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 조국 장관님, 승승장구 하십시오

안혜리 2019. 9.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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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나라'냐 '상식의 나라'냐
대통령 표 셈법에 나라 두 동강
미래는 상식 믿는 보통 사람 세상
안혜리 논설위원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님.

축하드립니다. 마음 졸이던 사모님과 두 자제분도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지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배려로 문서 위조와 증거 인멸 범죄의 피고인인 아내 동반 없이 홀로 장관 임명장을 받으신 그 날. 그러니까 소설가 이외수·공지영 같은 맹목적 지지자들이 환호하며 그간 장관님 임명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조롱하느라 SNS를 도배하던 바로 그 날. 점심 후 돌아오는 택시에서 만난 팔순의 택시 기사는 좋은 기색은커녕 대뜸 화부터 내더군요. “군사독재의 군홧발도 이렇게 뻔뻔스럽게 국민 마음 짓이긴 적은 없어요. 이건 국민을 개·돼지가 아니라 아예 쓰레기로 보는 것 아니요. 이런 꼴 보자고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았나 싶어 참을 수가 없어요.” 그날 저녁 귀갓길에 만난 어떤 아주머니한테는 또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너무 상식 밖의 결정이라 뉴스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깐….”

장관님은 알 턱이 없겠지만 평소 입만 열면 정의를 부르짖던 이 정권 핵심 지지자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묵묵히 자기 자리 지키며 자식 키우고 열심히 살아온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편법과 특혜로 사리사욕 채운 게 만천하에 드러난 범죄 피의자가 자신과 가족의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인사권을 쥔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는 사실에 비현실적인 자괴감을 느끼면서요. 또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이 나라의 국격을 마약왕이 대권을 탐했던 1980년대 콜롬비아 수준으로 단숨에 떨어뜨린 데 대해 끝 모를 분노를 겨우 억누르면서요. 이런 국민을 앞에 두고, 위선과 무능은 둘째치고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자기 재산 불릴 궁리부터 한 장관님을 “개혁성이 강한 인사”라 부르며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훈계’는 상식을 믿는 평범한 이들이 받은 상처에 그야말로 소금을 뿌린 격이었습니다. 그러니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는 대통령의 어리둥절한 추석 메시지에 불같이 화를 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반면 장관님 지지자들은 지금 기세등등합니다. 연일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약자의 기회를 빼앗는 편법과 반칙이 판치는 ‘조국의 나라’에선 범죄 피의자가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걸 승리라고 부르나 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상식의 나라’에선 그걸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말이죠. 또 검찰 개혁만이 마치 유일한 정의인양 외치던 ‘조국의 나라’에선 정권에 줄 선 법무부 차관이 장관 가족 비리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멀쩡한 검찰총장 배제를 도모하며 사법 방해에 나선 걸 검찰 개혁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검찰 개혁 같은 대의만큼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한 공정과 정의가 중요한 ‘상식의 나라’에선 조용히 검찰 수사를 응시하며 살아있는 권력을 파헤칠 수 있는 게 진정한 검찰 개혁이라고 여기는데 말입니다.

지리멸렬한 야당을 둔 덕분에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장관님을 임명한 걸 보고 ‘조국의 나라’는 지금껏 해오던 대로 거짓말하고 선동하고 겁주면서 한 두어 달 버티면 바보같은 ‘상식의 나라’에선 금세 다 잊힐 거라 믿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표 셈법에 있어서만큼은 프로의 솜씨를 장착한 ‘조국의 나라’와 달리 ‘상식의 나라’는 바보처럼 맨날 당하기만 합니다. ‘조국의 나라’처럼 광장으로 사람을 끌어낼 조직화된 세력도, 드루킹도 없으니 ‘상식의 나라’에선 그저 삼삼오오 모여 정의와 법치가 무너졌다고 울분을 토할 뿐입니다. ‘조국의 나라’에선 이런 추악한 권력 좀 쥐었다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지만 ‘상식의 나라’에선 아이들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다들 고개를 숙입니다.

정말 청년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 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조국의 나라’ 사람들이 쇠퇴시키고 있는 이 나라를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전진시키는 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제 할 일 하는 ‘상식의 나라’ 사람들이니까요. 조국 장관님, 지금까지 그래오셨던 것처럼 거짓말과 선동을 무기삼아 국민을 겁박하는 장관님의 지지자들과 함께 ‘조국의 나라’에서 승승장구하십시오. ‘상식의 나라’에선 그 거짓을 밝히고 기록하고 또 기억하며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갈 것입니다. 당장은 바보같이 손해 보더라도 대한민국 격에 맞는 미래를 꼭 만들 것입니다.

참, 실력은 필요없고 부모만 잘 만나면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는 ‘조국의 나라’에서 따님을 꼭 의사로 만드십시오. ‘상식의 나라’ 사람들이 실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을 때 ‘조국의 나라’ 사람들은 장관님 딸에게 진료 받기를 바랍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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