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의 시각] 김기식과 조국

박국희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9.1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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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요즘 서울고등법원에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자주 보인다. 작년 4월 취임 14일 만에 자진 사퇴하며 역대 최단기 금감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그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 조작' 재판 때마다 법정을 찾아 김 지사를 응원하고 있다. 둘은 서울대 인류학과 선후배 사이다.

권력 핵심에서 멀어진 김 전 원장을 떠올린 것은 조국 법무장관을 보며 그의 임명 과정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연대 출신의 그를 장관급인 최연소 금감원장으로 깜짝 임명하며 '금융 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19대 국회 정무위 시절 '금융계 저승사자'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접대성 해외 출장을 수차례 다녀왔다는 논란이 터졌다. 과거 국정감사에서 "국민 세금으로 이럴 수 있느냐" "기업 돈으로 출장 가고 자고 밥 먹는 것이 정당하냐"고 했던 발언들이 드러나며 '내로남불' '위선' 비난이 쏟아졌다.

여권은 "위법은 없었다"며 '김기식 지키기'에 올인했다. '금융 검찰'의 수장으로 영(令)이 서지 않을 게 뻔해 보였지만 그는 버텼고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했다. 결국 의원 시절 후원금 5000만원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 셀프 기부한 것이 선관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사퇴했다. 그는 "송구스럽다" "반성하고 성찰할 것"이라고 했다.

1년여 뒤인 지난 6월, 그는 수염을 기르고 '나는꼼수다'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교통방송 라디오에 '전 금감원장' 신분으로 나왔다. 그는 "(재임) 기간은 짧았는데 여러 가지를 했다. 제가 워낙 일의 추진력,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 1년여 끌어온 것 제가 (금감원장) 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결론을 냈다"고 했다. '나꼼수'의 주진우씨는 "단언컨대 역대 금감원장 중에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김기식 금감원장"이라는 코미디 같은 말로 거들었다.

올 초부터 KBS 라디오에도 고정 출연한다. 그는 "금감원에 제가 있을 때…" 같은 표현을 쓰며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삼성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건 재벌 총수들의 사법 처리가 임박하면 지난 30년 동안 늘 나오던 레퍼토리"라며 여전히 '재계의 저승사자'를 자처하고 있다.

불명예 사퇴했다고 표현의 자유까지 잃는 건 아니다. 로비성 해외 출장은 검찰이 뇌물로 보지 않았고, 선고를 앞둔 정치자금법 재판도 무죄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위법이 아닌 위선을 반성하겠다며 자진 사퇴한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영 라디오에서 국정에 대해 고담준론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 아닌가.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여권은 1년만 지나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조국 역시 국민 뇌리에서 잊힐 테니 그때 가서 '역대 법무장관 중 가장 일을 잘한 조국'이라고 참칭하면 된다고 믿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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