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정권 타고 넘기 신공' 이번에도 성공할까

성한용 2019. 9. 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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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84
전임 정권 비리 수사 뒤엔 현 정권 수사로 개혁 회피 반복
총장 임명 전 청와대에 '윤석열은 검찰주의자' 경고 전달돼
검찰총장은 헌법과 국익 고려해 검찰권 행사 '금도' 지켜야
국회와 언론 밀어내고 검찰이 공직 후보자 검증 부당 개입
피의자에 유리한 증거 배제한 기소는 검사 객관 의무 위배
이대로 가면 여야 모두 패배하고 또다시 검찰이 최종 승리
피를 부르는 칼..검찰 막강한 권력으로 많은 사람 다칠 것
윤석열 검찰총장이 7월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태풍 링링이 한반도에 상륙해 큰 피해를 주고 지나갔습니다.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한 것입니다. 중심 기압이 낮을수록 바람이 강합니다. 수증기를 많이 머금을수록 많은 비를 뿌립니다. 육지에 상륙했을 때는 육지를 통과하는 속도가 피해를 결정합니다. 빨리 지나가면 피해가 작지만 느리게 지나가면 피해가 큽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서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8월 9일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 성향 언론의 강한 반대가 시작됐습니다.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된 것입니다.

8월 19일부터 언론에서 조국 후보자의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민심의 동요가 시작됐고 분노 게이지가 올라갔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 세력은 민심의 동요와 분노를 부추겼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중심 기압이 자꾸 떨어지고 수증기를 흡수하며 태풍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9월 2일과 3일로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8월 27일 검찰이 갑자기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월 2일 기자간담회와 9월 6일 청문회가 열렸지만, 검찰은 조국 후보자 부인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태풍이 육지에 상륙해 온 나라를 휘젓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조국 태풍’은 위력적입니다. 모두가 갈라지고 찢어졌습니다. 여야에 따라, 세대에 따라 의견이 갈렸습니다. 친구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링링은 소멸했지만 조국 태풍은 당분간 한반도 상공에 더 머물 것 같습니다. 큰 걱정입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과 선택에 달린 것 같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조국 후보자를 사퇴시키거나 지명을 철회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국정 운영의 동력을 부분적으로 상실하는 당장의 손해는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손해의 ‘정도’일 것입니다. 길게 보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수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새로 지명하면 됩니다. 조국 후보자 이외에도 법무부 장관을 잘할 수 있는 인물은 많습니다.

둘째,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검찰의 수사가 가장 큰 부담입니다. 검찰은 조국 후보자 부인에 대한 추가 혐의를 들고나올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을 수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검찰의 기세를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법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것입니다. 물론 조국 법무부 장관이 낙마하면 그때 가서 후임자를 다시 찾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사이 문재인 정부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석열 검찰총장이 8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의 시선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여부에 쏠려 있는 사이에 우리가 모두 정작 중요한 의제를 하나 놓치고 있습니다. 검찰 개혁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거의 물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독재 시절 검찰은 정권 내부에서 힘없는 기관에 불과했습니다. 권력 서열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군부와 경찰을 밀어내고 정권의 시녀, ‘제조상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마침내 ‘정권보다 강한 검찰’로 등극했습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임명직 검사들로 구성된 검찰 조직이 선출 권력인 정권보다 더 강력한 최고의 권력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난 20년 동안 ‘정권 타고 넘기 신공’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정권 타고 넘기 신공’이 뭘까요?

정권 전반기에는 과거 정권 비리를 열심히 수사해서 현 정권의 신임을 얻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의 권한을 당장 줄일 수 없습니다. 정권 후반기에는 현 정권 비리에 칼을 들이댑니다. 이번에는 야당이 검찰 개혁에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사이클을 반복해서 개혁을 피해 가는 수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곧바로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 검찰에 적폐청산 임무를 맡겼을 때 이미 검찰의 ‘정권 타고 넘기 신공’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 논리로 보면,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체제에서 이뤄진 과거 정권 비리 수사는 적폐청산이 아니라 바로 ‘정권 타고 넘기 신공’이었던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어떤 사람일까요? 검찰 안팎의 평가를 종합하면 ’위험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검찰주의자입니다. 그가 가진 이데올로기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바로 검찰입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이나 태극기 부대는 그래도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 추천과 임명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위험성을 청와대에 경고했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권력형 비리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원칙적이고 강직한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권력형 비리만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사람은 수사하고 구속하고 기소할 수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장면은 ‘검찰주의자 검찰총장’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범죄가 눈앞에 보이는데 검사가 수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피의사실 공표는 특수수사의 ‘기본’입니다. 특수부 검사들은 오래전부터 ‘언론 플레이’를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권력형 비리나 ‘거악’을 때려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검찰에서는 앞으로도 피의 사실 공표가 계속될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검찰주의자 검찰총장이 왜 문제일까요?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급을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은 검찰 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사람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검찰총장도 검사입니다.

그러나 검사와 검찰총장은 역할이 매우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검사가 형사소송법 수준의 사고를 한다면, 검찰총장은 헌법 수준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검사는 범죄를 보면 무조건 돌진하려고 하지만, 검찰총장은 좀 더 큰 시야에서 앞뒤를 잘 살펴야 합니다.

검찰총장은 검찰권 행사에 앞서 국민 기본권이나 삼권 분립, 정당 정치 등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금도를 지켜야 합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보호하고 대한민국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검찰권 행사의 우선순위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과 검찰총장 윤석열은 수준과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증거 확보를 명분으로 공직 후보자 임명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요? 국회와 언론의 검증 역할을 검찰이 대신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요? 부당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면 야당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할 것입니다. 검찰이 그때마다 이번처럼 압수수색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장관 임명 동의권을 검찰이 쥐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조국 후보자와 가족의 여러 가지 의혹은 아무리 살펴봐도 국회 인사청문회나 장관직 임명 여부가 결정된 이후에 수사해도 얼마든지 수사가 가능했던 일입니다.

사실은 형사소송법 차원에서 따져 보아도 검찰의 이번 수사는 문제가 많습니다. 검찰이 공소시효를 이유로 조국 후보자 부인을 조사도 하지 않고 사문서위조 혐의로 서둘러 기소했습니다. 잘한 일일까요?

검사의 ‘객관 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 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따라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법원에 제출하여야 합니다. 2002년 대법원 판례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경심 교수 수사에서 검찰이 객관 의무를 지켰나요? 정경심 교수에게 유리한 진술이나 증거는 지금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검찰에서 특수통으로 유명했던 심재륜 전 고검장이 2009년에 검찰 동우회 소식지에 기고한 ‘수사 10결’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검사가 수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열 가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번 검찰의 조국 교수 및 가족 수사에서 ‘수사 10결’이 과연 얼마나 지켜졌을까요?

“칼은 찌르되 비틀지는 마라 / 피의자의 굴복 대신 승복을 받아내라 / 끈질긴 수사도 좋지만 외통수는 금물이다 / 상사를 결코 적으로 만들지 마라 / 수사하다 곁가지를 치지 마라 / 독이 든 범죄 정보는 피하라 /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 언론과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하라 / 칼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윤석열 검찰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검찰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검찰에 옛날 병이 도졌다”, “윤석열 총장이 대권 꿈을 꾸는 것 같다” 등 막말을 합니다. 얼마 전 바로 자신들이 임명한 검찰총장입니다.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윤석열 검찰이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입에 침을 튀기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좋아할 때일까요? 윤석열 검찰이 자유한국당 편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주의자입니다. ‘조국 태풍’이 지나가면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을 ‘먹잇감’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 검찰에 쏟아지는 비난을 물타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윤석열 검찰은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을 모두 다 패배자로 만들고, 검찰 자신이 최후의 승자 자리에 오르려고 할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검찰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검사들이 권력의 화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검사 중에는 정치나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고 정의감이 강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도 검사들로 이루어진 검찰이라는 조직 전체는 언제나 개혁에 저항하고 검찰주의를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숭배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관료주의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호과 번식의 본능을 갖고 있듯이 모든 조직은 조직 보호와 번식의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조직은 제어하지 않으면 괴물로 진화하는 것이 필연입니다.

더구나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입니다. 기자에게 특종 본능이 있고, 장사꾼에게 대박 본능이 있듯이, 검찰은 수사 본능, 구속 본능, 기소 본능이 있습니다.

소설가 이외수가 1982년 발표한 <칼>이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칼에 천착했던 사람이 필생의 과업으로 신검을 만들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사람의 피를 빠뜨리는 바람에 가족이 폭력적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겪은 뒤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칼이 피를 부른다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저는 검찰을 철저히 개혁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검찰이 누군가를 억울하게 죽고 다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옷을 흔들며 “흔들리는 옷 말고 흔드는 손을 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은 도구에 불과하고 검찰 권력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비유가 틀렸습니다. 검찰은 옷이 아니라 아주 예리하고 긴 칼입니다. 이런 칼은 그냥 두면 반드시 누군가를 다치게 합니다. 검찰 자신을 위해서라도 검찰은 반드시 개혁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법안은 ‘고위 공직자 범죄(비리) 수사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입니다. 패스트 트랙으로 선거법 개정안과 묶여서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검찰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 벌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검찰 개혁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건곤일척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긴 안목으로 지혜와 용기를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외수의 <칼> 내용을 조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소설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빠는 신검이라는 것을 만들 작정이다.”

어느 날 박정달 씨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게 뭔데요, 아버지?”

막내가 물었다.

“우는 칼이란다.”

“예전에 전욱고양씨(?頊高陽氏)라는 이가 화영검(畵影劍)과 등공검(騰空劍)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든지 병사(兵事)가 일어나기만 하면 칼이 그쪽으로 날아가 무찔렀다. 그리고 쓰지 않고 두었을 때는 갑(匣) 속에서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용과 호랑이의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라고 하는 내용의 글을 그는 어디서 읽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그는 그런 칼이 오늘날도 존재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당신은 애들 교육을 반대로 시키는구랴.”

곁에 있던 마누라의 항변이었다.

“반대로 시키다니.”

“아니 우는 칼이 있다니 그런 비과학적인 말이 어디 있어요? 칼한테 입이 있어요, 눈이 있어요? 칼이 용과 호랑이처럼 울 수 있으면 용과 호랑이로는 연필을 깎겠군요.”

“당신은 칼에 대해서 잠자코 있는 게 이로울 거요.”

번뜩!

한 줄기 섬광이 짧은 순간에 박정달 씨의 몸을 스쳤고 박정달 씨는 목에서 피를 뿌리며 무참히 옆으로 쓰러져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제 다 완성되었다.”

신검을 칼집에 꽂으며 노인은 말했다. 초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어떻게 베었는지 박정달 씨의 숨은 단칼에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 이 칼은 그대의 소망대로 이 세상 어딘가에 감추어져 자비와 사랑과 덕과 인을 그 기운으로 삼아 언제나 정의로운 힘을 발휘할 것이니 머지않은 장래에 악의 무리는 기운을 잃고 어둠은 빛으로 바뀌리라. 가난한 자도 일어서고 힘없는 자도 일어서리라. 억울한 자들도 한을 풀리라. 그대는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영광을 천상에서 길이길이 누리게 되리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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