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조국'은 없었다..정국 폭풍 속으로

이동현 입력 2019. 9. 10. 04:42 수정 2019. 9.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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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조국 법무 등 장관급 7명 임명 강행]

“의혹만으로 임명 안 하면 나쁜 선례, 권력기관 개혁 좌초 안 돼”

野 “국민에 대한 도전” 반발…검찰, 반응 자제 속 수사 속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임명 반대 여론이 높았던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끝내 재가했다.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 “권력기관 개혁의 의지가 좌초돼서는 안 된다”며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보수 야당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검찰도 조 후보자 부인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어 검찰 개혁을 천명한 조 장관과 명운을 건 정면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조 장관을 비롯한 신임 국무위원 7명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저를 보좌해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 성과를 보여준 조국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여론을 향해서는 거듭 몸을 낮췄다.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경우 의혹 제기가 많았고, 배우자가 기소되기도 했으며 임명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며 “자칫 국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 “공평ㆍ공정의 가치에 대한 국민 요구와 평범한 국민이 느끼는 상대적 상실감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읍참조국’ 대신 민심을 거스르는 결정을 한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특히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출되지 않고도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조국’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 꼭 필요하다는 점도 거듭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권력기관 개혁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았다”며 “남은 과제는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국민의 기관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는 것을 정권의 선의에 맡기지 않고 법 제도로 완성하는 일이다. 그 의지가 좌초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조 장관과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팔을 비틀지는 않았다.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장관 업무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검찰은 이미 엄정한 수사 의지를 행동을 통해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하게 보여줬다”며 여당을 중심으로 ‘마녀사냥’ ‘미쳐 날뛰는 늑대’ ‘검란’ 등의 표현으로 검찰을 비판하고 있는 것과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간다면 그 역시 권력기관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론적 언급이지만, 더는 선을 넘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도 임명장을 받은 뒤 “학자로서, 민정수석으로서 고민해 왔던 사법개혁 과제들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실시하겠다”고 속도전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국은 당장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계제로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상 처음 생중계된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번에도 6명의 인사에 대해 국회로부터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받지 못한 채 임명하게 됐다”며 “이런 일이 문재인 정부 들어 거듭되고 있고, 특히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인사청문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 야당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러면서 “국회 인사 청문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고, 국민통합과 좋은 인재의 발탁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국정조사 및 특검 도입, 장관 해임건의안 등 가능한 모든 카드를 꺼내 들 태세다. 당장 국정감사와 새해 예산안 심사를 앞둔 정기국회부터 파행 가능성이 점쳐진다. 검찰은 극도로 반응을 자제하며 ‘수사는 원칙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이 조 장관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여권과 검찰의 충돌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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