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조국
"흔들리지 않는 경제" 말한 건
조국 의혹 덮으라는 오해 낳아
심지어 대통령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 입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경제를 말했지만, 그의 발은 되레 대한민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정치가 심하게 개입하면 경제는 복지부동한다. 대통령이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조국 임명 강행이야말로 정치가 심하게 경제에 개입한 나쁜 사례다. 결과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불확실성이 커진다. 경제는 정치의 하위호환이다. 대한민국에선 더욱 그렇다. 정치가 흔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전 한나라당 의원)은 “기업이 정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시대는 없었다”며 “매일 정쟁(政爭)으로 시작해 정쟁으로 끝나는 현실을 보며 소는 누가 키우고 있는지 걱정된다”라고 했다. 조 장관 사태는 정쟁의 무한 반복 버튼을 누른 것과 같다. 기업의 눈치 보기, 복지부동이 심해질 것이다.
둘째, 정책 프로세스가 비틀릴 것이다. 대통령은 40%의 지지층만 끌어안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공정·평등·도덕과 가치를 진영과 치환한 것이다. 등가가 아닌 것을 치환한 방정식은 오답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60%의 반발은 필연이다. 정쟁이 일상화하면 정책은 유연성·일관성·투명성을 다 잃는다. 사사건건 반대와 협잡, 추악한 거래가 판을 칠 것이다. 예컨대 극일을 하자면 60%는 ‘나 몰라라’, 평화경제엔 40%만 ‘옳소’ 할 것이다.
셋째, 그 결과, 잠재성장률 추락을 막지 못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최대 숙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1990년대 7~8%에 달하던 잠재 성장률은 최근 2%대로 주저앉았다. 이 정부 들어 추락 속도가 빨라졌다.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건 자본과 노동, 총요소생산성이다. 자본과 노동은 큰 기대할 게 없다. 자본은 대내외 불확실성에, 노동은 고령화에 발목이 잡혀있다. 투입량을 확 늘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산성을 높이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그러려면 국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정쟁은 이런 혁신을 불가능하게 한다. 고려대 김동원 초빙교수는 "국가 시스템 효율화의 필수조건이 정책 유연성”이라며 "정치가 진영 대결로 갈수록 정책 유연성은 후퇴한다”고 했다.
대통령과 조국의 시간은 많이 남았는지 모르나 한국 경제엔 남은 시간이 없다. 세계 경제에 깊은 겨울이 오고 있다. 한국 경제에 번영의 물꼬를 터줬던 세계화는 종말을 맞고 있다. 역(逆)세계화로 빠르게 후진 중이다. 팍스 아메리카는 막을 내렸고, 팍스 시니카는 요원하다. 세계 경제·안보의 큰 틀이 바뀌는데 대한민국 국가 정책은 퇴행하고 있다. 중국엔 친미, 미국엔 친중으로 찍혔다. 미·중을 동시에 만족시킬 영리한 유연성은 기대 난망이다. 국민은 구한말의 기억을 소환하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뭘 먹고 살 건가, 국가 존망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관제 민족주의, 진영 논리에 빠져 나라를 둘로 쪼개는 데만 열심이다.
분열과 갈등은 특히 경제엔 쥐약이다. 기업은 투자를 사리고 국민은 소비를 멈춘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주요국 가운데 통화 가치와 주가가 동시 급락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단언하건대 이런 불통·독선과 진영 정치를 계속한다면, 이 정권의 마지막 묘비명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잘난 체하며 계란을 깨뜨리기에 바빴지만, 오믈렛은 만들지도 못했던 오지랖만 넓은 이가 여기 잠들다.” (『왜 결정은 국가가 하는데 가난은 나의 몫인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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