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십여년 전 특목고에서 '스펙쌓기' 돕던 교사였습니다

박은선 입력 2019.09.06. 07:33 수정 2019.09.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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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판사 엄마와 로스쿨 교수 아빠'를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박은선 기자]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이다. 나는 법무부 주최 전국 고교 모의재판 대회에 참가한 우리 학교 팀 지도교사였다. 참고로 당시 본선에 오른 참가팀들은 모두 특목고, 자사고 팀이었으며 내가 있던 학교 역시 특목고였다. 

나는 그 대회에서 높은 상을 받은 한 자사고 팀이 의심스러웠다. 심사위원들의 극찬도 이상했지만, 대회 현장에서 그 학교 참가자들을 지도하던 사람이 팀원의 엄마로 현직 판사임을 알게 됐다. 또 이후 법무부 사이트에서 해당 학교의 대본을 다운받던 중 파일명에서 그 아이의 아빠라는 한 로스쿨 교수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분노했다. 후에 이를 기사로 썼고 '기사를 읽다가 나는 다른 것보다, 변호사 부모가 아예 없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는 어느 시골학교 교감 선생님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관련기사 : '날로' 먹는 '판사 엄마'한테 지기 싫어서, 학생들에게 거짓 강요...전 나쁜 교사입니다 http://bit.ly/15fUb2Z).

그런데 당시 내가 기사에 담지 못했거나 담지 않았던 뒷이야기가 있다. 

"우리 애를 배석판사 자리에 앉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우리 학교 참가팀은 자발적으로 결성됐다. 어느 날 스스로 팀을 만든 아이들이 지도교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아이디어 회의부터 대본 초안 작성까지 여름방학 내내 우리는 노력했다. 하지만 법조문도 재판 절차도 잘 모르는 고등학생들과 고등학교 교사에겐 한계가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팀원이 아닌 다른 재학생의 '변호사 아빠'가 도움을 주셨다. 그 분은 우리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해주셨고 부족한 대본을 '재판 대본'으로 다듬어주셨다. 너무도 감사했다. 

그런데 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 분이 대회 날 당신의 아이를 배석판사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오셨다. 대회를 경험하게 해주고픈 '아빠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배석판사는 법복을 입고 그저 앉아있기만 하면 됐다. 대본은 이미 완성되었고 어려운 용어들이 섞인 긴 대본을 암기하는 것도 팀원들 몫이었다.

하지만 상을 받는다면? 그럼 배석판사 역할을 한, 그 변호사 아빠의 아이도 상의 효과를 똑같이 누릴 터. 이에 "○○이 아빠가 고맙긴 한데요, 선생님, 솔직히 좀 억울해요"라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장려상을 받았다. 적어도 우리 팀의 '변호사 아빠'는, 참관은 오셨어도 누군가와는 달리 심사위원들 근처로는 가지도 않으셨다. 적어도 우리 팀의 '변호사 아빠'는, 여느 참가팀과 달리 매년 학교 측 또는 학부모들 측에서 대가를 받고 대본을 다 써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분 아이의 학생부에도 수상기록이 올라갔다.
 
그 아이가 입시에서 그 기록을 제출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결과로 설명해선 안 된다. 그것이 불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선생님, 솔직히 좀 억울해요' 했던 한 아이의 말 속에 이미 답이 있었다. 아이들의 입시에서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할 '법무부장관상'에 대한 나의 비뚤어진 욕심은 그 자체로 충분히 비교육적이고 충분히 부정했다.

당시 입학사정관제 거쳐 간 이들의 자기고백을 바란다 
 
 8월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진상규명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요즘 한창 시끄러운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특목고에 다니던 당시 내가 다른 특목고의 교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전문직 내지 교수인 학부모들이 특목고, 자사고 아이들의 스펙 쌓기에 도움주는 것이 장려되던 때였다. 이른바 '비교과' 영역에서 아이들의 스펙 쌓기를 돕고 텝스 점수나 외국어인증점수 관리를 하며 교사가 스펙관리사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하던 때였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많은 대회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부모가 근무하는 언론사 등에서 활동도 많이 하고, 열정있는 교사들은 '잘나가는' 특목고, 자사고의 졸업논문집을 구해와 작성 노하우를 배워보려 노력하기도 하던 때였다. 어느 학교는 인근에 명문대 교수인 학부모들이 많아 아이들과 이러이러한 스펙들도 만들었더라며 부러워하던 때도 그 때였다. 강남에 고액 스펙관리업체나 자기소개서 대필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도 바로 그 때였다.  

당시 내가 연수를 통해 배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점수를 넘어 사람을, 현재를 넘어 가능성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 취지대로 확실히 순기능이 있었다. 당시 나는 입시전형이 바뀌면서 더욱 '교육적'이 되는 학교 현장을 경험했다.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의 힘만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차곡차곡 교육성과를 쌓아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수시전형이나 입학사정관제는 그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이를 평가할 기반이 될 '기회와 성과'가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에 영향받을 수 있는 문제도 존재했다. 아니 때로는 아이의 노력에 비해 아이의 배경이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낼 여지도 있었다.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인 내가 그때의 일을 고백하는 이유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무조건 사퇴'나 '무조건 임명'을 넘어, 지금이라도 당시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고 교육정의와 공정성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답을 찾아갈 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당시 입학사정제의 한계로 누군가는 과도한 혜택을 입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다면, 적어도 그 과정에 일조한 나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바라고 싶다. 부디 함께 고백해 달라고. 단 하루 대회에 참석하고도 상을 받았던 변호사 아빠의 그 아이, 판사 엄마와 로스쿨 교수 아빠의 도움으로 상을 받은 것일지 모를 그 아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담긴 내가 쓰지도 않은 업체 제작이 틀림없을 교사추천서에 도장만 찍어달라고 내밀었던 또 다른 아이, 의대교수 등 전문직 학부모들의 지원 속에서 아이들 수준이라 믿기 힘들었던 논문집을 작성했던 특목고, 자사고의 아이들...

그 아이들 중엔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들도 지금 촛불을 드는 학생들의 선배로서 혹은 친구로서 당시 수시전형에 관해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또 당시 그들의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서도 입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익명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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