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진입불가에 우주 청소업 생길 수도
[경향신문] ㆍ위성과 쓰레기 충돌 연쇄 반응 ‘케슬러 증후군’ 가능성
흐릿한 사진 속에 나타난 물체는 언뜻 봐서는 용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기다란 하모니카처럼 생긴 직육면체가 한쪽으로 삐죽이 튀어나와 있고, 이 직육면체의 뿌리에 해당하는 지점엔 몸체 전체에서 날카로운 모서리가 관찰되는 또 다른 덩어리가 붙어 있다. 2012년 프랑스 우주기구인 CNES가 촬영한 ‘엔비새트(Envisat)’라는 이름의 인공위성이다.
2002년 유럽우주국(ESA)이 쏘아 올린 엔비새트는 지구관측위성으로 충실한 역할을 수행했다. 해양과 육지, 대기를 촬영하는 고해상도 카메라와 센서를 장착한 엔비새트는 10년간 지구에 관한 매우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2012년 활동이 정지된 뒤 현재는 고도 785㎞에서 영원한 잠에 빠진 채 지구를 하염없이 돌고 있다.
문제는 이 버려진 위성이 앞으로 지구 저궤도를 우주 쓰레기로 가득 채울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엔비새트 주변 200m 안쪽에는 또 다른 우주 쓰레기 두 개가 스치듯 지나가고 있다. ‘불안한 이웃 관계’는 앞으로 150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예측이다. 그런데 이 우주 쓰레기와 엔비새트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지구 저궤도에서의 우주 개발은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맞게 된다.
엔비새트의 질량은 8t, 길이는 14m에 이른다. 시내버스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위성이다. 이런 위성이 부서져 파편이 생긴다면 지구 저궤도 전체가 파편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우려다. 단순히 엔비새트가 부서져 나오는 파편만이 아니라 파편이 또 다른 위성과 부딪쳐 파편을 만드는 연쇄반응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주과학계에선 이를 ‘케슬러 증후군(Kessler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물체가 어느 수준의 한계를 넘어 극한 충돌 상황에 접어들면 파편이 파편을 만드는 상황이 반복돼 최악의 경우 지구 주변 궤도가 파편으로 가득 차게 된다. 위성을 새로 쏘기 어려워지고 지구 밖으로 로켓 비행에 나설 때에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엔비새트에서 시작된 파편들이 지구 상공을 봉쇄하는 창살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케슬러 증후군의 본질은 201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그래비티> 초반에 잘 그려져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우주인들은 다른 고도에 있던 위성 일부가 파괴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들을 지휘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일단 관망하지만 순식간에 파편이 또 다른 위성을 파괴하는 연쇄 반응이 생기자 즉각적인 철수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연쇄 반응의 속도는 우주인들이 작업을 정리하는 속도를 훨씬 넘어섰고 결국 극중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과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를 제외한 우주인 전원이 파편에 직접 맞거나 타고 있던 우주왕복선이 대파되며 사망한다.
현재도 과학계에서는 버려진 위성이나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대형 그물로 잡아챈 뒤 대기권으로 돌입해 불타 사라지는 ‘자폭 위성’ 등을 만들고 있지만 우주 공간에서 성능을 시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주과학계에선 “지구 궤도 등 우주 공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이런 ‘장애물’을 치우는 산업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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