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조국스럽다

이정재 2019. 9. 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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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독재는 공포심 먹고 커
무서워 말고 희화화하는 게
독선 권력 물리치는 특효약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늘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결정적 한 방’이 터질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야당의 실력으론 솔직히 기대난망이다. 똘똘 뭉쳐 증거 인멸, 증언 번복까지 나서는 여권의 철벽 방어를 뚫긴 역부족으로 보인다. 설령 한 방이 터진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후안(厚顔)과 흑심(黑心)으로 보아 조국 후보자는 끝까지 버틸 것이다. 그가 버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뜩이나 어려운 대한민국호는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당장 야당 반발로 정치가 실종될 것이다. 정치에 종속된 경제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513조원의 내년 예산안 심의부터 건성건성 흘러갈 것이다. 정치적 위험이 커지면 기업은 몸을 사린다.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성장은 2%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 전쟁, 한·일 경제전쟁에 환율이 뛰고 주가가 곤두박질 중이다. 내우외환, 정부가 아무리 돈을 푼들 경제를 살릴 수 없게 된다. 집권 여당의 내년 총선 승리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조 후보자를 임명할 것 같다. 대통령은 “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분들이 일을 더 잘한다”고 말해왔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비도덕적 후보자를, 그것도 법과 정의의 수호자 법무장관에 앉히는 건 그야말로 독재 선언과 다름없다. 1인 독재든 진영 독재든, 독재 권력이 가능한 건 공포심 때문이다.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려면 공포심부터 이겨내야 한다. 그러려면 독재 권력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조롱감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 순서로 보면 독재 권력의 아바타 조국부터 조롱감으로 만드는 게 맞다. 화두는 ‘조국스럽다’다.

첫째, 편 가르기. 그와 생각이 다르거나 말이 다르면 친일이요 죽창에 꿰일 대상이다. 국민 정서도 둘로 갈렸다. S 대학 교수 K 씨는 “‘조국 임명에 찬성하느냐’ 묻고 ‘그렇다’고 하면 밥도 같이 안 먹는다”며 “조국은 이미 국민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앞으론 여러 말 할 것 없다. 딱 한 마디면 된다. 조국스럽다.

둘째, 내로남불, 뻔뻔하기. 그에게 쏟아지는 의혹은 열거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 의혹 하나하나에 그 자신이 과거 글과 말로 작심 비판을 했다. 이른바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다. 과거 조국의 날 선 비난에 따르면 현재 조국은 100번도 넘게 사퇴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버틴다. 존경스러울 정도다. 오죽하면 한국당의 중진 K 의원이 “이 정도면 벌써 물러났어야 하는 데 버틴다. 이해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 당황을 넘어 황당하다”고 했을까. 누군가를 내로남불, 뻔뻔하다고 욕하고 싶을 땐 조용히 이렇게 말하라. 조국스럽다.

셋째, 모르쇠+무능력으로 출세하기. 그는 딸의 억지 스펙 만들기나 사모펀드에 대해 대부분 “모른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나라를 구하는 일에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일이라도 잘했어야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했다. 남의 재산을 검증하는 게 일인 민정수석이, 사모펀드에 대해 공부도 안 하는 게 맞나. 그렇게 일을 건성건성 했으니 3년도 안 된 이 정부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 안 된 장관급 인사가 16명이나 된 것 아닌가. 벌써 박근혜 정부 때 10명보다 많다.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선 “모른다”는 게 불법보다 더 큰 잘못일 수 있다. 그래놓고 또 법무장관으로 출셋길을 걸으려 하니 얼마나 신통방통한가. 아무것도 모르고 능력 없이 연줄로 출세하는 이를 보면 역시 한마디만 하면 된다. 조국스럽다.

조 후보자에 대한 조롱을 몇 개 늘어놨지만, 더 절망하는 지점이 있다. 이쯤 됐는데도 그를 옹호·지지·응원하는 진영 논리와 세력이다. 어쩌면 이리 맹목적일 수 있나. 태극기 집회를 그토록 욕하고 우습게 보던 게 자신들 아니었나. 절망의 본질은 그것이다. 나라는 백척간두인데 진영의 목소리는 왜 갈수록 커지는지. 그야말로 조국스럽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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