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빛깔 반질반질 '꽃송편'.."아까워서 어떻게 먹죠?"

조아현 기자 2019. 9.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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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농작물, 꽃 장식 송편 "작품같아"..선물·차례상 인기
찜기에서 막 나온 꽃송편, 사과송편, 잎송편 등 다양한 모양의 가지각색 송편이 눈을 사로잡는다.© 뉴스1 조아현 기자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대나무 찜통 뚜껑을 열자 모락모락 하얀 김이 피어오르더니 곧 아기자기한 꽃송편과 과일송편, 호박송편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분홍빛 복숭아 송편, 연두색 청사과 송편, 갈색 밤송편, 진녹색 모시잎송편, 보라색 매화 송편까지 오색찬란하다.

손수 빚은 송편이 선명한 색깔과 윤기를 머금은 자태로 바뀌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수강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만의 송편을 찍느라 분주해진다. 아마도 SNS 게시용인 듯 하다. '아까워서 도저히 먹기 힘들 것 같다' '음식이 아닌 작품 같은 송편'이라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추석 명절에 빚어먹는 송편이 현대인의 취향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둥그런 보름달 혹은 반달 모양의 통통한 송편에서 꽃, 과일, 호박, 밤 모양에 다양한 색깔과 장식이 돋보이는 '화려한' 송편의 등장이다.

완성된 꽃송편이 원형 상자에 포장된 모습. © 뉴스1 조아현 기자

추석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여문 햇곡식을 조상님께 대접하는 날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빚어내는 송편은 하늘의 씨앗인 보름달과 알알이 여문 알곡을 의미한다. 우리는 작은 송편 하나에도 풍요와 감사, 집 안팎의 액운이 없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왔다.

송편의 고문헌 기록은 17세기부터 발견된다. 고(古)조리서 '요록'부터 '성호사설' '규합총서' 등을 살펴보면 송편 안에 팥, 계피, 대추, 꿀, 밤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내용물에 변화를 주긴 했지만 그 모양은 대체로 단조롭고 깔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손길로 소뿐 아니라 겉모양까지 화려하게 장식을 꾸민 오색의 송편을 주변에 선물을 하거나 차례상에 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완성된 송편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고운 자태와 윤기를 뽐낸다. 전통 떡에 트렌드를 가미한 아름다운 한식 디저트다.

지난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의 한 상가 건물에 있는 아담한 베이킹 공간에서 꽃송편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가 진행됐다. 시댁에 선물하거나 차례상에 올릴 꽃송편을 만들기 위해 직접 배우러 온 야무진 '며느리들' 이 수강생으로 참여했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지도에 따라 맵쌀에 뜨거운 물을 넣어 익반죽을 만든다. 여기에 딸기, 단호박, 코코아, 모시잎, 청콩가루 등을 넣어 예쁜 색을 입힌다. 송편은 복숭아, 청사과, 감, 호박 등 가을 농작물부터 조개, 매화 꽃까지 색깔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흰 맵쌀반죽에 볶은 검은깨 가루를 섞어 비볐더니 그라데이션이 생긴다. 달콤한 밤소를 넣고 조개모양으로 만들어 주름을 넣었더니 금새 조개 송편이 완성됐다. 치자 가루를 넣은 주황색 반죽에 깨소를 넣어 동그랗게 빚은 감 송편. 그 위에 잎을 얹어 잣으로 꼭지를 장식한다.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감 송편이 뚝딱 만들어졌다.

조개송편 반죽에 대나무 꽂이로 주름을 만들어 넣는 모습. © 뉴스1 조아현 기자
꽃송편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 수강생이 감송편 잎 위에 잣을 올리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수강생들은 선물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송편 하나를 빚을 때 마다 마음 속 보물 하나가 들어차는 것 같다고 했다. 색색의 익반죽을 떼어내 말캉한 촉감을 느끼면서 예쁜 모양으로 빚어낼 때면 자신의 마음마저 부들부들해지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

이날 추석 차례상에 올릴 꽃송편을 만든 박현숙씨(35)는 "친지, 가족들과 나눠먹고 차례상에도 직접 만든 송편을 올리고 싶어 클래스를 찾았다"며 "송편을 빚는 동안 나에게는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손정민씨(47)는 "추석을 맞아 시댁 어른들께 선물을 드리려고 꽃송편을 만들었다"며 "채소와 과일에서 나온 천연 가루로 고운 색을 입혔고, 내가 직접 만든 송편인만큼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꽃송편 원데이 클래스를 지도한 '더 예쁜케잌' 박재영 대표는 "최근 자신이 직접 만든 꽃송편을 선물하거나 SNS에 찍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보통 명절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수업 문의가 쏟아지는데 요즘은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윤숙자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이사는 "떡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기쁘고 좋은 날 빠지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며 "전통 떡의 의미와 맛을 살리면서도 새로이 개발되는 식재료, 조리 방법을 떡에 접목해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맛과 모양으로 개발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쇠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강생이 손수 제작해 완성한 꽃송편, 과일송편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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