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달라요' 개인주의 세대가 왔다!

윤호우 기자 2019. 9. 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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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ㄱ씨(전문직)는 전형적인 86세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이때 만난 사람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딸은 1990년대생으로 20대다. ㄱ씨는 “아들·딸과 어릴 때부터 대화를 많이 해서인지 정치적인 견해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ㄱ씨는 “하지만 세대 간에 생각의 차이는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어떤 사안을 볼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거대담론에 관심을 갖지만, 아들과 딸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거대담론보다는 자기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ㄴ씨(자영업) 역시 전형적인 86세대다. 대학 재학 당시 대다수 친구들의 민주화 주장에는 공감했지만 사회로 나오면서 보수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ㄴ씨의 딸은 20대로 대학에 다니고 있다. ㄴ씨는 “딸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라면서 “친구들 중 보수적 목소리나 진보적 목소리를 내면 왜 특정 장소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냐고 타박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ㄴ씨는 “딸은 아빠의 보수적 견해에 대해서도 ‘옳지 않다’면서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치적인 사안에 자유롭다”고 말했다. 선택의 기준이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 취업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각 기업 부스 앞에서 면접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개인주의 세대에 붙은 여러 가지 명칭

한국의 일반가정에서는 민주화 세대와 개인주의 세대의 다른 모습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 부모세대는 1950년대 중반∼70년대 중반에 태어나 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세대다. 하지만 자녀세대는 1980년대 중반∼90년대에 태어난 개인주의 세대다.

예전에 한국의 세대론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로 크게 구분됐다. 부모세대는 1970년대 산업화를 겪은 세대였고, 자녀세대는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했다. 하지만 1980년대생이 청년이 된 후 세대구도가 달라졌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그리고 개인주의 세대 등 세 가지로 크게 구분된 것이다.

세대론 연구에서는 1980∼90년대생 개인주의 세대에게 여러 가지 명칭을 붙였다. 후기산업화 세대, 포스트 민주화 세대, 정보화 세대, e세대, 탈정치 세대, 월드컵 세대, 촛불 세대, 웹2.0 세대, W 세대, 광장 세대, 88만원 세대, IMF 세대, 삼포 세대, N 세대, G 세대 등이다. 이들은 20∼30대, 2030 세대, 젊은 세대, 청년 세대로 통칭되기도 한다.

월드컵 세대나 W 세대는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거리로 나와 4강의 기쁨을 즐긴 세대를 말한다. 촛불 세대와 광장 세대는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젊은이 세대를 가리킨다. IMF 세대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시기를 겪은 세대다. 88만원 세대와 삼포 세대는 IMF 이후 비정규직 사회가 도래하자 최저임금 88만원으로 생활하는 세대이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다. 삼포 세대는 세 가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n포 세대’로 바뀌기도 했다. N 세대는 네트워크 세대를 말한다. 디지털 네트워킹에 익숙한 세대라는 뜻이다. G 세대는 글로벌 세대, 혹은 그린 세대라는 점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 개인주의 세대에는 정반대의 평가가 존재한다. 개성 있고, 창의적이며, 글로벌 문화에 익숙하며, 디지털 소통에 강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정치적 무관심과 지나친 개인주의라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민주화 세대가 민족, 국가, 사회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 작동하지 않아

<공정하지 않다: 90년대 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의 공동저자인 박원익씨는 “포스트 민주화 세대에게는 민주 대(對) 반민주의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개인주의화됐을 뿐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거나 보수화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포스트 민주화 세대는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교체의 정치적 효능을 경험했다”면서 “이들은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사회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G세대의 탄생>의 공동저자인 정상호 박사는 “민주화 세대는 물질주의적 가치인 집단·조직·사회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포스트 민주화 세대는 비물질적인 가치인 개인주의에 중심을 두고 자기표현과 개성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민주화 세대와 포스트 민주화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와 홍콩 우산혁명도 이런 탈물질주의 성향의 세대가 이끌었다”고 말했다.

포스트 민주화 세대 중 1990년대생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특정 세대다. 이들 세대는 같은 개인주의 세대인 1980년대생과도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상호 박사는 “1980년대생은 앞의 70년대생, 즉 포스트 86세대와 가까운 관계에 있다”면서 “하지만 90년대생은 자기 표현이 강하게 나타나는, 본격적인 개인주의 세대”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들은 글로벌 경향이 강하고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원익씨는 20대와 30대의 차이에 대해 “20대는 젠더 이슈에 민감하다”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젠더 감수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지금의 30대들은 20대 때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나 법륜스님 같은 멘토를 존경하는 멘토문화에 익숙했지만, 지금 20대는 엘리트 인사 중 어느 누구도 신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에서는 이들 세대의 특징으로 ①간단하거나 ②재미있거나 ③정직하거나를 손꼽았다. 특히 정직에 대해서는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면서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고 적어놓았다. 이 책은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면서 “당연히 혈연·지연·학연은 일종의 적폐다”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90년대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분노하고 공무원시험에 몰입하는 이유를 ‘정직’에서 찾았다. 공무원시험이 가장 공정한 채용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20대의 ‘정직’ 개념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 논란에 20대가 민감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화 세대와 다른 점도 여기에서 나타난다. 20대 아들·딸이 있는 ㄱ씨는 이를 ‘맥락’에 대한 이해차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화 세대는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기 때문에 큰 공동선(共同善)을 이루기 위해 부분적인 결함을 감내하려고 하지만, 젊은 세대는 사회적 맥락과 관계없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세대의 인사들은 조국 후보자의 사법개혁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20대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에서는 각종 의혹에 대해 ‘내로남불’ 비판이 일고 있다. 박원익씨는 “20대는 ‘내로남불’을 싫어한다”면서 “내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 이들 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86세대와 20대를 비교하면서 “86세대가 경쟁과정보다는 ‘결과적 평등’을 강조하지만, 20대는 경쟁은 수용하지만 경쟁과정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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