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문화일보

<시론>'조국 쇼'에 가려진 안보·경제 쓰나미

기자 입력 2019. 09. 06. 12:10 수정 2019. 09. 0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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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조국 사태, 국민 눈과 귀 가려

논란 속 진짜 현안들 잊어져

한일 지소미아, 한미관계 위협

韓·泰 지소미아는 北 유출 우려

안보 불안 속 경제마저 휘청

曺 무대서 내리고 國政 올려야

국가 안보와 경제에 닥쳐올 쓰나미를 직시한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국정의 원칙에 관한 문제여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조 후보자가 임명되든, 낙마하든, 구속되든 이 나라의 미래와 시민의 일상에는 당장 영향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이재명 경기지사·김경수 경남지사 등 이른바 ‘안·이·박·김’ 정치인들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혹독한 검증·수사에서 간신히 살아남았거나 버티고 있지만, 그 실체와 한계가 명확해졌다. 그들의 정치적 부침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조국 쇼’의 무대 뒤에서 나라의 운명을 가를 만큼 중요한 일들이 꼭꼭 숨거나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조국 사태는 지금 대한민국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의 막무가내식 국가 전략 변경이다. 청와대가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발표했을 때, 차라리 조국 의혹들을 덮기 위한 꼼수였기를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파기에 미국이 분노하는 것은 문 정부가 미국보다 중국과의 신뢰 관계를 더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중국에 사드 ‘3불 원칙’을 약속했다.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불가, 한·미·일 군사 동맹 불가. 미국은 지소미아를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의 상징적 장치로 여겨왔다. 그런데 그것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세 번째 항목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한국이 중국·러시아·북한 반미(反美)전선에 합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동북아시아 전략을 짤 것이다. 주한 유엔군사령부 위상 및 전력 강화 논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합해 동북아사령부를 신설한다는 움직임도 주시해야 한다. 동북아사령부가 일본에 본부를 두면 한국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파기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태국과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태국이 지소미아 상대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왔다. 첫째, 태국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군사 정보에 대한 보안 의식이 약하고, 둘째, 태국은 북한 공관의 정보 수집 활동이 매우 활발한 거점 지역이기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는 북한의 김정남 살해 사건이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했지만, 실행 계획 수립과 준비는 태국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우리가 제공한 중요한 군사 정보가 북한에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례 없는 외교·안보 조치는 많다. 주한 미국대사 사실상 초치와 대화 내용 공개, 주한미군기지 조속한 반환 결정 및 공개, 정찰위성·경항공모함·차세대잠수함을 통한 자주국방 강조, 일본 소재·부품으로부터의 ‘독립’, 우리 경제 스스로 지키기 선언, 그리고 국익과 동맹의 분리. 단발적인 현상들을 종합하면 큰 그림이 보인다. 문 정부가 지향하는 세상은 안보 자주, 경제 자주의 나라인 것 같다. 지구상에 그걸 추구하는 나라가 딱 하나다. 바로 북한이다. 역설적이지만, 다행인 것은 최근 북한이 문 정권을 비난하는 게 진심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적어도 김정은 정권과 문 정권이,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우리 민족끼리 사는 세상을 위해 공동 작전을 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순(順)이다. 그런데 미국과 갈등하고, 일본을 ‘주적(主敵)’처럼 다루고, 중·러로부터 무시와 위협을 받는다면 그 나라의 안보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핵·미사일은 말할 것도 없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수출 부진, 저성장 속에 사상 처음 물가가 하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가는 데도 정치권에서는 변변한 논의조차 없다. 정부는 오히려 내년 경상성장률이 3.8%에 이르고 2021∼2023년에는 4.1%에 이른다는 비현실적 전망치로 빈축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그런데 모두가 홀린 듯 조국만 바라보고 있다. 낭떠러지 아래 세상을 직접 경험할 때는 후회해도 늦다. 안보와 경제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조국 문제는 정치적 결단이 가능하다. 조국을 무대에서 내리고 더 중요한 문제들을 올리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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