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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세상"..젊은이들은 왜 '조국 사태'에 분노했나

이주빈 입력 2019.09.11. 05:06 수정 2019.09.11. 10:56
청년세대·전문가한테 듣다
지방대 졸업 뒤 취업 준비 20대
"딸 입시특혜 논란 불거졌는데도 조 장관 옹호 86 명망가에 화나"
"기득권 카르텔 수면 위 떠올라 86세대 이익 네트워크로 변질"
전문가 "민중과 함께 하겠다더니..선거공학적인 계산만 해" 쓴소리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확히 한 달. 대한민국이 ‘조국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뒤부터 조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 이달 9일까지, 조 장관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이 쏟아졌다. 조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항의 촛불집회도 이어졌다. 임명 당일인 9일에도 서울대에선 500여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였고, 부산대에서도 70여명이 모여 3차 촛불집회를 열고 “법무장관 자격 없다. 당장 사퇴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숱한 의혹 가운데 무엇보다 청년들을 좌절하게 한 건 조 장관 딸을 둘러싼 ‘입시 특혜’ 논란이었다. 조 장관 가족이 사회적 지위와 ‘인적망’을 이용해 딸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스펙’을 쌓았고, 이를 대학 진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에 활용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스펙을 만들 여건조차 되지 않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 박탈감이 특히 컸다. <한겨레>는 지방대 학생들과 취업준비생,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 등 청년세대의 이야기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지난 한달이 남긴 상흔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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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의 위선

“민주주의에 기여한 세대이지만 기득권을 쥐고 난 뒤 자식에게 그것을 물려주는 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86세대’의 위선이고 한계다.”

지방대를 나와 취업을 준비 중인 이혜리(가명·27)씨는 입시 특혜 논란을 보면서 조 장관의 딸보다 그를 둘러싼 86세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달 동안 수많은 86세대 명망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친구’이자 ‘동료’인 조 장관을 옹호했다. 이씨는 이를 두고 독재정권에 저항해 민주화를 이뤘다는 86세대가 지향했던 이상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86세대는 학생운동, 정치참여 등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했지만 그 이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청년들은 조 장관을 향한 비난이 과도하다 하더라도 ‘거품’을 걷어낸 뒤 마주한 86세대의 민낯이 이른바 ‘보수 기득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성혜(가명·23)씨는 “1 대 99의 구도를 만들어 1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20 대 80의 구도에선 상위 20에 속한 기득권층이었다”며 “과거 조 장관이 했던 말과 태도를 보고 그의 진정성을 믿었지만 그 역시 기득권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선명하지 않았던 차별을 선명하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전남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최현식(가명·29)씨는 “특정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계층과 집단이 구별지어진다. 이번에 기득권 카르텔과 일반 계급이 나뉘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진보는 가치를 상실했고, 86세대는 ‘이익 네트워크’로 변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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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조국 논란에서 청년들이 느낀 ‘배신감’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는 “서울대생은 서울대생끼리 평등해야 하고 고려대생은 고려대생끼리 평등해야 하지만, 서울대나 고려대 학생들과 지방대 학생들이 평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만든 건 86세대”라며 “핵심은 그런 86세대가 특권을 버리고 현장에 들어가 민중과 함께하겠다는 정신, 그 정신이 더 이상 없다는 게 폭로됐다는 점이다. 86세대는 선거공학적인 계산만 하고 과거의 대의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어느 시대나 50대는 사회의 최상층을 구성하면서 기득권을 갖게 되는데, 86세대는 기득권에다 20대부터 서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로 강력하고 촘촘하게 엮여 있다. 게다가 정치에도 능한 세대”라며 “청년들은 진보 보수가 아니라 엘리트층의 기득권 싸움으로 보는데, 50대는 서로 저쪽이 더 큰 악이라고 주장만 한다. 젊은 세대를 무시하고 계몽하려고만 하는 행태에 젊은층의 분노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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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공정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청년들은 조국 논란을 겪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이 현실이 되기는 불가능해진 것 아니냐고 자조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사회가 이미 ‘합법의 틀’을 빌미로 정의롭지 않고 불평등한 결과를 방치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 장관 딸의 입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조 장관과 86세대는 “불법이 없으니 문제 될 것도 없다”고 강변했고, 이런 변명이 청년들을 더욱 절망에 빠지게 했다. 이혜리씨는 “(정유라 입시 부정 등) 과거에는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은 데 젊은 세대의 불만이 컸다면, (조 장관 딸 논란에서는) 절차적 공정성, 즉 합법적으로 설계된 제도도 얼마든지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박영아(가명·25)씨도 “조 후보자와 그 가족의 불법 행위보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해명에서 86세대 인식의 한계를 찾을 수 있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세계가 공고히 대물림된다는 걸 스스로 증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당시 외고 입시는 다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변명이 될 수 없는 건, 당시 금수저 자녀에겐 허용됐을지 모르지만 다수는 그 엘리트층의 계급 구조에 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들이 진보 보수를 떠나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계급화돼 있는지 확인했고 그것이 좌절과 분노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조국 논란’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가치와 이념만으로 젊은 세대와 함께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9일 오후 부산대 정문에서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세 번째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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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감의 계급화

이런 구조가 사실상 박탈감을 느낄 기회조차 박탈당한 청년들을 만들었다.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김성혜씨는 조 장관 딸 논란이 박탈감마저 느낄 수 없는 너무 먼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상대적 박탈감은 좋은 부모를 가진 스카이(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대학생들이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저 부모는 저 정도 스펙을 쌓아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놀랐을 뿐 사실 박탈감을 느낀 적이 없다”며 “나는 조국 같은 아버지를 둔 적도, 조국 같은 아버지를 둔 주변인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직장인 황승진(가명·20)씨도 “예전엔 ‘있는 집 자식이니 저런 일도 꾸미는구나’ 하고 화도 났는데 이제는 화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당연시된다는 게 슬프다”며 “이미 한국 사회에 실망한 상태인데 저런 현실을 마주하니 더 실망할 부분이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 박영아씨는 “조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흙수저 청년들의 마음과 고통을 절대 모를 것이라고 한 말에서 또 한번의 박탈감을 느꼈다”며 “‘수저’라는 말이 조 장관과 같은 이들에겐 하나의 수식어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상처만을 남기는, 사회가 강제한 낙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우리 사회에 대해 신뢰를 잃은 청년들에겐 이제 누군가의 해명을 들을 여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기득권이 자신들을 철저히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김성혜씨는 “조국으로 대표되는 86세대의 위선과 그와 다르지 않거나 그보다 더한 보수 기득권의 공방을 보며 화가 났다”며 “그들은 청년들에게 뭔가를 바꾸라고 하지만, 아무런 선택권도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청년들은 또 이용만 당했다”고 밝혔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조국 후보자의 경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소득 자산과 교육, 거주지를 중심으로 한 세습사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성토했었는데, 이번에 본인의 무기가 허위로 드러났다”며 “86세대가 약자나 사회 개혁을 위한 자기 헌신 등 진보적인 가치를 앞세웠지만 그 뒤에선 자본주의의 틈새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고 말했다.

‘진영 논리’에만 젖은 86세대의 단선적 사고가 갈등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입시 문제를 둘러싸고 조국 개인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진보 엘리트들의 이중성 등 복합적인 쟁점이 있는데, 86세대는 자꾸 진영 논리로 끌고 가면서 ‘왜 조국을 지켜야 하느냐’는 물음에 ‘자유한국당이 나쁘니까’라고 답한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적반하장 격으로 다그치고 화내니까 분노를 부추긴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권지담 이주빈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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