안법 파동, 50만 시민이 반발하고 나서자 철회됐다. 두 번째는 2012년 '애국교육' 파동, 세뇌교육 아니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 반발로 또 철회됐다. 그러나 세 번째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혁명은 시진핑의 강경책에 막혀 끝내 실패했다. 당시 로이터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주석이 양보는 없을 것이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세 번째 양보는 없다던 시진핑 주석이 네 번째인 이번에는 물러섰다.

사진 출처 : WSJ 제공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를 것이다." - 마오쩌둥

사실 2018년 2월 17일, 스무 살 홍콩 청년 찬퉁카이가 여자친구 펀샤오밍을 타이완 모텔에서 살해한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송환법은 시진핑이 시작한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불씨가 이젠 시 주석이 스스로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불이 됐다. 그것도 하필이면 시 주석이 사면초가일 때 말이다. 시 주석은 지금 미국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역전쟁은 화폐전쟁, 군비경쟁으로 전방위 확전 양상이다. 상대방은 중국의 약한 고리를 노리고 있다. 홍콩 시위대는 성조기를 흔들고 타이완은 미국에서 첨단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시 주석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강민수 기자 (mandoo@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