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에 '소대가리' 트럼프에 '노망난 늙은이'..불리하면 막말 쏟아내는 北의 '욕설 외교전'

김보연 기자 입력 2019. 9. 13. 06:03 수정 2019. 9.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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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에 '오지랖' '삶은 소대가리' 욕설軍 향해선 '바보' '개' '똥' '도적'이라 비난
보수 정치인에는 '역도의 특등졸개' '구데기'' '구미여우'
대북 유화론자에도 '설태 낀 혓바닥 놀려대며 구린내 풍겨'
트럼프에 '노망 난 늙은이(dotard)', 바이든엔 'IQ 낮은 멍청이(An Idiot with a low IQ)' 등 영어 욕설도

북한은 작년 한 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대남·대미 비난을 자제했다. 그런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관영매체 논평이나 당국자 성명을 통해 막말을 다시 쏟아냈다. 정상국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영어 욕설까지 구사했다. 원어민들조차 "저런 욕을 어디서 찾아낸거냐"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북한의 이런 막말을 두고서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철저한 전략 속에 이뤄지는 외교 레토릭(수사)'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로섬식 외교에 익숙한 '비정상국가의 외교술'이란 것이다. 올해 다시 도진 북한의 거친 언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경우든 자기들이 불리한 국면이라 판단하면 꺼내드는 욕설과 막말은 북한 외교의 주요 무기"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조선중앙TV

◇文대통령도 못 피해 간 北의 욕설 비난

올 한해 북한이 쏟아놓은 막말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의 욕설 비방 대상이 됐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문 대통령을 향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조평통은 문 대통령의 평화 경제 구상에 대해선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다)할 노릇"이라고 조롱했다. 심지어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당국자"라고 문 대통령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 게 처음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40여일 후인 지난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비꼬았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솔직담백하고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 김정은이 한 말인지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특히 김이 '오지랖' 막말을 뱉은 날은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한 다음 날이었다. 김정은의 막말에 정부가 "(북한은 우리와)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반응을 보인 것에서는 김의 갑작스러운 표변에 당황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북한이 우리 정치권이나 군을 향해 쏟아낸 막말에 비하면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점잖은 편이었다. 한미연합훈련이 열린 지난달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담화문을 통해 우리 정부와 군을 '바보' '개' '똥' '웃기는 것' '도적' 등에 비유했다. 특히 정경두 국방장관에 대해선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을 내세워 체면이라도 좀 세워보려고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붓는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라며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했다.

보수 정치권을 향한 비난은 더 원색적이고 노골적이다. 지난 5월 조평통 통일선진국은 자유한국당을 고발한다면서 "부패와 탐욕, 온갖 적폐가 구데기처럼 서식하고 있는 쓰레기당이 민생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돼지주둥이에 연지 바르는 격"이라고 했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향해 "박근혜 역도의 특등 졸개"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에게는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X"이라고 했다. 이 매체는 지난 6월 '구미여우의 노죽(아첨을 이르는 북한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 원내대표를 향해 "못난 계집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더니, 낯두꺼운 수작을 늘어놓고 있다"고 했다.

북한에 우호적인 인사도 북한의 막말 세례를 받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9일 대표적인 대북 온건파인 무소속 박지원 의원을 향해 "주제넘게 설태 낀 혓바닥을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겼다"라고 했다. 앞서 박 의원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고(故) 정주영 회장님 고향인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영어 성명서도 기이한 욕설로 비난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를 향해 영어 성명에서도 욕설을 쏟아내 왔다. 지난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6차 핵실험을 한 북한을 향해 '완전한 파괴(totally destroy) 외엔 선택이 없다'고 경고하자, 북한은 영어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노망 난 늙은이'(dotard)라고 비난했다. 'dotard'는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14세기 '천치((imbecile)'란 의미가 포함돼 사용됐다가 현재는 노화로 정신과 각성 수준이 퇴화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지금은 영어권에서도 잘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였다. 당시 미국 등에선 이 단어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매파 역할을 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해선 '인간쓰레기(human scum)' '흡혈귀(bloodsucker)'라고 했다. 지난 5월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중연설에서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지칭하자 '지능지수 낮은 멍청이'(An Idiot With a low IQ)라고 되받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비판한 한국당에는 '정치권의 후레자식(bastard of politics)' '토착 왜구(Japanese pirates in south Korea)' '아베에 기생하는 자들(those parasitic on Abe)'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백악관의 애완견(a pet dog of the White House)' '양키들의 매춘부(a prostitute for Yankees)'라는 원색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북한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아래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다시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사진으로 김 위원장 뒤에 최근 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된 박정천 육군대장이 서 있다./연합뉴스

北 막말, '협상 앞둔 포석'이자 '공산주의식 외교술'

북한이 예측불가의 독재정권이라 해도 대외 성명이나 보도에서 욕설까지 동원한 막말을 쏟아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자신들의 메시지를 더 깊이 각인시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욕설 등 극단적인 막말을 사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북한이 협상 상대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의제를 교류할 때 갑(甲) 행세를 하기 위한 기선제압 성격이 있다"이라며 "막말과 거친 언사로 남한을 길들이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북한이 한동안 자제하던 대미(對美) 비난 수위를 최근 끌어올린 것도 미·북 실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지난달 23일 카운터 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겨냥해 '미국 외교의 독초' '북·미 협상의 훼방꾼'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이런 식의 '터프 외교'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견지해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경질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각) 볼턴 전 보좌관 경질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가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게 "김정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었다"고 한 것도 북한의 끊임없는 볼턴 비난이 경질을 이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막말 외교전은 단순한 '감정 배설'이 아닌 셈이다.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거나 이전에 약속한 합의를 뒤집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는 전략적 사전 정지(整地)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동북아 군비증강 전략을 비판하는 것은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자신들이 얻어낼 카드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갖는 외교 속성이란 주장도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외교술의 토대는 서구식 윈윈(win-win·상호 이익) 외교가 아니라 제로섬(zero-sum·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그만큼 손해) 모델이고 이는 공산주의 국가 외교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대결적 외교전을 통해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내는 데 치중하는 외교 전술이 막말도 불사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가 '좋은 의도를 가졌으니 잘 해보자'라고 해도 결국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가져오길 바란다"면서 "막말 외교는 현실적·계산적이고 힘의 논리가 냉혹하게 작용하는 북한 체제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거꾸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이 문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을 그나마 자제하는 것도 무언가 얻어낼 게 있다는 판단 때문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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