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개천용..무너진 교육 사다리

이천종 2019. 9. 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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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린 2018년 겨울, 서울 강북의 ‘추어탕집 외아들’의 불수능 만점 스토리는 훈훈한 감동을 줬다. 6학년 때 백혈병에 걸려 고등학교 1학년 때 완치된 그의 서울 의대 수석 합격은 모처럼 만나는 ‘개천용(개천에서 난 용)’ 스토리였다. 도봉구 선덕고 3학년 김지명 학생이 사는 아파트에는 ‘수능 만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언론은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막노동 6년, 서울대 인문계 수석으로 법학과 합격’ 포클레인 조수와 LPG 가스통 배달부, 신문배달부, 택시기사 등을 거쳐 서울대생이 된 장승수씨의 사연은 1996년 겨울 개천용 신드롬을 일으켰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그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한 때 유행어가 됐다.
 
그렇지만 개천용은 이제 점점 신화 속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 7월에 발표한 ‘직업계층 이동성과 기회불균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 직업군까지 대물림한다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의 민낯이 드러난다.

 
아버지가 ‘1군 직업’(입법공무원, 고위공무원, 기업 임원 및 관리자, 전문가)에 종사할 경우 자녀도 1군 직업을 가질 확률이 32.3%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의 자녀가 판매종사자 등 ‘3군 직업’(서비스 종사자, 판매 종사자, 농업 및 어업 숙련종사자, 단순노무 종사자)을 가질 가능성은 13%로 낮았다.

아버지가 3군 직업일 경우 자녀도 3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24.1%였다. 이는 1군과 2군 직업(기술공 및 준전문가, 사무종사자, 기능원 및 관련기능 종사자,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을 가진 아버지에 비해 3∼11%포인트 가량 높은 수치다.

앞서 2016년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내놨다. ‘개천용’ 신화가 이제 사라지고 있음을 흙수저 청년들이 깨닫고 있다는 씁쓸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19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보다 후반에 태어난 세대가 부모의 학력과 직업, 사회적 계층을 대물림하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화 세대’라 불리는 1975~1995년생들에게서 아버지가 중상층 이상일 때 자식도 중상층 이상일 확률은 아버지가 하층일 때 자식이 중상층 이상이 될 확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사교육비 지출 추세를 봐도 ‘부의 대물림’ 양상이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8한국교육종단연구’를 보면 이런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국교육개발원이 2013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학생 7000여명을 대상으로 5년간 추적해 구축한 종단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교육비 지출 격차다.

종단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의 교육수준이 대학원졸, 대졸인 가정의 전체 자녀 월 평균 교육비는 ‘100만원 초과’ 지출하는 가정이 가장 많았으나, 고졸과 중졸 이하인 가정의 월평균 교육비는 ‘20만원 이하’로 지출하는 가정이 가장 많았다.

 
아버지의 교육수준에 따라 사교육 참여율도 큰 차이를 보였다.

종단자료에 따르면 대학원졸, 대졸인 아버지를 둔 학생은 90% 이상이 사교육에 참여하였으나, 고졸인 아버지를 둔 학생은 약 79%, 중졸인 아버지를 둔 학생은 63%만이 사교육에 참여했다.

종단자료 분석결과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부모의 학업적 지원이 더 많이 이뤄지고, 국어와 영어 학업성취도는 물론 창의성 정도까지 비례해서 높다는 것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수저계급 고착화 현상이 굳어진 모양새다.

여기에 특목고와 자사고는 이미 귀족학교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 학교에 진학하려면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필수다. 

2014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실의 ‘고교 유형별 학비 현황 비교·분석’에 따르면 자사고의 학생 1인당 납입금(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은 471만3956원으로, 일반계 고교 평균 181만6433원의 2.6배를 기록했다.

정시확대론자가 옹호하는 수능도 교육 사다리를 끊어내는데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수천만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는 재수생 비율이다.

재수생의 비율은 ‘교육 특구’가 압도적으로 높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19년 5월31일 학교알리미 사이트(http://www.schoolinfo.go.kr/)에 공시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강남구 일반계고의 대학진학률은 2019년 46.8%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낮았고, 서울 일반계고 대학진학률 평균(59.8%)에 크게 못 미쳤다.

학교별로는 강남구 일반계고 18개교 중 대학진학률이 50% 미만인 학교는 13개교로 72%에 달하고, 휘문고 36.1%, 중동고 38.1%, 영동고 38.7%, 경기고 39.8% 등 4개교는 40% 미만이었다. 단대부고와 중산고, 서울세종고, 중대부고, 압구정고, 진선여고, 청담고, 숙명여고, 현대고 등도 40% 이상 50% 미만이었다. 서울 서초구(53.2%)와 양천구(54.7%) 등 이른바 서울 지역 다른 교육특구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일반계고 고등학교(특성화고 제외, 일반고+특목고+자율고) 대학진학률이 76.5%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낮은 수치다.

경기도 신도시(일산, 분당) 지역과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구 등 지방의 교육특구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교육특구의 대학진학률이 낮은 역설은 사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재수생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입시전문가는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려는 경우인데 이들이 서울 강남구와 양천구 등 교육특구에 몰려 있다는 것”이라며 “요즘 재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 이 지역 학부모들이 그런 재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재수에 대한 결정은 부모들이 더 부추긴다.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녀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로스쿨은 도입 당시부터 우려했던 ‘돈스쿨’, ‘귀족스쿨’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비싼 학비를 감당할 재력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은 결국 비싼 등록금으로 양극화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의대 체계로 회귀했다.

이런 모든 정황들은 시험을 통한 개천용의 꿈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방증 자료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분 산승의 사다리가 끊겨가는 흐름 속에 등장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학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 등을 활용하면 노력 이상의 성과물을 낸다는 점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획일적 입시’의 대안, 학종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①씁쓸한 방정식…‘학종=금수저 전형?’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24502638

②‘깜깜이’ 학종…생(生)기부인가 ‘사(死)기부’인가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24504536

③ ‘등골 브레이커’ 학종… 입시코디들만 배불린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31502852

④사교육은 ‘훨훨’, 당국은 ‘뒷북’…불안 먹고 자란 '공공의 적' 학종

http://www.segye.com/newsView/2019090150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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